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닮아 있는 두 장의 사진.
시간순으로는 두 번째 사진이 먼저다. 기억이 맞다면, 강릉에서 온 동생과 조카가 집에서 며칠 묵다 떠나고 조용해진 어느날, 책 반납하고 도서관을 나서던 오후의 하늘이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 중고 서점에서 눈에 들어온 책. 별그램 피드에서 자주 보아서 표지는 익숙하지만 연이 닿지 않았는데 어쩐지 이번에는 묘한 기시감이 들었던…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은 장마 가운데 만난 숲 속의 여름 별장의 여운이 꽤 오래 갈 듯하다. 무엇보다 여름방학 전 완독(!)을 자축하며…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 김춘미 옮김 | 비채 (김영사)
*
비는 한 시간 남짓해서 그쳤다. 유리창을 열자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가 흘러 나왔다. 비에 씻긴 초록에서 솟구치는 냄새. 서쪽 하늘이 이상할 정도로 밝아지면서 일몰 직전의 광선을 숲에 던진다. 완전히 황혼에 가라앉아가던 나무들의 잎사귀 가장자리가 오렌지색으로 빛난다. 매미는 이제 암놈 부르기를 단념했는지 지짓 하고 짧게 울고는 계수나무에서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p. 152)
*
움막이라면 아주 잠시라도 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불을 멍하니 보는 여백 같은 시간이 있었을 거야. 인간에게 마음이 싹튼 것은 그런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집 안에 계속 있으면 점차 견딜 수가 없어져서 밖에 나가고 싶고, 자연 속을 걷고 싶고, 나무와 꽃을 보고 싶고, 바다를 보고 싶다고 원하게 되지. 인간의 내면같은 것은 나중에 생긴 것으로 아직 그다지 단단한 건축물은 아니라는 증거일 거야. 집 안에서만 계속 살 수 있을 만큼 인간의 내면은 튼튼하지 못해. 마음을 좌우하는 갈 자기 내부에서가 아니라 바깥에서 찾고 싶다, 내맡기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p.337)
*
실현되지 않았더라도 실현된 것과 똑같이 선명하게 누군가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는 것이 있을 겁니다. 소설이란 형체가 남지 않은 것, 사라지는 것을 진혼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p. 428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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