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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에세이 _ 홍승은 _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greensian 2020. 1. 31. 17:46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작가, 어크로스(2020)

 

솔직하고 다정하게 글쓰기를 건네는 책,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제목만으로도 끌렸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출판사 어크로스의 사전서평단 공지를 스크랩해 두고서 한동안 고민을 했던 것 같다. 흩어진 스케치 조각으로만 존재했던 글감을 지난 해 좋은 기회를 통해 멘토와 멘티의 도움을 받아 여러 챕터의 글을 완성한 경험이 있다. 그 뒤로 나의 ‘쓰기’는 잠시 멈춤 상태로 정체되고 말았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기도 했지만, 다시 들여다볼수록 부족함이 보이고, 그 다음 단계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도 했다. 다시 쓰는 일을 어떻게 할지, 어떻게 하면 글을 좀 더 잘 쓸 수 있을지 내적인 갈등이 내면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던 참이었다. 사전서평단 모집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홍승은 작가의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책 제목이 내내 어른거렸다. 며칠 후, 생애 처음으로 가제본 형태의 책, 정확히는 원고의 한 챕터 일부를 우편물이 도착했다. (편집자님의 다정한 엽서와 함께)

# 쓴다는 것에 대한 ‘나로부터의 성찰’

작가는 자신의 ‘쓰기’에 대해 성찰하는 것부터 책의 첫장과 머리말을 시작한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모두가 궁금한 질문일 것이다. 작가에게 쓰는 행위는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그토록 많은 활자에 자신의(혹은 가상 인물의) 서사를 담고, 감정을 입히고, 작가만의 언어를 실어 독자에게 나르는 것일까.

“나는 입체적으로 존재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고 답했다. (...) 서사가 부재한 곳에 정보만 남아요. 나에 대해서는 내가 가장 잘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글을 써요. 하나의 정보로 존재가 납작해지지 않도록, 제가 자유롭기 위해서요.” (p.5)

어느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 우리는 그러한 존재다. 저마다의 개성과 감정, 고유성을 갖고 있지만 사회에서의 우리 각자는 성별, 나이, 직업, 결혼 여부 등 기준 축을 중심으로 분류되고 정의되곤 한다. 때론 사회의 고정적인 관념이나 편견의 한 울타리 안에 갇혀 그 이상의 설명이 어려워질 때가 있다. 책을 쓴 홍승은 작가는 “20여년을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아온 나에게 오랜 편견을 벗겨내는 일은 온몸에 덕지덕지 붙은 때를 벗기는 일과 같았다. 글을 쓰고, 읽고, 다시 쓰며 내게 입혀진 말들을 벗었다. 사회와 사람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을 발견하면 밤을 새우며 파고들었고,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작가의 글을 읽으며 위로 받았다. 책에 내 경험을 셀로판지 대듯 겹치면서 편견에 왜곡되었던 내 경험과 감정을 재해석했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일과와 교훈으로 가득찬 유년의 일기, 작은 일탈과 일기로 버텼던 사춘기를 지나, 현실 비판과 확신에 찬 주장의 글을 쓰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이후, 작가는 일상 속에서 ‘경험한 폭력을 표현할 언어가 없어서’, ‘진보적’ 언어로 해결보지 못한 문제가 쌓여 폭발하기 직전 페미니즘을 만나고 이전보다 훨씬 더 실체적이고 구체적인 쓰기에 집중한다.
첫 책 <<당신이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는 타인에겐 보이지 않는 일상의 폭력을 드러내는 페미니즘 에세이다.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며 ‘나도 이제 말한다’에서 그치지 않고, 글쓰기 수업을 통해 독자의 감응을 주고 받는다. 개인 각자의 서사를 듣는 최종 수신자가 자신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두 번째 책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를 집필했다.

