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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 인간이라는 미지의 숲에 내디딘 열두 발자국

greensian 2018. 12. 30. 08:33



「과학 콘서트」에 이어
인간이라는 미지의 숲을 향한「열두 발자국」

여덟살 아이는 예년보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결정하는데 뜸을 오래 들이고, 미루고 미루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아침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산타할아버지께 카드를 썼다며 내밀었다. ‘진실을 알아차린 걸까,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걸까’ 궁금하던 중에, 아이의 모습을 보며 산타클로스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온 세상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함을 증명하던 글이 문득 떠올랐다. 아하! 정재승의「과학콘서트」. “젊은 물리학자의 과학적 세상 읽기”라는 부제로 지금은 절판된 동아시아 출판사(2001년)에서 출간한 책이다. (현재 버전은 2011년 어크로스 출판사 개정증보판으로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아마도 대학시절에 읽었던 것 같은데, 집 책장에 잘 꽂혀져 있는 걸 보면 그 때부터 두고 두고 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책장에서 꺼내보니 인간,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과학적 시각을 제시하고 있는 생각들이 흥미로워 밑줄 친 자국도 꽤나 있었다. 언젠가 아이가 제법 커서 진실(?)을 알아차릴 무렵이 되어 산타클로스 부분을 보여주면 어떤 반응일까 궁금해졌는데, 올해의 신작까지 꼭 선물하고픈 마음이 생겼다.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은 <과학콘서트>이후 공동저자로서 출간한 책을 제외하고 17년만의 신작이다. 강연은 물론 TV 프로그램을 통해 과학자라는 면모 그 이상으로 대중에게 똑똑하고 친근한 이미지에 겸손한 모습으로 다가와 대중적 인지도까지 겸비한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 이번엔 어떤 이야기 이길래 “열두 발자국”일까. 다소 감성이 묻어나는 기록물임을 연상케 하는 제목에 제일 먼저 시선이 닿았다. 저자는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의 숲으로 여섯 발자국>에서 책 제목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트 에코는 여섯 번의 강의를 재구성한 이 책을 통해 독자를 소설의 숲으로 이끈다) ‘인간이라는 숲으로 난 열두 발자국’이라는 타이틀의 프롤로그를 시작하는 오일러수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는 순간부터, 난 어느새 저자의 가이드대로 인간이라는 경이로운 미지의 숲에 발을 내딛는 과학자들의 발자국을 따라가게 되었다.

열두 편의 강연, 열두 발자국을 따라 같이 걷다

책은 저자의 전공인 뇌과학을 근간으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다각도에서 성찰하는 1부, 그리고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언급되는 기술 문명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서 미래의 세상에 대해 사유하는 2부로 구성된다. 총 열두 개의 챕터는 지난 10년간 진행해 온 뇌과학 강연 중 흥미로운 강연 12편을 선별한 것이다.

1부에서 저자는 의사결정과 선택, 결정장애, 결핍, 놀이, 뇌의 새로고침, 미신이라는 여섯 개의 주제를 두고 본격적으로 인간을 탐험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과학적 이론과 함께 다소 딱딱한(?) 서술체로 책이 쓰여졌다면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함께 내딛기가 좀 어려웠을지 모른다. 다행히 강연 기록물을 재구성한 책답게 강연에서 쓰는 말투와 객석에 앉아있는 독자와 동시적으로 호흡하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어 그나마 수월하게 총 열두 발자국을 따라가지 않았나 싶다. 저자가 풀어놓는 거대한 뇌과학적 사유의 틀을 들여다보며 면면의 과정을 통해 평소 나의 생각과 행동 패턴은 물론, 우리 가족 구성원의 행동을 떠올려보고 대입해보면서 빙긋 미소를 짓는 순간들이 여럿 있어서 책을 읽어가는 재미가 있었던 듯하다.

선택과 결정 사이, 인간이란 존재

(이 리뷰 글에서 잠시 서두에서 언급한)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보며, 아이는 무엇 때문에 받고 싶은 선물을 최종 선택하기까지 그리 시간과 공을 들였던 것일까. 돌이켜보니 언젠가 아이가 처음 만난 또래와 산타에게 받은 선물을 이야기하다가 “산타할아버지가 실수를 하고 말았어!”라고 한 적이 있다. 얘기인 즉, 자기가 원했던 바로 그게 아니었다는 뜻. 그러니 실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깨달았을 것이다. 동생과 많이 싸워서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받고 싶은 선물이 있는데 고민을 하다 보니 카드 쓰기가 늦어졌다며 철저한(?) 반성 뒤에 원하는 잇템(it-item)을 정확히 밝혔다. 그것도 실패의 확률을 줄임과 동시에 안정적으로 목표를 쟁취할 수 있도록 최종 두 가지의 선택지를 제시하면서. 그걸 최종적으로 받아보는 엄마 아빠 산타인 우리 부부는 예산 내에 그나마 적당하다고 판단되는 레고선물을 확정하고는 이브날 아침 부리나케 쇼핑몰로 달려갔다.

