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paper + log 97

유진과 유진

작은 유진이가 엄마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다행이다, 참으로 다행이라고밖에… 정답은, 사랑이 전부다. *나는 엄마를 뒤로하고 발코니로 나갔다. 어제 하루 종일 아 우성을 치던 바다는 이제 너른 잔디밭처럼 평화롭고 고요했다. 발을 내딛는다 해도 바다는 든든하게 나를 받쳐 줄 것 같았다. 그 바다 위로, 날마다 떠오르는 해임이 분명했지만 어제의 그 해가 아닌 것도 분명한 새로운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그 빛에, 비로소 날개를 완성한 이카로스가 몸을 추스르는 것이 보였다. 상처를 모아 지은 날개임을 알고 있는 나는 온 마 음으로 그가 날아오르기를 기도했다.(유진과 유진 p.277 중에서)

book. paper + log 2025.01.10

[그림책] 삶의 모든 색

삶의 모든 순간, 당신이 사랑받았다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마주한 상황에 따라서 눈으로, 가슴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장면이 다른 그림책 [삶의 모든 색].점점 자아가 커져가는 큰 아이와 부딪힐 때면 ‘소년의 삶’ 이… 내가 헤매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면 ‘자기의 삶’이… 부모로서 고민이 깊어지는 날엔 ‘부모의 삶’이 가슴 한 켠으로 스윽 들어온다. 오늘은 ‘기나긴 삶’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이 장면을 보고 부분마취로 고관절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병실에서 회복을 하고 계신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book. paper + log 2025.01.06

서촌의 기억

애틋해도 이렇게 애틋할 수 있을까. 소설 속 모든 인물이 각기 다른 색채와 온도의 애틋함을 품고 있어 내내 아리면서도 은은한 위로가 되었다. 당신은 그저 나의 종이만 되어달라던, 사모하는 그 마음이 결국엔 가닿아 다행이다. 오랜 흙먼지, 나무 냄새, 가지런한 필체의 손편지,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주려는 마음들. 지금 여기 남겨진 서촌의 기억. p.s/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라져 갈 때도, 그는 그곳에 있었다.‘ 에서는 인물만큼 깊이 공감하지 못했던 전쟁이란 시대적 배경이 에선 묵직하고 깊은 아픔으로 전해졌다. 실체 없는 감각을 상삭으로 느낀다 한들 그 시절을 헤아려본다는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일테지만. 한국판 사랑의 역사가 여기에 있었네. 바로 전에 읽은 소설과 오버랩 되는 느낌… *작가의 말* 195..

book. paper + log 2024.07.22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

늘 애들 책상과 거실 책상만 쓸고 닦다가 먼지 뽀얗게 쌓인 채 어수선하기만 했던 내 책상을 정리했다. 버릴 것들을 솎아내면서도 절대 미니멀리즘은 못 되겠다 싶고, 뭘 이리도 이고 지고 못 버리고 사는지 한탄하다가도, 절대 버릴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며 나름 정리 의식을 치르다보니 하루 반나절이 다 지났다. 그러다 발견한 책 한권, 시 한 편. 글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정말 시는 주인을 찾아가는 걸까….? 류시화 시인의 명시모음집 [시로 납치하다] 중에 수록된 시 ‘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 ***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 그것은 일종의 사랑이다, 그렇지 않은가? 찻잔이 차를 담고 있는 일 의자가 튼튼하고 견고하게 서 있는 일 바닥이 신발 바닥을 혹은 발가락들을 받아들이는 일 발바닥이 자신이..

