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어제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나오는 길목, 고등학교 입구에 걸린 현수막 하나가 눈에 띈다. 수능 고사장 안내 문구가 쓰여져있다. 파란 신호등이 켜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주책인건지 고개를 숙였다.
목을 감싼 머플러 사이사이로 바람이 들어차서인지, 아님 전날 너무 늦게 잠이 들어 눈이 시려서인지,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노래 때문인지. 전날 포스팅하느라 유재하 음악이 트랙리스트를 채우고 있던 터라 때마침 나의 폰에서는 '가리워진 길'이 흐르고 있었다. 내 눈을 쏟아지지 않는 찰랑찰랑 눈물잔으로 만들어버린 운명같은 타이밍은 바로 그 때였다.
'그대여 힘이 되 주오/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그대여 길을 터 주오/가리워진 나의 길'이 흘러나올 무렵이었다. 수능을 앞둔 수 많은 열 아홉의 미래를 향한 선택,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열 아홉해 동안 한결같았을 수 많은 수험생 엄마 아빠의 마음을 잠시 생각해보다 그냥 감당해낼 수 없는,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버렸다. 그리고는 신호를 바뀌길 기다리고 있는 내가, 집으로 돌아가야 할 내가 보였다. 그러다 15년 전 11월 디데이 전야로 돌아가 있었다.
대망의 디데이를 앞둔 나는 꽤 일찍 잠이 들었으나 도통 잠을 못 이뤘고. 거실 밖 가족들의 이야기 소리가 귓전에 윙윙거릴만큼 잠은 조금도 올만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누워는 있지만 점점 그 소리에 집중하는 내가 있을 뿐. 그러다 세 네시 사이 언저리 어딘가 즈음에서 잠이 들었을까. 아침은 벌써 밝아 있었다. 엄마 아빠 앞에서는 담담한 척 했지만 잔뜩 긴장 어린 몸과 정신 상태를 그저 받아들이며 고사장으로 향했던 것 같다.
참 짧고도 긴 하루였다. 그리고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날이기도 했다. 끝이란게 있을까 싶었던 날들 중 '시험 끝.'이라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기를 기대했다. 그치만 막상 그리 가볍지도 않았다. 진짜 시작은 그 직후였으니까.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며, 답을 맞춰보고 원서를 준비하기까지, 입학 통지서를 받고 입학 전날까지도 정말 끝이 있긴 있는 거냐며 마치 꿈을 꾸는 듯 어슬렁 거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정도의 해방감과 자유를 만끽하는 와중에 문득 찾아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마주하고 선택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까지도 꽤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내 기억 속에 잠자고 있는 나의 열아홉의 마침표이자 스무살 문턱을 넘는 시작점은 그러했다. 지금 보면 일생일대에 모두 다 중요했던 따옴표(" ")로 많은 의미를 부여한 순간 순간일테지만 더 먼 훗 날, 먼 미래의 날 다시 들여다보면 그저 작은 점(.)에 불과할지 모르는 날들.
디데이를 단 몇분 앞둔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도밖에.
잘 지나갈 것이다.. 잘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든 이게 아니듯, 그 무엇이 되었던 간에 그게 끝은 아니다..
간절함을 담아 기도해 본다.
201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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