# ‘함께 쓰기’

그림책 모임에 주기적으로 가는 것 외에 여전히 혼자 읽고, 혼자 쓰기에 익숙한 내게 작가가 지향하고 있는 집필공동체와 함께 쓰기는 새롭기도 하지만 어려운 지점이다.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던 시절, 타인의 글이나 작품에 대해 치기 어린 비판은 물론, 어느 책읽기 모임 중 합평에서의 섣부른 판단과 감정 교류를 통해 받은 드러나지 않는 상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도움이 된다고 나누는 말 중에는 의도했던 그렇지 않던 간에 의견 나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때 비평이 때론 서로에게 독으로 남겨지곤 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함께 쓰고 논하는 집필 공동체의 힘을 강조한다. (물론 그 과정과 결과물들이 지금 이 책의 결을 살려주는 결정체이기도 하다) ‘불확실한 글쓰기’ 수업에서 작가가 재정립한 ‘쓴다’는 동사의 의미가 남달리 다가왔는데, ‘타인의 글을 통해 미지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에 나는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믿는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에서 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을 전공하지도, 배워본 적도 없지만 세 권의 출간 경험과 연재 경험을 기본으로 집필 노동자로서 글쓰기 안내서를 쓰면서 글쓰기에 겁내하는 동료 뿐 아니라 집필이라는 큰 목표를 앞두고 겁을 먹은 자신을 토닥이려고 글을 썼다고 한다.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 그 누구라도 쓰면 좋겠다는 바람과 글 쓰는 사람의 자격을 허물고 싶다는 마음 하나 만을 놓지 않고서 말이다.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 나만 보는 글은 글쓰기가 늘지 않고, 글을 쓰기 위한 마음 근육이나 맷집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글을 다른 글쓰기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쓰기에서 멈추지 않으려면, 쓰기에서 독자에게 읽히는 과정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꾸준히 쓸 수 있다는 뜻. 그런 의미에서 따뜻한 지지와 진심어린 비평과 도움을 주고 받는 쓰기 공동체의 힘은 큰 가능성의 길일 것이다.

# 매혹적인 글쓰기의 진솔한 팁을 나눈
작가만의 레시피들.

내가 받은 가제본의 원고는 세 번째 챕터가 전부이지만, 전체적으로 큰 챕터와 상세 목차의 카피가 읽고 싶도록 자극을 주는, 꽤나 궁금한 글감으로 엮여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1부 - 나를 나로 살게 하는 글쓰기, 2부 - 타인과 연결될 때 문장은 단단해진다, 3부 - 매혹적인 글쓰기를 위한 레시피 - 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3부에 집약된 목차들은 단순히 ‘글 잘 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글을 쓰는 행위에 담긴 목적과 의도를 염두할 때 글 속에 글쓴이의 생각을 어떻게 잘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한 작가만의 시선과 흔적이 느껴진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키워드를 뽑아보자면 ‘고정감정’, ‘안전한 글쓰기 공동체’, ‘글 써지지 않을 땐’ 이렇게 세 가지다.

고정감정 의심하기
작가는 합평 시간에 글쓴이의 강점을 찾고 고정감정을 의심하는 데 에너지를 쓴다고 한다. 글을 쓸 때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그저 흔한 감정으로 결론짓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게 된 연유를 깊이 사유하지 않고 쉽고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동정심이나 연민, 불의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감정 등을 너무 당연하게 아무렇지 않게 당위적으로 써 내려가는 것 같은 상황들 말이다.

“글쓰기는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맑은 길을 가로지르는 과정이 아니라 뿌옇게 흐린 길을 더듬으며 내 위치와 감정의 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관성적으로 쉬운 길로 가려고 할 때마다 잠시 제동을 걸어 일부러 길 잃기를 선택하는 게 쓰기의 과정이 아닐까. 내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거나 느낄 수 없는지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며 살피고, 첫 판단을 버리고 낯선 시선을 탐색해 가면서.”(p.207)

글을 쓰지 않으면, 그리고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밀한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마주친 문장이다. 쉬운 길은 없으니, 쉽게 가려 하지 말고 어렵더라도 더듬 더듬 짚어가며 고유한 감정의 결에 눈길을 주는 게 쓰는 자의 길 아닐까. 남들은 모를 수 밖에 없는, 의심하고 의식하지 않는다면 자신 조차도 알 수 없는 미지의 감정과 서사를 밝혀가는 일은 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조금씩 구체화 될 것이다.

