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품었을 때
처음으로 플랫슈즈 신세계에 입성하고
아이와 함께한 후로
내 발은 마치 원래 그랬던 것 처럼, 본능적으로
늘상 안전한 선택을 한다.
단화 또는 운동화
긴 생각 필요없는 매우 심플한 매치로 엔딩.
이제 아이에게 슬슬 공연을 보여줄 때가 왔다고
지난 주 토요일, 아주 작은 인형극을 보러
아이와 모처럼만에 외출을 시도했다.
남편은 올레-를 외치고 혼자만의 자유시간에 신이났다.
뭘 신고 나갈까 웬일로 아주 잠깐 고민하다
(실상, 골라 신을만큼 다양한 슈즈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신발장을 들여다보던 중에
3년 넘게 방치되어있던
오, 나의 사랑 블랙 하이힐 롱부츠와 눈이 마주쳤다.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입술이 먼저 말한다
안녕- 오랜만이야.
아이와 함께 나서는 길이었지만
더는 고민도 하지 않고
이제는 신어볼 때도 되지 않았냐고
나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고
부디, 외출길이 무사하고 무탈하길 짧게 기도하고
블랙 하이힐 롱부츠를 꺼냈다.
저~엉말 오랜만이었지만
내 발은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게 틀림없다.
총 총 총 -
또. 각. 또. 각. -
참으로 반가운 사운드
문을 열고 나올 무렵
엄마의 새 구두를 바라보며 아이가 하는 말,
엄마, 예-뿐 구두 신었네?!
예-뿌-다...
순간 눈물이 차올라 울컥 할 뻔했다.
남편도 몰라주는 내 맘을
아이가 알아준 것일까.
그 예쁜 마음에 고맙고
그 어여쁜 입술이 고맙다.
총 총 총 -
또. 각. 또. 각. -
나의 블랙 하이힐 롱부츠 사운드와
다다다다다다다다
설렘 가득한 아이 발소리의 조합에
티끌같은 작은 불안함이 사라진다.
2013.11.23 토요일 오후
아이 생애 첫 공연 보러 나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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