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섬]
이명애 지음 | 상출판사(2014)
바다 저편을 바라보는 새 한 마리가 있다.
쓸쓸하다. 외롭다.
주위를 둘러싼 바다의 풍경이 고요한 가운데 황망하기 그지없다. 무엇을 저리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걸까. 책 표지를 넘기자 은은한 에메랄드빛 바닷물과
회색, 검은색.. 무채색의 섬이 그려진 면지가 이야기의 서막을 여는 듯, 조용하고 고독한 바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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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색으로 촘촘히 표현된 수많은 집과 빽빽히 들어찬 건물, 빌딩들. 인간이 사는 대륙의 삶이 단적으로 느껴진다.
폐타이어, 패트병, 겉으론 알 수 없는 거대한 자루들이 트럭에 실려 오고, 짐을 운송하는 사람들, 차의 표정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맡겨진 일을 하는 것이라는 듯, 냉정하고 무덤덤하게 물건을 옮긴다.
그리고 수많은 군중.
마트에서 갖가지 물건을 사 카트를 가득 채운 사람들, 저마다 비닐봉지로 짐작되는 곳에 새로 산 물건을 꽉 채워 담아 두 손에 들고, 머리에 이고 바삐 움직인다. 새들 눈엔 알록달록하게 비치는 무언가가 가득하다.
강을 따라, 바다를 따라 그물망에 걸려 들어오는 알록달록한 것들. 때론 태풍과 해일이 불어 거센 파도와 함께 바닷가로 엄청나게 몰려오는 물건들. 사람이 쓰고 남은, 버려진 폐기물들과 쓰레기들로 섬은 어느새 알록달록한 쓰레기섬이 되어간다.
호기심에 관심을 보이던 몇몇 새들과 동물들은 폐그물과 배드민턴 체에 몸이 끼고, 놀고 쩝쩝 입맛을 다시다가 꿀꺽 저도 모르게 삼키기도 하며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쓰레기 더미가 무엇인지, 어떤 존재인지 알리 없는 자연의 소중한 생명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 무구한 생명들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금세 눈물이 차오를 정도다. 우리가 지금 지구에, 자연에 무슨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림에 담긴 바다 환경이 처한 현실과 버려진 인간의 양심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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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 사용이 아직 일상의 깊은 습관으로 자리잡지 않아 테이크아웃 커피를 먹게될 때마다 뒤늦게 후회를 하고 양심이 찔리곤 한다. 머리는 알지만 여전히 행동력이 굼뜨고 느린 게다. 카페 내에선 일회용잔이 금지되어 있어 요새는 머그잔에 차를 마시는 게 일상이지만. 그래도 지구와 환경을 위한 노력은 여전히 부족해서 미안한 마음이 늘 생긴다.
파주 출판단지 내에 있는 카페에서 있던 일이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오는데 개폐용 플라스틱 뚜껑으로 덮은 일회용 종이컵이 나와 살짝 당황해서 머그잔이 아닌 이유를 물었다. 아니, 그 전에 내가 먼저 잔에 달라고 요청을 했어야 했나? 업체 직원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카페이다보니 현실적으로 머그잔이 아니라 일회용 컵을 선호한다고.
옆에 있던 남편이 내게 눈총을 주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머그잔을 요청하지도 않은데다, 정부에서 단속반 출동했냐며 타박까지 주는 터에 논쟁은 거기서 멈추어야 했지만. 카페에 있는 내내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금요일 밤 10시. 여덟살 큰 아이가 숙제를 후다닥 마치고 <정글의법칙>을 보려고 티비를 켰다. 평일 중 유일하게 늦잠을 자도 되는 불금이자 저녁 티비 시청이 허락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족장을 포함한 정글 가족들이 도착한 곳은 쓰레기섬. '도구 없이 생활하기'가 미션으로 주어지고, 짐을 내려놓고 바닷가에 휩쓸려 온 쓰레기를 탐색한다. 짝이 없는 오리발, 녹이 슨 선풍기망, 한쪽 알이 빠진 수경, 망가진 우산 살 등 육지에서 떠내려 온 쓰레기들이 한 가득이다. 코에 빨대가 낀 거북이를 구하는 구조대의 다큐 영상을 보며 아이도 어느새 짐짓 심각한 표정이다.
마트를 다녀와 냉장고에 식재료를 채우고 나면, 개수대를 가득 채운 1회용 봉지와 플라스틱 용기에 한 숨이 절로 나온다.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하는 마음 또한 결코 가볍지않다. 올 봄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겪은 뒤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성실히 분류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생긴다. 내가 쓰고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지금껏 어디로 가고, 앞으론 어떻게 되는 것인지 막막하기만 하다.
생수 패트병은 물론 국내에서 생산된 천일염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뉴스 또한 충격적이다. 내분비계 교란을 일으킨다는 환경 호르몬의 악영향에 대한 경고에 이어 점점 칼날이 우리 인간에게 향하는 듯 하다.
돈을 주고 편리를 산 댓가로 '플라스틱 지구'는 괴롭고, 숨을 쉬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생명의 하루하루가 위태롭다. 미세먼지며 폭염이며 우리가 치르는 대가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그림책보다 더 암울한 현실, 책임을 져야하는 우리의
자성과 반성, 그리고 행동력이 시급한 때이다. 그림책을 보는 내내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 없어 부끄러웠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 됐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단 나으리. 내일이면 늦으리...돈이면 다 되는 시대, 이젠 의식 조차 하지 않는 작금의 현실이 너무 무섭고 두렵다.
아이들과 함께 본다면 지구 환경이 처한 현실과 인간의 무관심, 환경 보호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그림책이다.
* * * * *
🌿작가 소개
먹형이 좋아 대학에서 동양화를 공부했고,
지금은 그 향을 그림책에 담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권의 아이들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플라스틱 섬>은 작가가 직접 쓰고 그린 첫 책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과 현상을
아이들과 그림책으로 소통하며 공감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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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에 대한 신간 그림책
•이런 개구리는 처음이야(2018)
(올가 데 디오스 글 그림 | 노란상상)
•그린 피스의 집(2018)
(다케우치 마유코 그림 | 오이카와 겐지 글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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