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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깨끗이]
강무홍 글 | 정순희 그림 | 비룡소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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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연필이 일고여덟 번쯤 부러지고 나서, 다섯 번을 다 썼다. 나는 공책에서 고개를 들고, 한숨을 후욱 쉬었다.
아이고, 손가락이야...... 손목도 시큰거리고, 고개도 아프고, 눈도 입술도 쑤시고 저릿저릿하지만, 그래도 글씨를 참 잘 썼다! 이것 봐, 칸 속에 조그맣게 꼬부리고 있는 게 정말 예쁘잖아? 이제 됐어!
나는 다시 한번 내가 쓴 글씨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선생님이 웃는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모습이 뭉게구름처럼 눈앞을 지나간다. //
(좀 더 깨끗이 - 용이의 이야기, 39페이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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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듣고 있는 강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사용법>을 통해 읽게 된 강무홍 작가의 동화책 [좀 더 깨끗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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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의 마음이 절절히 이해되는 이야기다. 정말 열심히 쓰기 숙제를 했는데 선생님은 왜 자꾸 기대했던 '잘했어요' 도장이 아닌, 토끼가 매를 맞고 있는 '좀 더 깨끗이' 도장을 찍어주는 걸까. 용이는 엄마에게 혼날까봐 공책 다 썼다고 거짓말을 하고 '좀 더 깨끗이' 도장이 수두룩한 공책에 추오영이라는 거짓 이름을 쓴다. 선생님에게 칭찬받지 못해 속상한 마음과, 엄마를 속였다는 불편한 마음이 뒤섞여 고민만 깊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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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살 무렵인가, 작은 밥상에 앉아 깍두기 공책에 글씨 쓰기 연습을 하던 날들이 문득 스친다. 글씨에 일가견이 있는 아빠가 지켜보고 있어서 난 눈치를 보아가며 더 잘쓰려고 애를 썼다. 칸을 꽉 채워 크고 반듯하게, 살짝이 꼬부리고 있는 글씨를 쓰려면 손에 어찌나 힘이 들어가던지... 아빠 손에 붙들려 일고여덟살에 스파르타 쓰기 공부를 한 덕분에(?) 고학년때까지 칠판 서기도 꽤 많이 했다.
그러나 점점 머리가 커질수록 서기의 위엄은 사라지고, 글씨 모양도 작아지고, 직장 다닐 땐 빨리 간단 요약해 적는 일이 많다보니 흘려쓰고, 요즘엔 공책보다 휴대전화 메모장을 많이 쓰다보니 자판에 더 익숙하다. 마음을 먹고 의식하고 써도 글을 처음 알아갈 때보다 못하니 영 맘에 차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 생애 의미깊은(!!) 새해를 맞이한 기념으로 필사를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불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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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마음에 성큼 걸어들어온 동화 속 문장, 아니 한 장면은 따로 있었으니.... ^^
// 조용.
집 안이 조용해졌다. 엄마가 돌아오려면 아직 시간이 있다. 그 틈에 후딱 숙제를 해야겠다. 나는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눈을 질끈 감고 아무데나 펼쳤다. 하아, 깨끗한 종이! 아직 쓰지 않은 데가 나왔다.
나, 여기서부터 쓰고 싶어!
내 마음이 속닥거렸지만, 나는 '안 돼! 안 돼!'하고 야단쳤다. 그리곤 오늘 박은 '좀 더 깨끗이' 도장이 있는 곳을 펼펴서, 나도 그 도장처럼 토끼를 야단쳤다.
찰싹찰싹...... 깨끗이 써야지, 이게 뭐야, 이게!
토끼를 야단치고 나니까 마음이 좀 가볍다. //
(좀 더 깨끗이 - 용이의 이야기 35p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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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깨끗이]에 이어 [깡딱지]까지 깊이 읽고 작가와의 만남도 있었다. 어린이책 전문기획실 햇살과 나무꾼 주간이시기도 한 강무홍 작가님. 아이에게 선물할 책도 함께 준비해서 사인을 받았는데 정말 명! 필! 사인본 받은 아이가 첨 건넨말은, "엄마 친구야?!" ㅋㅋㅋ 따스한 마음이 전해지는 사인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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