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J-Logue 300

넷플릭스 _ 버진리버(Virgin River)로 비행하시겠습니까?

Netflix Original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본 적 있을 것이다. 그 누구도 나를 모르는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꿈. 머나먼 나라로의 여행이라면 비행기 티켓을 끊는 순간, 새롭고 찬란한 여정이 시작된다. 무지갯빛을 품은 비눗방울처럼 잔뜩 부풀어 오르는 설렘을 안고 말이다. 출발하기도 전에 예약된 찐 행복의 그림들, 이젠 기약도 할 수 없을 만큼 멀어져 간다. 어디가 정점이고 끝인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팬데믹 한복판에서 우린 각자의 갈망에 단추를 걸어 잠그고, 허용되는 만큼의 거리와 간격을 두고, 절제되고 단출한 아주 최소한의 삶 속으로 수렴하고 있는 나날들... 비눗방울은 곧 터지게 될 슬픈 운명임을 예감한 것일까.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과 불안에 잠식당한 암흑의 밤을 통과하기까지 ..

scene + log 2021.01.01

그림책 - 겨울을 견뎌낸 나무

겨울을 견뎌낸 나무 the tree that survived the winter 글 메리페이 (1989) Mary Fahy 그림 에밀안토누치 Emil Antonucci 옮김 오현미 펴낸곳 비아토르 (2019) “내 이름은 믿음이야.” 무수한 별들이 밤의 어둠 사이로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며 선포했습니다. 뉴스와 적당히 거리두고 있는 요 며칠. 모두가 감내하고 인내하고 있는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지금이 정점인지 끝은 있는 건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막막한 어둠의 장막이 드리우고 있는 현실. 그래도 하루하루 희망이라는 걸 꿈꿔본다. 좀 더 나아지겠지,..

book. paper + log 2020.12.28

지혜롭고 슬기로운 물생활이 필요해

출근과 등교로 분주했던 아침이 한 템포 느리게 숨을 고르고, 코로나 여파로 어린이집에 못 가고 가정보육 중인 둘째와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항 쪽에서 물이 흐르는 듯한 여린 소리가 들렸다. 평소처럼 여과기에서 나는 소리겠지 싶어 가벼이 넘기곤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러고 몇 분이 지났을까. 종합장에 색칠을 하다 말고 둘째가 “엄마! 여기 좀 봐! 여기! 어항! 물!” 하고 외쳤다. 아이가 부르는 쪽으로 가 보니 어항 오른쪽 귀퉁이에서 물이 모서리 선을 타고 졸졸졸 흘러내리고 있는 게 아닌가. 물은 바닥으로 떨어져 이미 흥건해졌고, 고인 물이 똘똘 뭉쳐 거실 바닥을 지나 패브릭 소파 쪽으로 흐르고 있던 중이었다. 몇 초만 더 지났더라면 패브릭 소파는 신나게 물을 빨아들이고 있었으리라. 상상..

mono + log 2020.12.21

겨울 저녁, 눈썹달

어제의 초승달 눈썹달 또는 손톱달... 음력 2020. 11. 2. 겨울저녁, 해거름을 뒤로 하고 또렷하게 새겨진 달빛 가장자리에 홀려 종종걸음을 멈추었다. 금빛이면서도 은은하게 날렵한 맵시의 선이 주는 존재감이란..손톱보다는 빛을 간직한 눈썹에 더 가까웠다.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생각했다. 뇌리를 맴도는 몇개의 낱말들 - 눈썹, 맑게, 씻어, 하늘... 서정..

scene + log 2020.12.18

무민 연작소설 2 마법사가 잃어버린 모자

무민 연작소설 2 [마법사가 잃어버린 모자] 토베 얀손 | 이유진 옮김 | 작가정신(2018) 첫 장 열자마자 겨울, 첫눈이다. 첫눈이 내려 좀 이른 화이트 크리스마스같던, 뉴스 속 세상을 뒤로 하고 너무도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던 엊그제 아침의 풍경이 떠오른다. * 잿빛이었던 어느 날 아침, 무민 골짜기에 첫 눈이 내렸다. (...) 바깥에서는 고운 눈송이가 펑펑 쏟아져 내렸다. 눈은 이미 계단을 뒤덮었고, 지ᄇ..

book. paper + log 2020.12.15

토베 얀손의 무민 소설 <혜성이 다가온다>

무민 연작소설 1 [혜성이 다가온다] 토베 얀손 | 이유진 옮김 | 작가정신(2018) • 무민은 황량한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빛나는 불덩이가 다가오는 광경을 보고 있을 지구가 얼마나 두려워할지 생각했다. 자신이 세상 모두를, 숲과 바다와 비와 바람과 햇빛과 풀과 이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그리고 그 모든 것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뒤이어 무민은 생각했다. ‘엄마는 모든 걸 구해 낼 방법을 알고 계실거야.’ (p 158-159) • 점점 거세지는 팬데믹.. 학교도 전면 원격 수업에 들어가면서 겨울방학도 앞당겨진 듯한 기분이라 뭐라도 집중할 거리가 필요하다. 집콕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무민의 골짜기를 탐방 중이다. 토베 얀손의 무민 연작소설 1권 읽고 아직 8권 대..