의미 있는 정보가 어떤 것인지 옥석을 가리기 어려운 상황을 가리켜 데이비드 솅크(David Shenk)는 ‘데이터 스모그(data smog)라고 불렀습니다. 너무 많은 데이터는 마치 스모그처럼 우리에게 공해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정보의 양은 많아졌지만 의미 있는 정보가 뭔지 몰라서 오히려 의사결정이 어려워진 거예요. 미래는 점점 불확실해지고, 뭘 믿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워지는 현실 속에서 ’햄릿 증후군‘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리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 발자국, 76페이지 중에서)

아마도 아이든 부모든 너무 많은 선택지를 고려했다면 데이터 스모그에 갇혀 아무것도 결정을 못한 채 다소 우울한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았을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상황까진 벌어지지 않도록 동심을 최대한 지켜주려고 애를 썼지만) 주말에 허용되는 디즈니 만화채널을 보는 시간, 중간 중간 아이들을 현혹시키는 광고는 선택의 패러독스를 가중시키며 햄릿 증후군을 유발하는, 최종적으로 합리적인 의사 결정과정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는 셈이다. 인터넷 쇼핑을 할 때마다, 장바구니에 일단 쟁여두고 정해진 예산을 고려하고 상품에 대한 소소한 리뷰까지 꼼꼼히 살피고 타인의 평가에 잔뜩 날을 세워가는 나의 행동을 들여다보면 정말 격하게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가득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면밀히 미리 계획하고 절제하면서도 가끔이지 욱하고 마는 기질이 발동해 혹은 지름신이 내려와 엉뚱한 곳에다 충동구매를 하고 마는 나란 인간은 얼마나 비합리적인가도 생각해본다. 결국 나는, 아이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으로 다시 돌아온다.

다시금 나를 들여다보는 인문학적인 통찰

1부의 여섯 발자국을 따라가는 동안엔 나의 삶 뿐 아니라 아이를 기르는 부모로서 생각해야 할 여러 이슈를 직면하며 삶 속에서 지향하고픈 구절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유의미했다. 이 책이 단순한 과학 교양서가 아닌 이유가 바로 그 점이다.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사유를 시작으로 인간의 문화와 사회를 총체적으로 성찰하는 질문을 던지며 영역을 넘나드는 인문학적인 탐구를 독자에게 요청하고 있어서다.

​습관이라는 안락함 속에서는 평화롭고 예측 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지요. 반면 습관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버겁습니다. 때문에 인생의 리셋도 어렵습니다. 새로고침을 신경과학적으로 해석해보면 나쁜 습관, 뻔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입니다. 나와 다른 분야에 있는, 다른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을 만날 가능성은 점점 적어집니다. 불편함을 견디면서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즐기면서 살지 않으면, 내 삶에 새로운 생각이 유입되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다섯 번째 발자국, 144페이지 중에서)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서 지금의 내 모습이 내가 어릴 적 꿈꿨던 어른이 맞나 자꾸 돌이켜보게 된다. 실상은 점점 취향이 강해지고, 모험보다는 안정을 택하고, 안온한 일상의 성 안에서 적당히 허락된 일정치의 만족을 누리며, 비난과 비평의 눈초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데. 또 아이를 기르는 부모 입장으로서 옳지 않는 사회의 이면들에 대해 불만과 불평을 조심스레 쏟아놓는 가운데 여러 생각들이 많아지는 시기에 당도한 지금 나는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 그리고 아이에게 어떠한 부모가 되고 싶은지 저자는 이에 대한 질문을 시종일관 묻고 있다.

​저는 우리 사회에 요구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결핍을 허하라! ‘아 심심해, 뭐 재미있는 거 없나’할 수 있는 무료한 시간을 아이들에게 허락해야 합니다. 스스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재미있는 걸 찾기 위해 어슬렁거리는 젊은이들로, 성취 동기로 가득 찬 어른으로 성장하게 하는 길은 그들에게 결핍을 허하고 무료한 시간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방황하면 그 방황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실패하고 사고 쳐도 좋다고 믿어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 심지어 젊은 시절에 얼마나 미숙했습니까! 그 시간을 참고 기다려 주고 믿어주는 부모가, 학교가, 사회가 그들에게 필요합니다.
(세 번째 발자국, 105~106페이지)


이제 고작 1학년이지만 학교의 세계는 유치원과 엄연히 달랐다. 부모가 느끼기에도 그러한데 당사자인 아이는 어땠을까. 내가 어릴적 다녔던 학교의 모습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곳. 세상은 참으로 빨리도 변하는데 굳건한 교육 시스템은 아직 자유도 유연함도 많이 부족하다. 아직 저학년이라 치열한 경쟁까지는 경험하지 않았지만, 정작 학교에서 누리고 경험해야할 많은 것들을 사교육 시설이 대체하고,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학원 스케줄이 없는’ 또래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은 지금의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빈둥대고 놀 자유, 시간을 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가 지금 내게도 필요한 만큼 아이도 마찬가지다.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나은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들을 끊임없이 포용하고 들여다보려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많아져야 합니다. (...) 여러분의 트위터 타임라인은 여러분이 디자인한 세상, 조작한 세상이 거든요. 편향된 세상이 되지 않도록, 반대 의견까지도 듣는 태도를 만들어갑시다.
(첫 번째 발자국, 53페이지~54페이지)


