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paper + log

When YOU Were small _ 네가 아주 어렸을 때

greensian 2018. 9. 11. 14:16


When YOU Were small
SARA O'LEARY with illustrations by JULIE MORSTAD

네가 아주 어렸을 때 (2007, 사파리)
사라 오리어리. 글 l 줄리 모스태드. 그림 l 김선희 옮김



치카치카 양치하고, 이불을 펴고, 잘 시간이라고 말하면 후다닥 달려와 제 잠자리에 얌전히 누워 바로 잠드는 아이가 과연 있을까? 피로도가 최고지수에 이르러 비몽사몽인 채로 곯아 떨어진 날이 아니고서는 어린 아이가 있는 집에서 잠자는 시간에는 저마다의 의식을 치룰 터.

예쁜 그림 동화책 한 권으로 시작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야기 블랙홀로 들어가기도 하고, 자장가 음악을 틀어놓고 엄마도 잠자는 척 시늉을 하다가 엄마가 먼저 꿈나라로 가기도 하며, 맘 조리며 기껏 다 재웠다고 좋아할 무렵 한 밤중에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가 현관문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에 자던 아이가 벌떡 일어나 우당탕탕 달려 나가 재우기 실패로 돌아가기도 하고.

요새 우리집 풍경은 이제 아무리 이놈아저씨와 망태 할아버지를 소환해도 네 살배기에게는 소용이 없는 무심하기도 짝이 없는 깜깜한 밤... 혹은 책 한 권이 두 권되고 세 권되다가 오늘은 여기까지!를 외쳐야 그나마 마무리되는 여덟 살에겐 그저 아쉬운 밤...

돌전까지 잠투정이 최고치에 이를 무렵에는 아기띠를 매고 집 밖 공원으로 나갔다. 엄마 냄새 그윽한 품안에서도 집안 공기와는 질감이 다른 바깥바람을 아기도 느꼈으리라. 밤마실이 너무나 일상이 되어버리면 엄마로선 그만큼 힘든 일도 없다.
완벽한 잠에 빠졌을 때 사뿐 사뿐 나비 날듯 집으로 걸어 들어와 신발 벗는 소리도 숨죽여야 한다. 허리와 등쪽에 장착된 아기띠 버클을 풀 때조차도 묵음. 등센서가 작동하기 전에 날렵하게 아기띠를 벗고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평온하고 고요하게 잠자리에 아기를 뉘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동안 자장자장 토닥이며 아기의 꿈나라 입성을 조용히 응원한다.

아이가 말을 트고 책을 좋아할 무렵이 되었을 즈음에야 자기 전에 책 읽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이가 스스로 꺼내오기도 하고, 내가 미리 준비하기도 하고. 읽다 보면 시리즈로 연결되는 책들은 또 알아서 집어오기도 하고, 재미있는 책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한다. 그러다가 책 속 토끼 인형과 꼭 닮은 애착인형을 꼭 끌어안고 눈을 비비고 하암~ 하품을 거듭하다보면 어느새 꿈나라 진입이다.

시간이 더디게 느릿느릿 느리게 기어가는 아이의 밤.
그리고 하루의 끝을 매듭짓는 나의 밤.

아이가 잠든 뒤 말갛게 드러나는, 온전히 내 시간의 밤은 참 짧고 달콤하다. 더 길어지면 다음 날 내가 더 지치고, 너무 짧으면 아쉽기만 하고. 맥주 캔 하나 톡! 까서 밀린 드라마를 보거나, 보고나면 괜히 허탈한 예능 프로를 보거나, 빌려두기만 하고 정작 들여다보지 못한 책을 보거나 하다가도 정작 잠이 들기 직전엔 다시 휴대폰으로 손이 간다. 오늘 찍었던 아이 사진, 원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자잘한 짜투리 시간마저 빽빽하게 들어찬 온통 너의 자리인걸.

...

요새 잠자기 전에 아이의 질문이 늘었다.
아빠에게 자신이 어릴 적에 어땠는지 얘기해 달라는 헨리처럼 아이가 묻는다.

“나는? 나는 어릴 때 어땠어?”
“엄마는? 엄마는 어릴 때 어땠어?”

수많은 에피소드 앞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전지적 작가시점이 되어도 좋으련만,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바로 인큐베이터로 들어간 너의 이야기를 아직까지도 스스럼없이 할 수가 없어 망설인다. 이름 모를 별에서 낯선 지구로 여행을 막 시작한 너를 만난 그 순간을 떠올리면 말할 수 없는 벅참과 먹먹함이 뒤섞여 내 마음엔 무심히 툭 떨어진 먹물이 아지랑이 피듯 강이 일렁인다. 그 강을 차마 들여다보기 싫은 마음에 빛의 속도로 강을 뛰어 넘어 작고 귀엽고 앙증맞은 그 시절 재미있던 이야기만 쏙쏙 꺼내어 아예 편집의 달인이 되기로 한다.



넌 모유 먹는 아가였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응가를 안하다가 결국 기저귀가 펑!하고 폭발했지.

삼촌 방에서 놀다 턱을 부딪쳤는데 어깨 으쓱하며 “괜차나여..”라는 말도 했어.

아빠가 레고상자 뚜껑 위에 널 올려놓고 슝슝 그네를 태워줬지.

말 배울 무렵에 자기 전,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천정을 보며 중얼중얼 단어장을 외듯 연습했지.

동생이 태어난 날에 넌 열이 펄펄 끓어 39도 40도까지 올랐어.

50일도 안된 너가 잠을 안자니까 포대기에 싸안고 외할머니가 동네를 열바퀴를 넘게 돌아다녔다니깐.

처음 어린이집에 가고 며칠 뒤 처음 낮잠 자던 날 너무 울어서 담임샘이 업어서 너를 재웠지.낮잠 이불도 엄마가 다 만든 거야.
"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그 때의 시간들
그리고 아이의 어록.
나름대로 틈틈이 기억하고 기록하려고 애썼던 나날들이 이어지고, 지금은 아이의 그림과 말과 글이 더해져 더 풍성해지고 있다.

지금, 오늘의 이야기도 넘치고 흐르지만
꾸미지 않아도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곱고 예뻤던 날들.
지나고 보니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

책장 첫 면지. 어릴적 제 모습을 바라보는 헨리.

​​​​​​​​​​​​​​​​​​​​​​​​​​​​​​​​​​​​​​​​​​​​​​​​​​​​​
When you were small
we let you sleep in one of my slippers.
The left one. You used a fuzzy wash cloth
for a blanket and a tea bag for a pillow.


When you were small your mother once lost you
in the bottom​​​​ of her purse.
When she found you again, you were clinging
to an earring she'd lost three years before.

P.S
오래전의 책이다.
그림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림책.
아이도 너무 좋아하는 책.
자꾸 어릴적 이야기를 해달라 조르는 책.

어린이책 번역수업을 들으며 만났는데
절판된 책이라 귀하게도 중고서점에서 득템했다.

이어지는 책
[내가 아주 어렸을 때] (2015) ​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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