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1(금) 날씨 맑음
11월 첫날. 신문이건 방송이건 달력 두 장 밖에 남지 않았다고 떠드는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사실이지만 표현 참 식상하고 진부하다. 뭐 더 새로운 표현은 없었던 걸까.
아이와 함께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다. 아이는 병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의 울음보 터지는 소리를 듣고 불안함을 예견하고 접수 전부터 나가자 애원했다. 난 아이의 겁먹은 울음보다 끝을 모르는 대기행렬에 더 머리가 아팠다. 독감주사에 때를 놓쳤던 일본뇌염 주사까지 2개 한꺼번에 맞고 서럽다 통곡하는 아이에게 의사가 준 비타민 하나를 쥐어주고 꼬옥 안아주었다. 엄마의 품보다 더 큰 위로가 있을까. 아니, 녀석에겐 생각보다 비타민의 위안이 꽤 큰 것 같다.
동생 절친의 아버지가 하늘로 가셨다. 폐암말기 진단을 받고 수술도 안하고 몇 개월간을 그저 맨몸으로 버티다 가셨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가족이지만, 더 이상 숨쉬지 않는 남편과 아버지를 염을 하고 입관을 하고 보내드리며, 이 모든 걸 장례기간 절차대로 수행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아팠던 남편, 아버지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직면할 그 먹먹함에 눈물이 난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더는 아프지 않은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남아있는 가족도 지금의 아린 눈물 서로 잘 보듬어가며 다시금 단단해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어서 우리 아빠도 담배 그만하셔야 할텐데...
금세 친구처럼 편안해진 이와 밥을 먹고 차를 마셨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래서 엄마들의 수다는 마음의 보약인가보다. 그저 이야기 나눈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되다니. 날씨 참 좋았다.
어제 보낸 우편물은 운송장을 조회해보니 잘 도착했다. 전화 한통 하지 않아도 참 편리한 세상이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7차전 결과, 두산의 미러클은 이뤄지지 않았다. 난 팬도 아닌데 주위에 인품좋은 많은 두산팬 덕에 종종 소식만 듣다가 마지막 결정판을 조용히 응원했건만 오, 이런. 승리를 눈앞에 두고 눈물 삼킨 결과가 참 애잔하다. 15년전, 나 고3때 1998 월드컵 네덜란드에 5:0으로 처참하게 대패한 기억 스친다. 그 때 나, 축구 뭣도 몰랐는데 새벽녘 혼자 경기 보고 계시던 아버지 옆에서 조용히 응원했더랬다. 그 때나 지금이나 어설픈 입장으로 아예 보지를 말걸. 지나가던 나그네, 진정성이 부족했던 걸까. 오, 이런.
끝.
그리고...
11월 1일이었다. 두 천재 뮤지션이 별이 된 날. 1987년 유재하 그리고 3년 뒤 1990년 김현식.
라디오에선 추모 특집으로 하루 종일 노래가 흘러 나왔다. 그 많고 많은 평범한 날 들 중에 11월의 시작과 함께 기일에 듣는 노래는 참으로 마음이 쓸쓸하다.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되어주는 음악들... 겨울로 건너뛰기 전에 헛헛한 마음 쉬어가라고 토닥이며 달래준다. 쓸쓸한 가을의 뒤안길에서 따스한 손의 온도, 마음으로 전해지는 포근함이 그리워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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