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Educated)
타라 웨스트오버 |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2020)
볼드체 영문 제목 아래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라는 메인 카피를 보고 이상적인 교육관, 혹은 그러한 실천을 다룬 교양도서인 줄로만 알았다. 그건 큰 착각이었다. 책은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영화 속 비쥬얼처럼 명징하게 그려진, 결국엔 한 사람의 역사를 새로 쓰는, 타라 웨스트오버의 회고록이다.
도서관에서 빌려올 때만 하더라도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상당한 두께감에 부담이 있었지만 한번 펼쳐든 책은 쉬이 멈출 수 없었고 이틀에 걸쳐 앉은 자리에서 절반씩 읽어 끝장에 이르렀다.
부모의 절대신념과 권력은 그토록 무서운 것이었다. 가족 모두 생사를 다투는 절체절명의 사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맹신에 굴복한 저항은 다쓰고 난 고철처럼 휙휙 휘고 만다. 폐철 처리장의 아찔한 작업 과정, 예견된 사고, 약초에 의존한 자가치료, 폭력을 폭력이라 말하지 못했던 사건... 영화라면 눈 한번 찔끔 감아버리면 그만이지만, 소설보다 더 리얼한 묘사에 사로잡혀 책장을 덮을 수가 없었다.
과거가 완결되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눈을 뜬 이상 다시는 과거에 머물 수는 없는 법. 완벽한 진실도 완성된 허구도 아닌, 켜켜이 쌓여진 거대한 벽과 같은 기억의 혼합층이 더는 그녀를 삼켜 없애진 않을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새겨 세상에 증명해 보였으니 말이다. 새로운 길은 그렇게 열렸다.
* 밑줄
•우리는 어느 장소에 진정으로 속해 있을 때, 그곳의 흙에 뿌리를 내린 채 성장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곳에서 왔다는 말을 할 필요가 있다. <아이다호에서 왔어요>라는 말은 거기를 떠나기 전에는 한 번도 뱉어 본 적이 없는 문장이었다. (p.326)
•과거는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대단치 않은 유령에 불과했다. 무게를 지닌 것은 미래뿐이었다. (p.425)
•그날 밤 나는 그 소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이다.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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