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paper + log 97

무민 연작소설 2 마법사가 잃어버린 모자

무민 연작소설 2 [마법사가 잃어버린 모자] 토베 얀손 | 이유진 옮김 | 작가정신(2018) 첫 장 열자마자 겨울, 첫눈이다. 첫눈이 내려 좀 이른 화이트 크리스마스같던, 뉴스 속 세상을 뒤로 하고 너무도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던 엊그제 아침의 풍경이 떠오른다. * 잿빛이었던 어느 날 아침, 무민 골짜기에 첫 눈이 내렸다. (...) 바깥에서는 고운 눈송이가 펑펑 쏟아져 내렸다. 눈은 이미 계단을 뒤덮었고, 지ᄇ..

book. paper + log 2020.12.15

토베 얀손의 무민 소설 <혜성이 다가온다>

무민 연작소설 1 [혜성이 다가온다] 토베 얀손 | 이유진 옮김 | 작가정신(2018) • 무민은 황량한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빛나는 불덩이가 다가오는 광경을 보고 있을 지구가 얼마나 두려워할지 생각했다. 자신이 세상 모두를, 숲과 바다와 비와 바람과 햇빛과 풀과 이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그리고 그 모든 것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뒤이어 무민은 생각했다. ‘엄마는 모든 걸 구해 낼 방법을 알고 계실거야.’ (p 158-159) • 점점 거세지는 팬데믹.. 학교도 전면 원격 수업에 들어가면서 겨울방학도 앞당겨진 듯한 기분이라 뭐라도 집중할 거리가 필요하다. 집콕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무민의 골짜기를 탐방 중이다. 토베 얀손의 무민 연작소설 1권 읽고 아직 8권 대..

book. paper + log 2020.12.15

[배움의 발견]

배움의 발견 (Educated) 타라 웨스트오버 |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2020) 볼드체 영문 제목 아래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라는 메인 카피를 보고 이상적인 교육관, 혹은 그러한 실천을 다룬 교양도서인 줄로만 알았다. 그건 큰 착각이었다. 책은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영화 속 비쥬얼처럼 명징하게 그려진, 결국엔 한 사람의 역사를 새로 쓰는, 타라 웨스트오버의 회고록이다. 도서관에서 빌려올 때만 하더라도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상당한 두께감에 부담이 있었지만 한번 펼쳐든 책은 쉬이 멈출 수 없었고 이틀에 걸쳐 앉은 자리에서 절반씩 읽어 끝장에 이르렀다. 부모의 절대신념과 권력은 그토록 무서운 것이었다. 가족 모두 생사를 다투는 절체절명의 사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맹신에..

book. paper + log 2020.12.09

아이처럼, 지난 날의 그때처럼

작자만 큰 세상, 그림책 유년시절, 나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는 상가 뒤편에 자리한 너른 주차장 공터가 전부였다. 삼삼오오 모이면 고무줄넘기를 하고 뛰어놀고, 붉은 벽돌을 갈고 갈아서 소꿉놀이에 고춧가루 양념으로 쓰고, 어느 날엔 누군가 교회에서 연극이란 걸 배워 와 한 사람씩 역할을 맡아 아무 말 대잔치에 버금가는 상황극을 벌이다가 어둑어둑 해가 지면 엄마의 부름에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빨간 대야 한가득 담긴 미지근한 물에 손을 담가 비누로 빡빡 씻은 물을 보면 그날 하루 얼마나 땀을 빼고 영혼을 다 바쳐 놀았는지 알 수 있었다. 심심한 게 뭔지 몰랐던 시절의 일이다. 콘크리트 맨땅의 거친 흙바닥 한쪽 구석에는 봄에 씨앗을 뿌린 자리에 봉숭아꽃, 붓꽃이 자라나 여름엔 앙증맞은 손톱에 ..

book. paper + log 2020.11.02

아무 조건 없이 내가 되는 시간

“소소하고 사사로운 시간과 기억을 수집합니다” 틈틈이 쓰고 싶은 글을 기록해두는 블로그를 소개하는 짤막한 글이다. 검색의 파도를 통과한 누군가 잠시 머물다가도, 때론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는 곳. 대개는 소리 없이 고요함을 유지하는 차분한 공간이기도 하다. 일상을 잠식한 코로나로 인해 두 아이를 끼고 있는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내가 사랑하는 하루의 ‘틈’마저 실종된 몇 달을 보냈다. 끼적거리다가도 이내 곧 미완성인 채로 체념하고 포기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매일 빈 종잇장을 마주하고 구름 속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은 몹시 고달픈 일이다_ 트루먼 카포티 이따금씩 들이치는 단상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었을 뿐. 정제된 글 한편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조바심과 함께 부작용도 ..

