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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기 준비

greensian 2017. 11. 21. 16:50

어제, 나 홀로 이케아.

춥다. 어느새 겨울. 늦가을은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정말 코 앞에 눈 앞에 겨울이 왔다. 뚝 떨어진 기온에 집 안에도 찬기가 느껴진다. 이사 오고 난방도 최대한 신경 써서 딱 필요한 시간만 돌리기 시작했는데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안방에 커튼을 단 이후로 좀 더 아늑해지고 따뜻해져서 거실에도 커튼을 달고 싶은데 이전 집에서 썼던 초록 패턴 커튼 말고 다른 분위기를 내 보고 싶어 이케아로 향했다. 흰 색은 때가 타기에 꺼리는 게 보통인데, 넓은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흰 색으로 가련다. 더러워지면 빨면 그만. 그만큼 청소도 더 신경 쓰게 되고 괜찮을 거라고 나름 합리화를 하고. 회색도 괜찮았는데, 어두워지는 느낌은 싫어서 일단 시도해보자고 고른 게 렌다 화이트 + 네이비 꽃무늬(이름 생각이 안나네). 이케아 커튼의 단점은 길이가 250cm라서 보통 우리네 집 천정 길이랑 맞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다림질만으로 밑단을 줄일 수 있는 접착테이프를 별도로 판다. 아주 센스있는 도구가 아닐 수 없다.

윤이 돌아오는 시간에 빠듯하게 맞춰 집으로 데려와 스파게티를 해 먹이고 피아노와 태권도 학원을 보내놓고 작업 시작. 대신 꼬망을 데려오는 시간은 좀 늦추기로 한다. 패브릭 작업은 재단하는 시간이 제일 오래 걸리는 데 아니나 다를까 손이 빠르지 않은 나로서는 마음만 바쁘고 행동은 굼뜬다. 커튼 네 폭을 한 시간 안에 다 줄여야 하는데 마음만 급해지고. 서투른 솜씨로나마 한 폭을 다 줄여놓으니 이제 요령을 좀 알게 되어 작업에 속도가 붙는다. 세탁할 때 쉽게 떨어지면 어쩌나 염려가 되지만 그 때 쯤 되어 다시 한번 점검하는 걸로. 어느덧 40~50분이 흐르고, 3미터가 넘는 커튼 봉에 천을 다는 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일단 직진이다. 베란다 한 켠에 있던 노란색 페인트로 칠한 의자를 꺼내오고, 남편의 간이 침대를 받침대 삼아 커튼봉을 내렸다. 생각만큼 어려운 게 아니었어!

커튼 네 폭을 커튼 봉에 다 달고 나서야 꼬망을 집으로 데려왔다. 거실에 들어오자마자 뭔가 다른 분위기를 감지하고 커튼을 만져보는 아이. 느낌적(?) 느낌인가. 아침보다, 어제보다 훨씬 아늑해진 기분. 이 정도면 됐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하얀 커튼은 좀 심심한 느낌. 무엇으로 채워볼까.

 

첫 눈.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다.

색종이를 접어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이젠 꼬망 하원이도 심드렁한 뽀로로 색종이다. 넓은 집의 로망은 크나 큰 크리스마스 트리 아닐까? 그런데 딱히 큰 트리를 들이고 싶은 마음이 한 톨도 안 생긴다. 장식품만 조금 다를 뿐 거기서 거기인 데다 거금을 투자해야 하는데 길어봐야 한 달을 넘기지 않고 창고로 들어가야 하는 그 신세가 너무 안 되어 보여 뭔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 며칠 전부터 구상했던 터. 집에 남아도는 게 색종이여서 색종이로 삼각모양을 만들어 커튼에 트리를 장식했다. 말이 장식이지 테이프 접착력의 힘으로 겨우 붙어있는 종이일 뿐. 커튼 색 때문인지 생각보다 예쁘게 잘 만들어졌네. 거기에다가 하윤의 메시지까지. ‘큰 선물은 바닥에, 작은 선물은 큰 양말에’ 선물 최소 2개 이상은 받아야겠다는 아이의 심리인가. 과연 일곱 살은 고수다. 

