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paper + log 97

탐구하는 재미, 식물의 모든 것 _ Lab Girl

​ 랩걸 Lab Girl 호프 자런 글 | 김희정 역 | 알마출판사(2018) ⠀⠀⠀ * 나는 엄청나게 많은 이파리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직업이다.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질문을 한다. 제일 먼저 나는 색을 본다. 정확히 어떤 종류의 초록색인가? 위쪽이 아래쪽과 다른 색인가? 가운데가 가장자리와 다른 색인가? 가장자리는 어떤 상태인가? 부드러운가? 뾰족뾰족한가?잎에 수분은 얼마나 차 있나? 시들어서 축 쳐져 있는가? 주름져 있나? 싱싱한가? 잎과 줄기 사이의 각도는? 잎은 얼마나 큰가? 내 손바닥보다 더 큰가? 내 손톱보다 더 작은가? 먹을 수 있는 잎인가? 독소가 들어 있을까? 햇빛은 얼마나 받고 있나? 잎에 비가 얼마나 자주 내리는지? 병들었나? 건강한가? 중요한가? 하찮은 잎인가? 살아 있나? 왜? ⠀⠀..

book. paper + log 2019.05.10

엄마 까투리

​ 엄마 까투리 권정생 글 | 김세현 그림 | 낮은산(2008) ⠀⠀⠀ * 꿩 병아리들은 그래도 뿔뿔이 흩어져 모이를 주워 먹다가는 밤이면 앙상한 엄마 까투리 곁으로 모여들어 잠이 들었습니다. 엄마 냄새가 남아 있는 그곳에 함께 모여 보듬고 잠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엄마 까투리는 온몸이 바스라져 주저앉을 때까지 새끼들을 지켜 주고 있었습니다. * ⠀⠀⠀ 이번주 어버이날 아침, 리딩맘 시간에 들고간 책. 늦게 등교한 아이들이 자리에 앉는 사이, 어수선한 분위기가 점점 차분해지고 엄마 까투리와 꿩 병아리의 이야기에 차츰 빠져드는 몰입감이 극에 다다랐다. "(산불때문에) 고기가 되는 거에요? "안돼..." "어떻게..." 여러 반응 속에 한 아이의 마지막 말 한마디가 내 맘속에 깊이 가라앉았다. "병아..

book. paper + log 2019.05.10

<꼬마 건축가 이기 펙> & <앵무새 열마리>

⠀⠀⠀​ 간밤 내내 꿈을 꿨다.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러 가는 날인데 지각하는 꿈. 타임 슬립 아니고서는 아무리 한달음에 달려가도 이미 늦어버린 시간. 2학년 올라간 아이들이 리딩맘 시간에 접하지 않은 책을 고르려고 애쓰려다 그만 너무 고뇌한 탓인가보다. 지루하지 않고, 좀 더 재미나고, 아이들에게 좀 더 도움이 될만한 책을 고르는 일은 즐거우면서도 어렵다. ⠀⠀⠀ * 오늘 읽어 준 두 권의 책은 그리고 ⠀⠀⠀ 가끔 생각한다. 내 어릴적 경험치만으로 세상을 바라 보고 아이들을 대하는 건 아닌지. 에도 과거의 경험으로 아이들이 누리고 펼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싹둑 잘라버린 선생님이 나온다. 그 누구의 모습일 수 있는, 평범하고 재미없는 어른의 전형으로 말이다. 책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선생님을 비판하고 이..

book. paper + log 2019.04.11

이 땅의 참주인, 참어른입니까 - <제암리를 아십니까>를 읽고.

장경선 작가의 역사 동화 <제암리를 아십니까>. 작가의 물음에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어 표지 그림으로 시선을 돌렸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소년과 소녀. 한복차림을 한 귀밑머리의 소녀 곁에 있는 닭 한마리. 뒷 표지에는 지난 역사를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이름없는 풀뿌리 같은 백성들이 외친 만세 소리를 잘 들어보라는 추천사가 발췌되어 있다. 사건에 대해 잘 몰랐기에 부끄러웠고,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더더욱 작가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단숨에 읽어나갔다. 이 장편 동화는 일제의 제암리 학살 사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다룬 이야기다. 1919년 당시 전국적으로 확산된 3.1독립운동의 흐름속에서 제암리 발안 -지금의 화성 지역 - 장터에서 수원군 최대 규모의 연합 만세항쟁운동이일어났다. 일제는 3.1독립운동..