book. paper + log 2020.08.10

몸에도 단비가 필요하다

* 장마 꿉꿉하고 습한 장마가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있다. 근래 들어 이렇게까지 ‘장마다운’ 해를 보낸 적이 있었던가. 6월 중순 무렵도 아니고 보통 때라면 쨍쨍하게 타오르는 태양을 피해서 휴가를 고민할 7월 말인데. 하기야, ‘보통 때라면’ 혹은 ‘평소대로라면’ 이라는 말은 포스트 코로나를 통과중인 지금 아무 의미없는 말이 되어버렸지만...... 비가 오고 습한 날이면 뼈마디가 쑤신다던 어른들의 말씀이 내 얘기가 될 줄이야. 요 며칠 뒷목과 어깨, 양손 팔이며 손 끝 마디 마디가 뻐근해 틈 날때마다 요가를 모방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달래던 중이었다. 종아리 아래는 딴딴하게 뭉쳐서 천근만근... 습한 날씨에 장판 바닥에 발을 디딜 때면 쩍 쩍 달라붙는 소리에 나무로 된 마루였으면 좀 나았으려나 잠시 생..

book. paper + log 2020.07.30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마르크 로제 장편소설 | 윤미연 옮김 문학동네(2020)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 몰입하면서 나는 모든 걸 잊는다. 낭독을 마치는 순간, 나는 망각으로부터 현실로 돌아온다. 씻기고 정화된 채로 행복한 현실로. 나는 피키에 씨와 얼싸안을 것이다. 지금은 서로 악수를 나눈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은밀하게 통하는 공모자들이다. / (p.45 중에서...) * 책을, 글을 읽어주는 사람과 이야기를 듣는 이를 기억한다. 기억을 잃은 아내 앨리 곁에서 젊은 시절의 일기를 읽어주던 남편 노아가 나오는 영화 책을 듣는 시간에 푹 빠진 잠 못드는 마르셀을 위해 침대맡에 앉아 책을 읽어주던 엄마의 목소리 ... 사실 낭독은 일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성우 못지 않게 낭랑한..

book. paper + log 2020.07.29

[체리토마토파이] 아흔살 잔 할머니의 일기장

[체리토마토파이] 베로니크 드 뷔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청미출판사(2019.3.20) - 책 속에서 - 3월 20일 금요일 봄의 첫날 하루를 밖에서 보냈다. 오늘 아침, 잠시 텃밭에 나갔다. 과실수에 꽃이 피었다. 창틀 옆 복숭아나무에는 분홍 꽃이 피었고, 빨랫줄 맞은편 벚나무들도 눈이 내려앉은 것처럼 꽃이 다 피었다. 지난달에 정원사가 나무딸기와 까치밥나무 가지를 정리해두어서 아주 보기가 좋다. 그가 아스파라거스 고랑에서 잡초도 다 뽑아놓았는데 올해 소출이 어떨지는 아직 모르겠고, 5월 초까지 기다려봐야 한다. 나는 아스파라거스 수확할 때가 정말 좋다! 재미도 쏠쏠하고, 하얀 순을 잘 보고 줄기가 부러지지 않게 흙을 살살 훑어내리면 눈썰미도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작년엔 아스파라거스가 잘 안됐다. ..

book. paper + log 2020.03.25

[어젯밤] 제임스 설터, 강렬하고 내밀한 10개의 단편

[어젯밤 Last Night] 제임스 설터 박상미 옮김, 마음산책(2010) * 책 속에서 , 아내가 좋아할 물건을 찾아내기는 쉬웠다. 우린 취향이 같았다. 처음부터 그랬다. 취향이 다른 사람과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난 항상 취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건 아마도 옷을 입는 방식이나 또는, 같은 이유로, 벗는 방식으로 전해지는데, 취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학습되고 어느 순간에 도달하면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얘기를 가끔 했다. 무엇을 바꿀 수 있고 또 바꿀 수 없는가에 대해서. 사람들은 언제나 뭔가, 말하자면 어떤 경험이나 책이나 어떤 인물이 그들을 완전히 바꾸어놨다고들 하지만, 그들이 그전이 어땠는지 알고 있다면 사실 별로 바뀐 게 없다..

book. paper + log 2020.03.14

[세상의 많고 많은 초록들] all about green things

[세상의 많고 많은 초록들] 로라 바카로 시거 글 그림 | 김은영 옮김 다산기획(2014) 숲 속엔 울창한 초록 바닷속 깊푸른 초록 라임은 싱그런 초록 녹두는 누릇한 초록 정글은 거뭇한 초록 이구아나 얼룩덜룩 초록 고사리 달빛 어린 초록 풀 먹는 얼룩말 초록 무늬 갖고파 꽃잎 위 느릿느릿 초록 애벌레 빛바랜 초록 반딧불이 반짝 초록 나무 그늘 초록 그늘 세상 많고 많은 초록들 가을 오면 그만 멈춰! 흰 눈에 덮인 초록 우리 곁에 언제나 초록은 영원해

book. paper + log 2020.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