남편은 이틀째 새벽같이 출근했다. 하하 형제도 각자 자기가 있을 곳으로 등원했다. 엊그제부터 푹 빠져있는 어반자카파의 노래를 켰다. 하루사이 뽀얗게 쌓인 먼지와 과자 부스러기, 아이들의 옷과 신발에 달려온 모래 알갱이, 뒤엉킨 장난감을 정리한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만큼은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쓰고 싶어 청소와 설거지는 늘 아이들 픽업시간 직전 초고속으로 하곤 했다. 그래서 살림이 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집은 치워도 치워도 다시 어질러지는 공간이기에 정리 강박증 따위는 내려놓은 지 오래. 둘째 꼬망이가 크면서부터는 이사 오기 전의 작은 집이 정리가 안 되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곳 위주로만 치우곤 했다. 뭐든지 비우지 않고서는 정리가 되지 않는 법. 그렇다고 이사를 하면서 마음을 먹고 버리고 온 짐은 몇 개 없다. 예쁘게 단정히 정리하고 하고 싶은 마음이 일렁이다가도, 정리를 위해서는 정리를 위한 도구가 필요한데 이 또한 비용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제법 튼튼하게 모양을 갖춘 재활용 상자와 통을 이용한 수납이 집안 곳곳에 제 멋대로 차지했다. 보다 큰 그림을 그리는 재주 보다는 소소하게 잔재주로 가꿔나가는 재미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때 그 때 툭 생각나는 아이디어와 그야말로 실제 쓰임에 있어 쉽고 편하고 안전한 것이면 그걸로 만족하기 때문에.

 

다시, 이케아...

내가 지난 금요일에 이어 오늘도 이케아를 갔던 이유, 이케아를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일단 눈호강. 전문가가 배치한 여러 가구들의 조합과 어울림, 우리 집에서는 연출할 수 없었던 독특한 색감과 개성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족되는 기쁨이 있다. 내가 사는 집을 저렇게 꾸미고 싶다거나 통째로 집으로 옮겨놓고 싶다는 건 아니고. 집은 내가 꾸며가며 가꾸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기에 쇼룸 그대로 집에 연출하는 건 너무 재미없잖아. 좁은 공간이라도 적재적소에 맞는 활용도에 감탄하기도 하고, 재미있거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주는 영감이 특별하기도 하다. 나에게 타고난 감각 따윈 없다는 걸 잘 알기에 보면서 익히고 최대한 내 나름의 방법대로, 나만의 색깔로 활용할 수 있는 센스를 모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그 다음은 당연히 비용. 값으로 칠 때 꼭 비싸지 않아도 내 입맛에, 내 개성에, 내 취향에 어울리는 조합을 찾고 싶은 욕구 때문이기도 하다. 흔히 이케아를 말할 때 싸게 사서 한 번 쓰기엔 괜찮다라고 한다. 조립식이라 임가공비가 들지 않기에 비싸지 않아서 부담이 없다. 살림 씀씀이를 걱정하는 주부는 물론, 신혼부부, 혼자 사는 사람들, 해외에서는 유학생들이 선호한다. 가구와 생활용품을 구색에 맞춘다면 인테리어 효과까지 거둘 수 있으니까.

특별히 이케아를 편애하는 이유 중 하나는 되새기고 싶은 기억 때문이다. 그 때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가 그 때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랄까. 2010년 1월, 도망치듯 서울을 빠져나와 외삼촌이 있는 빈으로 훌쩍 떠나 남편에겐 반강제로 여행을 강요하고 충분히 이기적인 시간을 보냈던 그 때로 말이다. 외삼촌과 숙모와 함께 빈 외교에 있는 이케아를 처음 가 보고는 낯설지만 새로운 공간에서 마주한 설렘의 신세계를 경험했던 것이다. 외삼촌은 딱딱하기 그지없는 빵쪼가리와 커피가 뭐가 맛있냐고 심드렁해 하셨지만 숙모와 나는 커피 한 잔에 브런치를 함께하는 그 순간이 금쪽같이 너무 좋았다. 적당히 따스한 햇살과 천정이 높아 널찍한 공간이 주는 시원함, 그 날 그 아침의 커피가 여전히 그립다.

