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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리를 아십니까] 장경선 역사동화

greensian 2019. 3. 14. 00:19



/ "다음에 어른이 되면 너희 나라가 지은 죄를 낱낱이 세상에 알려. 이건 사사까 아들 나카무라가 아니라, 나에게 쑥을 캐 주던 동무에게 부탁하는 거야." /

장경선 장편 역사동화 <제암리를 아십니까>
p. 18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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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운동 그리고 제암리 학살사건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만세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3월 31일 제암리 발안(지금의 화성) 장터에서 시민들이 참여한 만세항쟁이 일어나고 수원군 최대 규모의 연합시위로 확대된다. 일본군의 진압 과정에서 시위대 한 명이 목숨을 잃자, 시위대는 일본 순사를 처단하고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불태우며 저항에 나선다. 헌병과 경찰은 시위 주동자를 체포하는데 혈안이 되어 마을의 가옥에 불을 지르고 고문을 가하며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펼친다.

4월 15일, 아리타 중위가 이끄는 일본군은 심한 매질을 사과하러 왔다며 제암리 주민들을 교회로 불러들여 무차별 총격도 모자라 증거를 없애기 위한 방화를 저지른다. 이어서 인근 마을 고주리의 독립운동가 일가를 참살하기까지한다.

3.1독립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학살을 자행한 일제의 무자비한 만행은 영국출신 선교사 스코필드 박사의 글과 사진으로 기록된다. 영자신문 ‘상하이 가제트지’에 보낸 글은 1919년 5월 27일자에 게재, 전 세계에 알려진다. 그러나 제암리 학살의 주범 아리타는 50일 근신 처분 끝에 무죄 판결에 그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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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눈의 독립운동가, 선교사 프랭크 스코필드

"그들이 무엇을 했기에,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다”
- '제함리의 대학살'

"마치 희대의 마녀사냥꾼, 토르케마다와 같은 교활하고 무자비한 일제의 총칼 아래 놓여 있던 1910년대 말미에 한국인들은 평화적인 대일항쟁을 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
(Korea's Fight for Freedom)』 서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