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알라딘을 찾았다. 두 번째 방문.
숨겨놓은 보물단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지나치면 왠지 서운한 느낌이랄까
일주일에 한번은 꼭 들르게 되는 코스가 되었다.
누군가의 손을 단 한번이라도 거친
몇 권의 책을 참 알뜰히도 담아왔다.
딱 하루 지난 내 생일에 대한
지극히도 약소한 아주 아주 작은 선물.
「완벽한 날들」메리 올리버
「글쓰며 사는 삶」나탈리 골드버그
「그림책 쓰기」 이상희
「동물농장」조지 오웰
지난번 가져온 아이 책이나
이번에 모셔온 내 책이나
(이제 내 책이 되었으니 내 책이 맞다^^)
모두 새 책이나 다름없다.
물론 서점의 새 책 코너 선반에 올려진
블링블링 따끈따끈 매끈매끈 신상과는 조금 다른 구석이 있긴 하지만-
1. 책이 잘 펴진다. 새 책은 표지를 넘길 때부터
종이에서 느껴지는 너무도 완벽하고 건강한 탄력성때문에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하지 않으려고 종이를 붙든 손에는
무의식중에도 아무래도 살짝이 힘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이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책을 만지는 손이 한껏 가볍고
한번 깃들여진 책이기에 종이 또한 부드럽다.
2. 표지 모서리 즈음엔 티도 나지 않는 약간의 손떼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내지나 전체적인 상태가 책을 읽는데 전혀 불편함이 되지 않는다.
3. 서점 자체적으로 책의 상태를 점검 후 중고 가격을 매기기에
너덜거리거나 글자를 읽을 수 없는 상태의 책은 아예 없다.
대신, 전 주인의 흔적들을 볼 수는 있다.
그럴 때 몰래 조용히 훔쳐보는 기분이 들다가 더 집중해서 한번 더
반복해서 보기도 하고, 소소한 짧은 메모들을 볼 때면 어느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기도 하다.
이번에 담아온 책 중에 한 권이 파란 형광색의 밑줄이 유난히 눈에 띈다.
많지는 않지만 챕터별로 중요한 내지 맘에 꾹꾹 담고 싶은 문장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형광색을 든 손이 참 반듯하다.
주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을 테고 좋은 글, 영감이 되는 글을 흠모했을
것이다. 자를 대고 긋지는 않았지만 조금의 미동이나 떨림이 없는
참 곧은 손의 시크한 선들이 문득 고맙다.
나중에 언제라도 스르르 책장을 열어볼 때 그 흔적들만 시험 초치기 하듯
훑어봐도 도움이 많이 될 부분이다.
2013.6.
책 내지 첫장에 쓰여진 숫자를 오늘에서야 발견했다.
숫자의 나열 또한 반듯하다.
그 이름 모를 누군가가 그 책을 처음 만난 날.
그로부터 3개월 후 서점으로,
그리고 한 달 뒤 내 손에 들어왔다.
나는 적는다. 이렇게.
힘을 빼고 조금 더 편하게 나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그 누군가의 흔적이 내겐 시작점이 되었다.
"종이 위에 펜을 올려놓지 않으면 당신의 생각은 몽상에 불과하다"
"머뭇거리지 말라 멈추지도 말라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손을 움직여라"
-「글쓰며 사는 삶」 나탈리 골드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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