당시 나와 남편은 신혼이었다. 우리는 9년 열애, 6개월차 신혼부부였다. 깜냥보다는 서툰 마음이 앞서 수없이 깨지고 깨져 일이 두려웠던 그 당시, 신혼을 누리지도 못하고 신혼 특유의 달달함과 격정의 로맨스는 실종되었을지 몰라도. 손수 가꾸어 마련한 그 공간에 어울릴만한 쿠션이랑 소소한 소품과 기념용 원두 커피를 골라왔을 때 외삼촌은 조카 내외를 위해 선뜻 지갑을 열었다. 내가 이케아를 아끼고 아끼는 마음은, 아마도 친구와 뉴욕 한 공원철체 테이블에서 쉐이크쉑버거를 먹었던 그 기억과 맞먹는다. 그래서인가보다. 내가 스타필드에 들어와 있다는 쉐이크쉑버거가 별로 그다지 부럽지 않은 이유가. 당연히 그 장소에서의 그 맛, 그 기억, 그 기분이 안 날테니까.

 

어제 밤. 사원증을 자랑하는 남편.

남편이 판교에 위치한 회사에 입사했다. 오늘로 출근 이틀째. 고양에서 판교까지 출퇴근을 어떻게 할지 이사를 하는 게 맞을 지 우리는 몇 주 동안 고민했다. 아니, 남편은 일찍이 고민을 접고 털어냈는데, 내가 마음 앓이를 했다. 나만. 지금 집으로 이사 온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인 데다 내년 윤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머리가 복잡해져 잠도 오지 않는 몇날 며칠을 보냈다. 결론은 비용이 너무 과하게 든 탓에 접기로. 어쩌면 유보상태. 큰 아이가 자라는 거의 5년에 가까운 시간을 여기에서 적응하고 안정된 생활에 나름 만족하고 있는 지라 큰 결정이 쉽지가 않다.

첫 날 하루 종일 오리엔테이션만 했다는 남편은 밤10시 반이 넘는 시간에 퇴근해서 들어와 첫 출근의 상황을 보고하고 임시로 받은 사원증을 자랑했다. 마트에서 산 스누피 후드티를 기어이 입고서 사원증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이 들어간 사원증은 1주일 정도 있어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아직 밤잠을 자고 있지 않았던 윤이는 아빠의 사원증과 비슷하게 생긴, 애버랜드에 가서 샀던 목걸이를 자기도 달고 싶다고 했다.  

난 대학 졸업 후 방송국에 들어가 사원증을 달고 싶었다. 라디오 방송국 PD가 아니면 의미없다는 생각에 1년여를 공부하고 나서 무턱대고 인턴으로 공연기획사를 들어갔다. 거기서 인연이 되어 음반, 공연 기획사를 들어갔다. 소속 아티스트의 음반 녹음 작업을 위해 출입증을 받아 방송국에 들락날락 거리긴 했다. 그러고 나서 문화재단에서 근무하다 제안을 받고 다시 전 직장으로 돌아갔다. 한번 도돌이표를 그려 되돌아보면 탈출구 없는 영원한 뫼비우스의 띠, 그 굴레 안에서 돌고 돌기만 하는 내 과거의 커리어. 탈출구를 찾고 찾다가 무작정 도망치듯 나와 버린 서투르고 서투르기만 했던 나의 어린 날. 무작정 그리워할 수도 무작정 아쉬워할 수도 무작정 후회할 수도 없이 지나가버린 시간이 덧없이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

사원증을 자랑하는 남편. 난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집 걱정, 아이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그대가. 나도 함께, 같이 성장했더라면. 그랬을 수 있다면. 이 따위 가정법은 지금 내 현실에 마땅하지가 않다. 그 때 성장했더라면 컸을 그 때의 나와는 다른, 지금의 내가 있으니까. 그 때의 어린 나와 지금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은 아니지만, 다른 길로 성장하고 있는 또 다른 나이니까. 치기 어리고 잘난 줄 알았고, 자만심 가득했던 어릴 적의 내 모습이 바람같이 일렁인다.

코 끝에 겨울은 왔다. 집에 남은 나는 집 안의 온기를 지피려고, 한 때 꾸던 꿈의 시간들을 애써 닫으며 마음의 틈을 여민다. 찬바람 들어오지 않게, 더 이상 마음 시리지 않게. 마음 단속... 이젠 겨울을 준비할 때다.

 

20171121@sweet home 우리 집은 겨울 나기 준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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