감정의 톤이 고르지 않고 들쑥날쑥한 날것의 초고를 써 두고 바로 고치기보다 차분히 시간을 두고 감정이 정제되기까지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말씀을 내게 했던 동화 작가님 이야기가 내내 맴돌았다. 드러나지 않는다면 쉽게 드러내려 애쓰지 말고 허구로 떠오른 감정을 의심하고 의식하면서 차분히 나의 언어로 걸러진 감정을 다시 보는 일. 그것이 홍승은 작가가 말하는 쓰기의 실체일 것이다.

안전한 글쓰기 공동체
‘글에 드러난 글쓴이의 생각이나 삶의 태도가 어떤지, 나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지 살피고 나누기. 공감하거나 감동하거나 새롭게 알게 된 상황이나 관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나누기.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 문단, 사유 나누기.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잘 전달되기 위해서 어떤 부분이 보충되면 좋을지 이야기하기’
(합평 방식에 대해, p.237~238)

앞서 나온 집필 공동체 이야기의 연장선에서, 작가는 “쓰는 이의 뼛속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힘은 잘 읽고 듣는 공동체에 있다.”고 말하며 ‘잘 읽기’를 언급한다. 누구의 글을 읽을 것인지, 또 어떻게 읽을 것인지, 특히 합평 방식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나누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경청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합평이 글쓰기에 얼마나 큰 용기가 되는지에 대해 강조, 또 강조한다. 그런 면에서 집필 공동체에서 나누는 합평 방식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단순히 내 감정,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내뱉는 비판이 아닌 진지함과 진정한 마음이 담겨져 서로의 합평을 존중한다는 원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글이 도저히 써지지 않을 때
“매일 쓰는 것도 좋지만, 하고 싶은 말이 올라올 때 쓰시는 것도 괜찮아요.”(편집자의 말)
“당장 쓰지 않더라도 외부와의 접점(영화, 책, 사람, 다른 작품 등)은 계속 유지하면 좋겠어. 그럼 나중에라도 쓰고 싶은 글이 생기지 않을까?” (집필노동자 동료의 말)
“뭐 다른 방법이 있을까? 안 써질 때는 안 쓰는 수 밖에.”(홍승은 작가의 말) (p. 259~260)

“엄청나게 도움 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 욕심에 비해 빈약해 보이기만 하는 내 사유와 문장들, 그 괴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어깨에 힘을 팍 주다가도 이내 좌절하고 포기하게 된다. 무한 반복하는 좌절과 읽기와 쓰기의 굴레 속에서 한 번에 몰아치지 않고 차곡차곡 해나가는 힘을 기르고 싶다.” (p. 262)

1일 1글 쓰기를 작심한 적도 있고, 매주 글을 올리는 날을 정해 지속적으로 글을 쓰려 노력했던 날들이 있었다. 지금은 잠시 쉼표를 찍고 있는 상황인데, 작가 뿐 아니라 작가의 지인의 말이 왜 그리 든든한 위로와 응원으로 들렸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좀 편해졌다 할까. 숨고르기와 충전이 필요할 때 주어진 만큼 비어진 시간을 즐기되, 세상과의 접점은 열어놓고 감각을 유지해 놓는 것. 내 식대로, 내 언어로 굳이 드러내자면 이런 표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작가가 특별히 애정하는 작가 목록은 덤이다. 글을 읽고 쓰는 루틴에서 작가로서의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독자로서 독서를 탐미하는 팁도 처한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다르다. 다른 두 개의 챕터 속의 이야기도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글을 쓰기 전에 ‘쓰기’의 의미를 짚어보고, ‘글’ 속에서 자유롭고 투명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차분하고도 솔직하게, 흔들림 없는 자기 표현의 글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