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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토마토파이] 아흔살 잔 할머니의 일기장

greensian 2020. 3. 25. 15:56

 

[체리토마토파이]
베로니크 드 뷔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청미출판사(2019.3.20)

 

 
- 책 속에서 -


3월 20일 금요일

봄의 첫날 하루를 밖에서 보냈다. 오늘 아침, 잠시 텃밭에 나갔다. 과실수에 꽃이 피었다. 창틀 옆 복숭아나무에는 분홍 꽃이 피었고, 빨랫줄 맞은편 벚나무들도 눈이 내려앉은 것처럼 꽃이 다 피었다. 지난달에 정원사가 나무딸기와 까치밥나무 가지를 정리해두어서 아주 보기가 좋다. 그가 아스파라거스 고랑에서 잡초도 다 뽑아놓았는데 올해 소출이 어떨지는 아직 모르겠고, 5월 초까지 기다려봐야 한다. 나는 아스파라거스 수확할 때가 정말 좋다! 재미도 쏠쏠하고, 하얀 순을 잘 보고 줄기가 부러지지 않게 흙을 살살 훑어내리면 눈썰미도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작년엔 아스파라거스가 잘 안됐다. 아스파라거스를 재배하는 지역이 아니니만큼 토양이 잘 안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p. 19-20 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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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크 드 뷔르의 두 번째 소설 [토마토체리파이]. 연초에 산 책을 이제사 열어본다. 코로나 정국, 아이가 ebs 라이브 특강을 보는 사이 짬짬이 틈을 내어 읽기 시작했는데 봄을 지나 어느덧 가을 페이지에 진입했다.

아흔 살 할머니 잔의 일기는 아흔 번째 봄을 맞이하는 3월 20일에 시작된다. 달력을 흘끗 보니 2020년 날짜와 요일까지 똑같다. 잔이 기록한 소소한 하루하루의 일과를 보고 있으려니, 현재 시점으로 관찰하는 것 같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초록 빨강 톤의 책 표지를 넘기고 샛노란 면지를 펼치니 장 도르메송의 글귀가 적혀있다.

 

“나는 언제나 흐르고 있는 시간이 별 쓸모없는 일들로 얌전히 채워지는 나날이 좋았다. 그런 일들이 행위는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우리를 차지해버린다. 나는 잠을 많이 잤다. 많은 것을 잊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보냈다.”
장 도르메송, [언젠가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떠나리]

 

“다들 알다시피, 소설이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histoire) 라면 역사(histoire)는 실제로 있었던 소설이다.”
장 도르메송, [어디서 어디로 무엇을]

 

그 어느때보다도 조용하고 고요하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 봄이지만, 어느새 볕이 좋은 길목엔 벚꽃이 피고 목련꽃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잔이 기억하는 3월의 봄과 내가 지금 보고 있는 2020년 3월의 봄은 분명 다르지만 자연이 주는 햇살, 바람, 봄바람이 전하는 소생의 기운은 그리 다르지 않다. 기다렸던 봄인만큼, 예전과 똑같이 지낼 수 없는 봄이어서 그런걸까. 봄기운 물씬 묻어나는 이 문장들을 적혀진 그대로 옮겨 담아보고 싶어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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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베로니크 드 뷔르 Veronique de Bure
프랑스의 편집자이자 작가. 프랑스의 유명 출판사 중 하나인 스톡(Stock)에서 오래 전부터 일했고 가톨릭 철학서 편집을 하던 중에 영감을 얻어 2009년에 첫 소설 『고백록』을 발표했다. 그 후 자크 시라크 대통령 평전을 쓰는 등 논픽션 분야에서 몇 권의 책을 더 내놓았고 2017년에 발표한 두 번째 소설 『체리토마토파이』로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장 도르메송 Jean d’Ormesson
1925년 6월 16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3대 엘리트 양성대학 중 하나인 파리 고등사범대학에서 문학과 역사학을 전공하고 철학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했지만 교단에 남지 않고 일간 《르 피가로》 주필로 정치 칼럼을 쓰고 오랫동안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활동했다. 『나는 영원히 살아있네』를 유작으로 남기고 2017년 12월 5일 9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그는 철학자, 작가, 저널리스트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출처 : yes24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