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paper + log 97

[다시, 그림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Conversations with David Hockney [다시, 그림이다] 마틴 게이퍼드 지음 주은정 옮김 | 디자인하우스(2012)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자발적 집콕 생활도 제법 적응할 만큼 적응하고 나니 이제사 갈무리하기만 급급했던 지나간 시간을 천천히 되돌아보고 정리해 둘 여백이 생기는 것 같다. 지난 주엔 장난감과 책이 어지러진 방을 정리했고, 이번 주 들어서는 쌓아 두었던 책을 틈틈이 보는 여유가 조금씩 생겼다. 아이들 학교와 어린이집은 방학 및 휴원 연장이 되고, 남편은 재택근무에 돌입하는 와중에 네 식구의 삼시 세끼 타임은 어김없이 찾아오지만. 오늘은 맘 먹고 지난 여름, 뜨거웠던 8월로 잠깐 돌아가려 한다. 작년 여름, 데이비드 호크니 전..

book. paper + log 2020.03.11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 마르셀 프루스트 이건수 옮김, 민음사(2019) 달달 은은한 바닐라맛과 핑크빛 달콤한 딸기맛 두 개의 층이 존재하는 츄파츕스 막대사탕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사랑스러운(로맨틱, 러블리의 모든 것) 표지 컬러에 반해 집어 고른 책. 시간, 빛깔, 몽상... 이 고유한 언어의 끌림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모든 걸 가능케 하는 프루스트. - 책 속에서, 부드러운 달은 사물들을 보여 준다기보다 환기시켰는데, 사물들의 실루엣 위로 어둠을 없애지 못할 정도로 창백한 빛, 사물들 형태에 대한 망각같이 두터워진 빛을 퍼뜨리고 있었다. (...) 사랑은 꺼져 버렸고, 망각의 문턱에서 나는 두렵다. 그러나 모든 지나가 버린 행복들과 치유된 고통들은 진정되고, 조금은 희미해지고, 아주 가까이 있으면서..

book. paper + log 2020.03.10

[티티새] 눈부신 여름날, 바다, 그리고

[티티새] 요시모토 바나나, 김난주 옮김, 민음사(2003) 츠구미는 정말이지, 밉살스러운 여자 애였다. (p.7, 도깨비 우편함 중에서) 아니다, 밤 때문이다. 그렇게 공기가 맑은 밤이면, 사람은 자기 속내를 얘기하고 만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열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멀리서 빛나는 별에게 말을 걸듯. 내 머릿속 ‘여름밤’ 폴더에는 이런 밤에 대한 파일이 몇 개나 저장돼 있다. 어렸을 적, 셋이서 하염없이 걸었던 밤과 비슷한 자리에, 오늘 밤 역시 저장될 것이다. (p.84 , 밤 중에서) “마리아, 먼저 간다!” 라고 외치고는 철썩이는 파도 속으로 달려갔다. 팔꿈치에서 손 모양까지, 나와 너무 닮은 모습을 보고는 갑자기 가슴이 뭉클했다. 역시 저 사람은 틀림없는 나의 아버지라고, 선 크림을 바르..

book. paper + log 2020.03.09

글쓰기 에세이 _ 홍승은 _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작가, 어크로스(2020) 솔직하고 다정하게 글쓰기를 건네는 책, 제목만으로도 끌렸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출판사 어크로스의 사전서평단 공지를 스크랩해 두고서 한동안 고민을 했던 것 같다. 흩어진 스케치 조각으로만 존재했던 글감을 지난 해 좋은 기회를 통해 멘토와 멘티의 도움을 받아 여러 챕터의 글을 완성한 경험이 있다. 그 뒤로 나의 ‘쓰기’는 잠시 멈춤 상태로 정체되고 말았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기도 했지만, 다시 들여다볼수록 부족함이 보이고, 그 다음 단계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도 했다. 다시 쓰는 일을 어떻게 할지, 어떻게 하면 글을 좀 더 잘 쓸 수 있을지 내적인 갈등이 내면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던 참이었다. 사전서평단 모집 마감..

book. paper + log 2020.01.31

숨가쁘게 달려오느라 지친 당신을 위한 그림책 처방전 [잃어버린 영혼]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 올가 토가르축 글 /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 이지원 옮김 / 사계절(2018) 어제와 같은 오늘이 계속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어제와는 180도 다른 오늘이. 그런 순간이 눈 앞에 불현듯 펼쳐진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폴란드 출신의 소설가,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가르축의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질문이다. 마침 이 그림책을 본 것이 허당 주인에게 경고의 시그널을 보내고서 홀연히 꺼져버린 휴대전화를 고친 다음날이라 더 감정이입이 된 탓일까. 애정해 마지않는 휴대전화의 심정지 이상은 새 제품으로 신속하게 교체하여 생을 이어간다지만, 우리네 삶은? 어느 날, 출장길 한 호텔방에서 한밤 중에 깨어난..

