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이 들려주는 하늘에서 본 지구 이야기
얀 아르튀스-베르트랑 Yann-Arthus-Bertrand ㅣ 황금물결(2010)
사악한 폭염으로 들끓었던 여름의 끝자락에 태풍이 지나가고 난 자리가 어쩐지 뒤숭숭하다. 예고 없는 물폭탄으로 전국 곳곳이 바짝 긴장모드. 불볕더위가 꺾이고 구름 총총 온통 파랑이던 하늘이 그립다. 가을 채비를 하던 하늘빛과 바람은 언제고 예고없이 나타나도 좋을 선물이었는데...
한 주 동안 비구름 몰고 와 잔뜩 성을 낼 하늘을 볼 자신이 없다. 구름과 구름사이 저 어딘가 틈을 비집고 가끔 햇살 한 줄기라도 반짝 빛나주길. 수증기 만나 무지개 콜라보를 깜짝 선보여도 참 좋겠다. 어깨가 무거운 회색 구름아, 너무 급하게는 말고 천천히 짐을 풀어 놓으려무나. 쉬어가는 빗소리 바람소리에 우리도 쉬어갈 수 있게...
나의 소확행 제 1번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볼 때 마주하는 빛깔과 구름의 태, 바람 내음에 있다. 여기에 초록 잎들의 여린 움직임까지 더해지면 소확행은 점점 부풀어 오르고, 좋은 음악까지 곁들여지면 그 자체만으로도 평온한 우주에 있는 기분이 든다. 그 순간을 아주 길게 늘이고 늘여서 오래토록 붙들고 싶어진다. 아주 거대하고 거대한 하늘만이 존재하고 나는 새까맣게 작아지지만 내가 사유하는 소확행은 그 언제보다도 커다래진다.
이것만큼 특별해지는 소확행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하늘 위에서 세상 아래를 내려다보는 일. 비행기 차창 밖으로 보이는 완전체 뭉게 구름은 질감과 결이 탱탱하게 살아 있어서 금방이라도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만져보고 꺼내 먹고 싶은 충동마저 든다. 구름 아래로 펼쳐 있는 아기자기한 세상 미니어처는 또 어떤지. 여기 저기 뻗어있는 길을 따라 손 그림을 그려보다가 꽉 막힌 꼬마 자동차 행렬이 보이면 손으로 살짝 집어 들어 뻥 뚫린 길로 내려주고 싶어지고...밤이면 불빛만이 총총 떠있는 그 곳이 지상계의 은하수가 아닐까 하고 착각하게 된다. 요즘은 꼭 비행기를 타지 않더라도,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종종 드론이 보여주는 영상으로 좀 더 쉽게 보며 대리만족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
하늘 위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기쁨을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책이 있다. 프랑스의 항공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베르트랑의 사진집 [얀이 들려주는 하늘에서 본 지구이야기]이다.
지난 5월 어린이날 주간 전 후로 리딩맘(책 읽어주는 엄마 _ 올 해, 큰아이 입학 기념으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활동을 시작했다)시간에 보여주었는데 아이들이 참 좋아했다. 주로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골라 가는데, 특별한 날인만큼 하늘에서 내려다 본 풍경을 선물로 보여주고 싶었다. 책에 수록된 사진을 다 보여주며 얘기하기에는 주어진 20분이 아쉽게 끝나는 바람에 아이들의 요청으로 그 다음 번에도 못다 본 사진을 함께 본 기억이 있다.
<꽃보다 남자>에 나온 프랑스의 해외땅,
누벨칼레도니아의 ‘하트’ 사진을 처음 찍은 얀아저씨.
아이들은 단번에 하트 모양 섬을 발견했고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떻게 해서 하트 모양의 섬이 생긴 것일까. 이 모양은 맹그로브 나무와 바닷물이 만들어 놓은 작품. 하트 모양 한 가운데는 땅이 주변부보다 위로 솟아 있는데 바닷물이 말라서 소금 농도가 짙어지면 맹그로브 나무들이 죽게 된다고 한다.
폐그물을 이용한 다시마 말리기 _ 대한민국
얀은 100개가 넘는 나라를 여행하며 항공사진을 찍어 왔다. 우리나라에도 열세 번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너무 바쁜 탓에 공항에서 바로 헬리콥터를 타고 DMZ를 찍으러 가기도 했다고. 서울에 왔을 땐 황사로 사진 한 장 찍지 못하고 돌아간 적도 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 사진도 한 컷이 담겨 있는데 바로 폐그물을 이용해 다시마를 말리고 있는 풍경이다.
얀아저씨가 한번 더 서울을 온다면 이번엔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확률은 반반일 듯 싶다. 책을 읽어주며 이 점을 질문했더니 아무래도 미세먼지 때문에 어려울 수 있겠다고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가 우리의 환경, 자연에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보여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마존 강의 목재들 _ 브라질
남아메리카 브라질 아마존 강에 둥둥 떠 있는 나무들. 언뜻 보면 생선 뼈 같기도 한 나무들을 쇠사슬로 묶어 강물에 띄어 보내고 있는 광경이다. 이 나무들은 강 아래쪽에 위치한 펄프 공장으로 옮겨진다. 지구가 만들어내는 산소의 약 1/5정도가 아마존 밀림에서 만들어지는데, 밀림을 개발하며 숲이 파괴되면서 밀림의 면적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 그 결과 지구 온난화도 가속화되고 소중한 동식물의 생태계 또한 위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자연에 새긴 신비로운 메시지_영국 어핑턴의 하얀 말
약 2천 1백년 전 철기시대를 살았던 켈트족이 하얀 석회암 언덕에 새겨 놓은 그림이다. 말의 모습으로 나타나 인간에게 빵과 과일, 곡식을 나누어 주던 여신 에포나를 경배하며 하늘의 축복을 받기 위해 새긴 것으로 추측된다.
•••
얀의 사진집이 주는 흥미는 상상 이상이었다. 이야기를 따라 가는 책은 아니지만 우리 지구의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책이라 더 몰입도가 컸나보다. 예상보다 반응이 좋은 데다, 어떤 풍경일지 상상해 가며 선뜻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주는 친구들이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살아가는 동안 한번 머물다 가는 곳에 우린 그간 너무 편한 삶을 쫓느라 무책임하게 지구를 아프게 했다. 이미 30여 년 전부터 지구 온난화의 위기와 경고에 대해 보고되었지만 자연을 파괴하고 개발하는 일은 더 빠르고 더 크게 진전되어 고스란히 지금 그 피해를 우리 스스로가 보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이는 이상 기후는 그만큼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반증일 터. 무엇을 해야 하고, 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돌아보고 또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우리 모두가.
폭염으로 힘겨운 여름방학을 보냈을 아이들이 얼마나 자랐을 지 궁금하다. 개학 후 처음 만나게 될 리딩맘 시간엔 또 어떤 책을 골라가야 할지 벌써 설레고 또 긴장된다.
'book. paper + 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이 불었어 (0) | 2018.09.07 |
---|---|
버텨내어 좋은 일 투성이 (0) | 2018.09.03 |
피튜니아, 여행을 떠나다 (0) | 2018.08.27 |
민들레는 민들레, 나는 나. (0) | 2018.08.20 |
기록은 이야기를 남기고... _ 세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0) | 2017.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