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알아, 그냥 바라보면...
이라는 건 없다. 적어도 언어로 소통하는 인간의 세계에선.
물론, 미운 정 고운 정 다 쌓을만큼 오랜 세월을 겪어 두터워진 시간의 층 만큼 굳이 입술을 보지 않아도 마음으로 눈빛으로 이해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매사가 그럴 수는 없는 법. 그게 리얼리티다.
또한 다 말한다 해서 다 이해되는 것도 아닌 걸. 뱉어진 말을 바라보는 시선, 각도, 마음의 상태, 상황, 의도에 따라 오해가 빚어지기도 하고 층층이 쌓인 꼬여진 오해만큼 풀기 어려운 것도 없다.
그게 리얼한 우리 라이프이기도 하다.
오늘 난, 어떤 커뮤니케이션의 실수를 범했던 것일까. 아니 굳이 실수라고 따옴표 달지 말자. 그저 한번 돌아보자는 것. 토도 달지 말고 해석도 말고 분석도 말고. 행해진 그대로.
그래. 난 오늘 속마음을 말하지 않았다. 내 안에 내재된 무수히 많은 작은 목소리를 겉으로 꺼내지 않았고 그냥 삼켰다.
1. 일단 청소기부터 빠르게 돌리자. 주말동안 집이 넘 지저분해. 다는 못치워도 일단 잔 먼지라도 먼저 스피디하게 - 작업 완료
2. 일단 가방을 바꾸자. 늘 메고 다니는 백팩도 이젠 조금 지겹네. 오늘은 갈색 숄더백을 들어볼까. 하긴 이거 드는 것도 꽤 오랜만이구나.
3. 그럼 넣어야 할게 뭐지? 작은 노트, 어제 보다 만 책, 지갑 그리고 이어폰, 아참! 그리고, 충전기를 챙겨야지, 혹시 오빠 신발 골라주고 나서 같이 차 한잔 이라도 마실 수 있으려나? 아니 강남까지 갈 길 바쁜데 안될 수도 있겠구나. 그럼 나 혼자 시간을 떼워야 하면 도서관이든 카페든 가서 콘센트가 있는 자리 근처에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해야지. 카드는 다른 옷에 있으니 이따 챙겨야해 꼭! - 작업완료 (카드 챙기는 거만 빼고)
4. 휴대폰 충전이 아침까진 빵빵했는데, 아침 먹으며 라디오 듣느라 많이 없어졌거든. 아침먹고 연결해놨어야 했는데, 머리감고 나갈 준비 하느라 챙기질 못했구나. 아까 사골국 데워 놓느라 정신줄 놓고 있었네. - 작업 완료
5. 아차, 안경을 욕실에 두고 나왔네. 오빠 나올 때까지 시간 좀 걸리니, 오늘은 렌즈를 껴볼까. 화정도 했겠다. 웬일로 머리도 바짝 잘 말렸고. 오늘은 렌즈 껴도 될듯. - 작업완료
6. 얼집 원장님에게 톡이 10개나 와 있어. 무슨 일이지?
아 이번주 담임샘 여행간다고 하시더니, 오늘은 원장님이 사진을 찍어 보내셨구나. 오늘 아침 무슨 활동했나 들여봐야지. - 작업완료
7. 올만에 하이힐을 신어볼까. 뭐, 딱히 하이힐도 아니지만 몇달 내내 똑같은 플랫슈즈 신고 다녔더니 신발이 다 늘어났어. 스타킹을 신으면 더 미끄럽거든. 엊그제 신고 나갈까 했는데 아무래도 아이랑 있을 땐 편치 않으니 담으루 미루자고 했거든. 신발장 열면 바로 있었는데 어디있더라. 왜 안보이지. - 구두 찾으며 버버벅....
......
이 수많은 속마음을 삼키고, 묻는 답에 단답으로 결론만 말했다.
오늘 어디가? - 아니, 어딜 가..
충전긴 왜 챙겨? - 혹시 카페(나 다른... 곳) 라도 가면 꽂으려고..
카페는 왜? - 아니, 신발 사고 시간 되면 차 한잔 하든가.. (필수는 아니고)
모해 지금? 뭘 그리 챙겨? 연신내 가는게 뭐라고 - ...
......
그래 오랜만에 데이트 나가는 기분 좀 내려고 했다. 밖에서 만나야 좀 더 설레고 즐기는 기분 나겠는데, 이렇게 같이 나가는 것도 뭐 새롭다 생각했지. 출근하는 기분도 나고(이거야말로 정말 소설이다. 나 왜이러니?) 어딜 가는게 뭐라고 뭐 특별한 일이라고 말이야 그렇게 여겨졌다고. 그게 뭐라고. 아침부터 정말 별거 아닌 거 갖고 설레고 난리치고 설레발 쳤다는 결론.
막상 감정적으로 말을 자르고 가라고 휙 돌아서 집 안에 들어왔을 땐
믹스 커피가 없다.
!!!!!!
오랜만에 커피 내리는 기계를 꺼낸다. 뿌연 먼지 털어내고 물을 채우고 준비완료.
찻장을 열어 그라인드 되어 있는 커피를 꺼냈다.
아.주. 오랜만에 커피를 내린다.
맛과 향기, 어땠냐구?
- 쓰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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