book. paper + log 2020.12.15

[배움의 발견]

배움의 발견 (Educated) 타라 웨스트오버 |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2020) 볼드체 영문 제목 아래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라는 메인 카피를 보고 이상적인 교육관, 혹은 그러한 실천을 다룬 교양도서인 줄로만 알았다. 그건 큰 착각이었다. 책은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영화 속 비쥬얼처럼 명징하게 그려진, 결국엔 한 사람의 역사를 새로 쓰는, 타라 웨스트오버의 회고록이다. 도서관에서 빌려올 때만 하더라도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상당한 두께감에 부담이 있었지만 한번 펼쳐든 책은 쉬이 멈출 수 없었고 이틀에 걸쳐 앉은 자리에서 절반씩 읽어 끝장에 이르렀다. 부모의 절대신념과 권력은 그토록 무서운 것이었다. 가족 모두 생사를 다투는 절체절명의 사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맹신에..

book. paper + log 2020.12.09

아이처럼, 지난 날의 그때처럼

작자만 큰 세상, 그림책 유년시절, 나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는 상가 뒤편에 자리한 너른 주차장 공터가 전부였다. 삼삼오오 모이면 고무줄넘기를 하고 뛰어놀고, 붉은 벽돌을 갈고 갈아서 소꿉놀이에 고춧가루 양념으로 쓰고, 어느 날엔 누군가 교회에서 연극이란 걸 배워 와 한 사람씩 역할을 맡아 아무 말 대잔치에 버금가는 상황극을 벌이다가 어둑어둑 해가 지면 엄마의 부름에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빨간 대야 한가득 담긴 미지근한 물에 손을 담가 비누로 빡빡 씻은 물을 보면 그날 하루 얼마나 땀을 빼고 영혼을 다 바쳐 놀았는지 알 수 있었다. 심심한 게 뭔지 몰랐던 시절의 일이다. 콘크리트 맨땅의 거친 흙바닥 한쪽 구석에는 봄에 씨앗을 뿌린 자리에 봉숭아꽃, 붓꽃이 자라나 여름엔 앙증맞은 손톱에 ..

book. paper + log 2020.11.02

가을엔 호호 불어 티타임을...

- 작은 찻잔은 언제나 나보다 크니까요. 코로나 블루 탓에 모두가 정신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와중에도 요즘 체감하는 단 하나의 기쁨을 찾자면, 바로 하늘을 보는 일이다. 계절의 흐름 앞에 바람의 결도, 하늘빛도, 구름의 얼굴도 매 순간마다 달라진 가을이니까. 절로 감탄하는 순간을 담으려고 손엔 늘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찰나의 신비로움이 작은 프레임 안에 온전히 들어올 리 없지만 자연이 내어주는 그 품을 하늘 빛깔과 구름무늬로 아주 잠시라도 기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하면서도 찬 공기에 몸이 부르르 떨리곤 한다. 얼음 들어간 시원한 커피와는 이미 안녕을 고했고, 아직까지 여름옷을 입고는 있지만 이따금씩 카디건을 꺼내 어깨에 걸치는 일이 자연스러워진 요 며칠의 풍경. 아..

mono + log 2020.09.22

한 사람의 손글씨가 주는 모든 것

단 하나, 단 한 번의 진심이 여기에... 새벽 두 시가 훌쩍 넘은 시간. 책장을 훑어보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책 한 권. 표지를 넘기자마자 ‘툭!’ 하고 바닥으로 무언가 떨어진다. 선명하고 강렬한 빨간색 편지 봉투다. 손에 집어 들고 편지봉투를 만져보니 봉투 크기보다 작은 크기로 접힌 종이의 질감과 두께감이 느껴진다. 그냥 비어진 봉투가 아닌 것. 누가 보낸 편지였을까. 새벽, 두 시의 감성인지 몰라도 혹시라도 열지 말아야 하는 판도라의 상자면 어쩌지 망설이던 사이에 주저하는 마음보다 먼저 손이 움직이고 있음을 본다. * 고민 한 톨 없이 본능적인 감각이 직진한다. 편지 봉투를 열고, 반듯하게 접혀있는 편지 종이를 펼친다. 감정 가는 대로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는 손글씨 보내는 이의 이름도 없는 편지. ..

mono + log 2020.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