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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파도] 짙은 파랑빛의 꿈 : 희망적이거나 슬프거나

greensian 2019. 1. 22. 21:58

[파란파도] 유준재 글 그림 | 문학동네(2014)




/ 사람들은 하늘을 보며, 들판을 보며,
강물을 보며 파란파도라는 이름을 떠올렸어.
강물이 얼어 버릴 만큼 추운 겨울이면
두런두런 파란파도 이야기를 나눴어.
하늘보다 더 푸르던 파란 털과
힘차게 땅을 구르던 굳센 다리와
얼음을 깨고 강물을 가르던 모습까지.
평화로운 날들은 또 그렇게 지나갔지. /
- 파란파도 중에서.


태어나자마자 길조로 여겨진 파란 말은 영토확장을 꿈꾸는 군주에게 바쳐진다. 말은 전쟁터에서 한 팔을 잃고 군마를 키우는 노병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아 군마로 성장하고 거듭되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칼처럼 매서운 하얀 눈빛과 쨍하게 빛나는 진한 파랑빛깔은 전체 그림책을 뚫을 듯이 관통하는 선명한 상징이다. 작았던 파란 말이 호된 훈련을 통해 제1의 군마로 나설만큼 강인하고 단단한 말로 성장함은 세상을 이끌어줄 희망의 꿈이 점점 커져 실현되는 과정인 셈이다. 그림책 면지 한 면에 꽉꽉 들어차고도 넘치게 그려져 있는 커다란 말은 이제 군주보다 더 큰 존재로 다가온다.

그러나 승리는 끝이 없다. 군주의 탐욕은 끝없이 이어져 병사들은 지치고, 굶주리던 마을 사람들도 고향을 떠난다. 이로써 희망적으로 부풀어 오르던 파랑 빛은 가라앉을 전조를 띤다.

한겨울, 적진으로 돌격하던 파란 말은 차가운 눈빛을 쏘아대는 새파란(!! 실제로 너무도 선명한 파랑색이다) 어린 병사에 제압당해 전투에서 패하여 처형될 위기에 빠진다. 책 속에서 파란 말을 기선 제압한 갑옷 입은 어린 병사는 어른의 반도 안되는 작은 덩치에 파란 색깔로 표현되어 있다. 가장 선두에 선, 적진의 파란 말 같은 존재감. 긴장감이 감돈다.

작은 파랑과 큰 파랑의 대결구도에서 파란 말은 무엇을 보았을까. 적의 취약점을 단 한칼에 꿰뚫을 정도의 강력한 하얀 눈빛. 오로지 적의 제압을 위해 최후의 승리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도록 훈련된 그 눈빛에서 파란 말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그림책을 보는 독자의 입장에선 두 눈빛이 닮아 있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데, 파란 말이 작은 병사에 맞서서 그러한 눈빛을 제대로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을테니, 바로 그 순간 극한의 두려움에 압도당했을 수 밖에 없었으리라고 짐작해본다.

노병은 파란 말에 숯가루를 칠해 위장하여 마구간을 탈출한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흰 눈발이 날려 숯가루는 녹아내리고 말은 새파란 털빛을 드러낸다. 빗발치는 화살에 파란 말은 피투성이가 되고 노병만이 그 상처를 어루만진다. 큰 강가에 다다르자 강을 건너지 못해 망설이는 한 가족 - 노인과 아이를 업고 있는 엄마 -이 서 있다. 파란 말은 몸을 낮추어 가족을 등에 태워 강을 건너고 차디찬 강 물 속으로 스러져간다.

"저길 봐! 파란 말이 달려! 들판에 파도가 일고 있어!"
한 때는 비범한 신마로서 추앙받다 한 번의 실패로 나락으로 떨어진 말이 가엾고 불쌍하다. 결국 말은 강 속으로 스러져갔지만 한 가족의 생을 구했다. 갈귀를 휘날리며 들판을 내달리던 파란 말. 희망적이거나 혹은 슬프거나. 그 명징한 파란 빛깔의 잔상이 매섭고 강하게 남는 그림책 [파란파도]였다.

+덧붙여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은 [수호의 하얀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