book. paper + log 2024.06.22

식물의 도시

글_헬레나 도브, 해리 아데스 그림_런던 식물상에서 발췌 옮긴이_박원순 출판사_터치아트(2023.5.25) * 이 책을 펴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식물학자 윌리엄 커티스와 그의 걸작 덕분이다. 커티스는 성인이 된 이후 생애 대부분을 당시 가장 영향력 있고 아름다운 식물학 연구서를 완성하는데 바쳤고, 그 과정에서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다. … 우리는 아수라장 같은 소음과 분주함을 고요하고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수많은 식물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야생화라고 부르든 잡초라고 부르든, 하나하나의 식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저마다 하고 싶은 특별한 말을 품고 있다. 그 식물들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책은 속도를 늦추고 잠시 멈춰 우리 곁에 그동안 쭉 살아온 그들의 진짜 모습을..

book. paper + log 2023.08.18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어딘가 닮아 있는 두 장의 사진. 시간순으로는 두 번째 사진이 먼저다. 기억이 맞다면, 강릉에서 온 동생과 조카가 집에서 며칠 묵다 떠나고 조용해진 어느날, 책 반납하고 도서관을 나서던 오후의 하늘이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 중고 서점에서 눈에 들어온 책. 별그램 피드에서 자주 보아서 표지는 익숙하지만 연이 닿지 않았는데 어쩐지 이번에는 묘한 기시감이 들었던…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은 장마 가운데 만난 숲 속의 여름 별장의 여운이 꽤 오래 갈 듯하다. 무엇보다 여름방학 전 완독(!)을 자축하며…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 김춘미 옮김 | 비채 (김영사) * 비는 한 시간 남짓해서 그쳤다. 유리창을 열자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가 흘러 나왔다. 비에 씻긴 초록에서 솟구치는 냄새. 서쪽 ..

book. paper + log 2023.08.08

[우주에서 가장 작은 빛]

별은 빛이다. 별은 가능성이다. 과학과 마법이 만나는 곳, 내가 사는 세상보다 더 큰 세상으로 난 창문이다. 별은 언젠가 나도 맞는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줬다. (p.43 중에서) 우주에서 가장 작은 빛 사라 시거 지음 | 김희정 옮김 세종서적(2021) #우주에서가장작은빛 #천체물리학자 #행성과학자 #사라시거 #saraseager #에세이 #별은빛이다 #가끄..

book. paper + log 2021.09.09

[아름다움 수집 일기]

예약주문을 걸어두고, 혹시나 이사 후에 도착하면 어쩌나 걱정반 설렘반으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책. 이화정 작가님의 는 이사를 일주일 앞두고 내 손에 들어왔다. 소예책방지기님의 곱고 예쁜 감성이 묻어난 포장을 열고 나니 작업일지 예고편에서 본 버드나무 초록잎들이 내 두 손 안에서 나풀거리고 있었다. 부드럽게 유영하는 가지의 선, 이파리들의 저마다 다른 움직임의 결... 윌리엄모리스의 패턴과 이 는 만날 운명이었던 걸까.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 한참을 매만지며 들여다보았다. 대충 아무컵이나 집어들어 믹스 커피를 마시던 지난 날의 내가 보여 눈물이 차올랐다가, 첫 개시를 언제 어떻게 잘 할까 망설이며 주저하는 노트에 관한 구절도 내 얘기인가 공감했다가, 내 최애 메뉴 쌀국수 먹는 상상을 했다가, 코로나 시국 이후..

book. paper + log 2021.07.02

그림책 - 겨울을 견뎌낸 나무

겨울을 견뎌낸 나무 the tree that survived the winter 글 메리페이 (1989) Mary Fahy 그림 에밀안토누치 Emil Antonucci 옮김 오현미 펴낸곳 비아토르 (2019) “내 이름은 믿음이야.” 무수한 별들이 밤의 어둠 사이로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며 선포했습니다. 뉴스와 적당히 거리두고 있는 요 며칠. 모두가 감내하고 인내하고 있는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지금이 정점인지 끝은 있는 건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막막한 어둠의 장막이 드리우고 있는 현실. 그래도 하루하루 희망이라는 걸 꿈꿔본다. 좀 더 나아지겠지,..

book. paper + log 2020.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