book. paper + log 2019.03.21

[제암리를 아십니까] 장경선 역사동화

​ / "다음에 어른이 되면 너희 나라가 지은 죄를 낱낱이 세상에 알려. 이건 사사까 아들 나카무라가 아니라, 나에게 쑥을 캐 주던 동무에게 부탁하는 거야." / 장경선 장편 역사동화 p. 186 중에서. * 3.1독립운동 그리고 제암리 학살사건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만세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3월 31일 제암리 발안(지금의 화성) 장터에서 시민들이 참여한 만세항쟁이 일어나고 수원군 최대 규모의 연합시위로 확대된다. 일본군의 진압 과정에서 시위대 한 명이 목숨을 잃자, 시위대는 일본 순사를 처단하고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불태우며 저항에 나선다. 헌병과 경찰은 시위 주동자를 체포하는데 혈안이 되어 마을의 가옥에 불을 지르고 고문을 가하며 무자비한 진압작전..

book. paper + log 2019.03.14

[우연의 신] _ 손보미

​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빨강 표지에 이끌려 잠시 데려온 책. 끊어읽기하려다 가속도가 붙어 한 숨에 한달음에 보았다. 삶은 무수히 많은 우연과 우연의 점들이 닿아 머무르다가 또 지나가는 장면들의 집합.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던 인물의 일상에 균열을 낸 단 한 방울의 우연, 아니 방울방울 이어지는 뜻밖의 일들로 삶은 또 다르게 굴러간다. 거듭되는 우연 속에서도 우연한 선택을 통해 접하는 우연한 만남과 우연히 느끼는 감정들은 이상하리만치 낯설지만 다르게 전개되고 또 흘러간다. 루틴함에 갇힌 일상에서는 볼 수 없던 다름의 모습으로. 그래서 결말은? 글쎄. 아무도 모른다. 끝을 모르고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처럼.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헷갈리는 정교한 구조의 소설이다. 삶도 그러하지 않은가. 치밀한 ..

book. paper + log 2019.03.12

[아빠가 되었습니다만,] _ 요시타케 신스케

​​​ 세 남자가 잠든 밤. 기어코 이불 밖으로 기어나와 낮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중 하나를 꺼내들었다. 요시타케 신스케 [아빠가 되었습니다만,] 엄마 껌딱지 두 아들을 키우며 독박육아 참 서럽다고 했던 날이 언제던가. 한땐 치열하게 불만의 끝을 달리며 뾰족뾰족 일상의 연속이었는데. 작가의 일러스트 에세이 보며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보면 이젠 좀 여유가 생긴 걸까. 천재그림책작가답게 위트와 센스, 유머는 말할 것도 없고. 그래도 참 열심히 육아에 참여한 열혈아빠 인정. 나 힘들다 버겁다 짜증만 냈지 사실 아빠가 외로운 건 잘 몰랐다. 아니, 알았더라도 거기까지 보듬어주기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웠던 일... * 책 속에서 * 05 어른의 세계 어른이 되고, 또 아빠가 되고 나서 가장 놀라는 건, 주..

book. paper + log 2019.03.08

[선생님, 우리 얘기 들리세요?] _ 롭 부예

[선생님, 우리 얘기 들리세요?] (롭 부예 저 | 김선희 역 | 다른 | 2011) ⠀⠀⠀ ​ 스노힐 초등학교의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7명의 아이들과 테업트 선생님의 이야기. 아이들 각자의 솔직한 시점으로 전개되는 서술 방식 덕분에 쉽게 술술 읽힌다. 친구와 부모,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이들의 진짜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야기의 중심엔 테업트 선생님이 있다. 선생님은 1달러짜리 단어 찾기, 축구장 풀잎이 몇 개일까 세어보기, 자기 맘대로 식물 키워보기, 특수반에 가서 체험해보기 등 조금 특이한 활동을 통해 아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준다.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한 발 멀리 떨어져서 아이들의 면면을 살피는 어른으로서 말이다. 칭찬 고리가 바닥에 닿아 드디어 아이들이..

book. paper + log 2019.03.06

손홍규 산문집 -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 [손홍규 산문집-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2018)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외롭고 쓸쓸한 풍경의 잔상이 아른거린다. 불빛이 켜진 도시 속에, 말할 수 없는 아린 상처를 감추고 돌아갈 곳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는 한 인간의 뒷모습이 보인다. 소설가가 끌어안고 눈길을 주던 무수히 많은 풍경의 조각들이, 작가 자신과 가족과 친구와 이름 모를 노인과, 사랑하는 그 어떤 것들, 그리고 활자 속의 또 다른 작가들의 뿌리에서 자라난 이야기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이 책을 읽고 남은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밖에 답을 할 수가 없다. 요약된 단 하나의 문장이기보다는 저마다의 숨결이 담긴 풍경화의 이미지다. ​“길고 긴 독서 끝에 남는 건 거대한 하나의 이미지다.” (불가능한 아름다움, ..

book. paper + log 2019.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