book. paper + log 2019.12.31

[놓치고 싶지 않아] _ essay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으로 점철된 밤을 보내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돌이켜보면 아직 철들지 못한 자아에 비친 자화상에 불과했음을. 삶을 보는 관점의 축을 과거에서 현재로,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지점으로 옮겨 놓으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끙끙대는 마음을 버리니 불안을 불안으로 간신히 버티는 게 아니라, 지금 현재 내 앞에 놓인 시간을 더 소중히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seize the day. 오늘을 붙잡으라는 뜻이자 ‘카르페디엠’과도 같은 말. 책을 다 읽고 난 뒤 이 말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 무한 애정을 쏟으며, 눈 앞에 있는 아이들과 미술 활동을 통해 진심 소통하고자 하는 저자의 모습과 닮아서다. 이 책은 입시미술에서 아동미술로 길을 바꾸..

book. paper + log 2019.12.21

어른이들을 위한 인생 그림책 [두 갈래 길]

작가의 서문부터 푹 빠져드는 책들이 있다. 마치 영화 속 인트로 한 장면처럼, 독자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한쪽 어깨에 손을 올리고 토닥토닥이면서 함께 걸어가 보지 않겠냐고, 같이 가자고 이끌어 주는 다정한 손짓에 토 달지 않고 자연스레 동행하게 되는 책. 혹은 작가가 애정 해마지않는 특별한 누군가에게 남기는 헌사를 만날 때면 ‘specially thanks to’에 등장하는 그 사람이 부러웠다가 이내 작품을 선물로 남기는 작가라는 글 쓰는 사람 자체가 부러워지기도 한다. 에디스 네스빗의 서문이 그러했다. TO JOHN BLAND My Lamb, you are so very small, You have not learned to read at all; Yet never a printed book withst..

book. paper + log 2019.12.10

[로지의 산책] 후속작 [로지의 병아리]

⠀ ​ 오랜만에 도서관에 퍼질러 앉았다가 발견하고 빌려온 책. 판교 쪽에 눈 온다는 소식 듣고 나도 모르게 흰 그림들, 겨울 느낌의 그림책만 집어 들었다가 로지 보고 기분이 쨍하게 상큼해졌다. ⠀ 국제도서전에서 받은 봄볕 출판사 엽서에서 팻 허친스의 그림을 보고 반가웠는데 원서는 2015년, 국내엔 2016년 출판된 그림책을 오늘에서야 만나다니. ⠀ 산책하는 로지가 엄마가 되었다! 68년도에 첫 출간된 이래 많은 사랑을 받은 Rosie’s Walk 에 이어 무려 48년 만에 속편이 나온 것. Hodder 어린이책 출판인(Anne McNeil)의 제안으로 로지가 병아리를 낳았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생각하다 후속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인터뷰 기사는 bookseller, 2015) 아마 이 책이, 지금은..

book. paper + log 2019.12.03

[세상끝에 있는 너에게] 가고 말거야!

​ ​나의 새에게, 햇살이 따뜻한 남쪽 섬에는 잘 도착했니? 벌써 네가 보고 싶구나. 너와 함께 보낸 지난여름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하지만 넌 겨울이 오기 전에 서둘러 떠나 버렸지. 왜 우리는 해마다 헤어져야 할까? ​이번 주가 지나면 겨울이 닥칠 거야. 모두들 굴이나 둥지, 땅굴에 밤과 도토리를 착착 쌓아 놓고 있어. 겨울잠을 자려면 나도 슬슬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럴 마음이 통 생기지를 않네. 난 너한테 날마다 편지를 쓰기로 했어. 그러면 꼭 네가 곁에 있는 것 같으니까. 바람이 내 편지를 날라다 줄 거야. 잘 지내, 나의 새야. 너의 곰이 **********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고티에 다비드. 마리 꼬드리 쓰고 그림. 이경혜 옮김. 키다리 출판사(2018) ********** to. so..

book. paper + log 2019.12.02

아침 산책 _ 메리 올리버

감사를 뜻하는 말들은 많다. 그저 속삭일 수 밖에 없는 말들. 아니면 노래할 수 밖에 없는 말들. 딱새는 울음으로 감사를 전한다. 뱀은 뱅글뱅글 돌고 비버는 연못 위에서 꼬리를 친다. 솔숲의 사슴은 발을 구른다. 황금방울새는 눈부시게 빛나며 날아오른다. 사람은, 가끔, 말러의 곡을 흥얼거린다. 아니면 떡갈나무 고목을 끌어안는다. 아니면 예쁜 연필과 노트를 꺼내 감동의 말들, 키스의 말들을 적는다. 메리 올리버 , 마음산책(2013), 128p. * 아침! 코끝 찡해지는 찬 바람이 신선하고 상쾌해 마지않던 잠깐의 아침 산책 후에. 겨울이다.

book. paper + log 2019.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