내 입맛과 취향에 따라 가려내고 가려낸 컬렉션의 총체들이 어쩌면 스스로가 디자인하고 조작한 세상이라고 언급하는 지점에선 정곡을 찌르는 자의 내공을 보았다. 알고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그 안의 세계에 갇혀 제한된 쾌락을 쫓고 있을지 모르는 나와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결국엔 각자가 원하는 방식, 원하는 내용으로 또 다르게 연출된 한 편의 ‘트루먼 쇼’ 속에 갇혀 있는 건 아닐지 씁쓸해지는 이면이지만 통쾌한 일침인 건 분명하다.

서서히 오고 있는 미래를 향해

책의 2부에서는 현재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4차산업’이라는 거대한 혁명의 흐름을 토대로 시간의 축을 좀 더 미래로 가져간다. 솔직히 내 입장은 (과학은 잘 알지 못하지만) ‘혁명’이라는 말을 지금 붙일 수 있을지, 붙여도 되는 건지 살짝 조심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언론이나 학계에서 꽤 자주, 폭발적으로 언급하는 걸 보고 마치 태풍이 빠져나가는 길을 예측하는 중계 과정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폭풍 속의 고요를 경험하는 것처럼 태풍의 눈 속에 갇혀있는 그림이랄까.

‘산업혁명’이란 용어 자체가 증기기관차가 발명되고 나서 100년 후에 영국 경제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산업지형도 변화를 처음 기술하며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인 게 시초다. 그만큼 아주 오랜 시간동안의 변화였고,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고 밝힌 저자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그런데 최근의 매스 미디어에서는 그 변화는 지금 당장 코앞에 닥친 듯 조바심을 내며 두려움을 조장한 건 아닐까 싶다. 그로 인해 사라질 직업군에 대한 단편적으로 떠도는 이야기들 또한 동조하기 보다는 한 걸음 살짝 뒤로 물러서게 하는 대목이다.

​‘특정 일자리가 사라지고 특정 일자리는 생기는 방식의 변화’보다는 훨씬 더 복잡한 변화들이 일어날 것으로 보이며, 일자리의 미래는 아주 섬세하게 살펴 보면서 예측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홉번째 발자국, 265-266페이지)


저자는 약사의 업무가 기계와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하지만, 약국의 역할 즉 업의 본질이 진화할 가능성을 말한다. 구글이 개발한 픽셀 버드를 귀에 끼면 16개 언어를 실시간 통역이 되니 통번역사는 사라질 직업이다 말하기 전에 기계 번역이 언제쯤 ‘쓸만한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될 것인가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만문한다. 주식 또는 스포츠 기사를 인공지능이 잘 쓸 수 있게 된 현재, 앞으로는 인공지능처럼 일하는 기자는 사라지고 기자라는 업무 본연의 가치를 생각하는 기자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정답을 찾는 교육이 아니라, 좋은 문제를 정의하는 교육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정해진 답을 남들보다 먼저 찾는 교육이 아니라 나만의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해답을 제시하는 능력이 더 존중받아야 합니다. (...) 경쟁하는 법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법도 가르쳐야 합니다.
(여덟 번째 발자국, 242페이지)


결국 이 거대한 담론 속에서 진행되는 변화의 흐름 앞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로 질문은 다시금 옮겨가며 교육의 가치를, 연구 개발의 가치를 강조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무기는 인간지성을 합치고 모아가는 일이다. 대학교의 경쟁력있는 연구팀을 그룹단위로 스카웃해서 기업의 미래에 적극 투자하는 실리콘밸리 기업의 사례를 통해, 당장의 수익과 결과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안전한 수익결과만을 기대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투자방식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기만 한다.

디지털 문명에 너무 빠져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다가올 미래에 길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열두 발자국을 다 따라가 본 결과 요약해보자면, 일과 삶이 조화로운 워라밸이 중요하듯,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균형, 몸과 뇌의 균형을 유지하며 기존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위험 관리를 하면서 의사결정을 내리고 꾸준히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것이 핵심이다.

가장 와닿는 말은 ‘균형’에 답이 있는 듯하다. 과거의 제한된 경험이나 성공에 집착하지 않는 어른이 되려면, 그것이 진리요 법칙이라 말하는 꼰대가 아닌 어른이 되려면, 계속 새로운 무언가에 직면하고 놀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삶의 조화로움, 균형은 그로부터 시작된다.내 본래 자아가 충만한 현실의 시간만큼 새로운 세대, 새로운 지식과 정보, 소셜 미디어, 새로운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의 시간도 중요하다. 두려움에 멈칫할 땐 가감없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떠올리려 한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형성된 ‘나’라는 작은 우주가 빛을 밝히며 살아갈 날은 무한하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