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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 동물원에 가기 ... 사색하는 보통의 일상

greensian 2013. 8. 7. 17:33

지난주, 단지 내에 이동도서관이 왔다 해서
아이와 아침 산책겸 나선 길에 잠시 데려온 책.

목차 하나하나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어가는 법 없이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내 머릿속엔 스틸컷처럼 몇가지 생각이 남았다.
그저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일상의 흔한 소재와 평범한 이야기인데도
알랭 드 보통의 글에는 위트와 유머, 그만의 사색에 관한 철학이 있어 즐겁다.
정말 내가 만나보고 싶은 에세이스트.
사색하는 보통의 일상을 잠시 훔쳐보며... 


#1. 기차를 타면

반복된 일상의 지겨움이, 나태와 권태로움이 페이드 아웃되고 의식하지 않아도 그 빈 공간엔 새로운, 설레는, 가능성의 생각들이 페이드 인 된다. 어제와 똑같은 음악과 노트와 펜과 커피, 책, 휴대폰에 저장된 수많은 사진들조차도 어제와 똑같지가 않다.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것. 아마도 작가는 이런 느낌을 말하는 거겠지. 

스무살 시절엔 참 집을 안 들어갔다.(자정이 되기 전까진 안들어갔다는 이야기) 야근을 밥먹듯 일해 피곤에 쩔어 있을 때도 어쩌다 정시 퇴근이란 걸 하게 되면 곧장 집에 들어간 일이 거의 없었던 듯 하다. 혼자여도 늘 뭔가 다른 걸 찾았고, 낯선 공간을 찾았다. 출퇴근이라는 무한 반복되는
일상의 그저 그런 재미없는 프레임에 그저 그렇게 휩쓸리고 싶지 않았었나보다. 그때는. 근데 또 인간이라는게 너무 밖으로만 돌면 그 또한 매너리즘에 빠져 그 새로운 일탈의 소중함을 망각하기도. 그럴 땐 잠재된 귀소본능으로 다시 집을 찾는다. 또 다른 의미의 휴식과 충전을 위해.

집 밖보다 집 안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던 최근 몇년, 나는 반복되고 반복되고 반복되는 일상이 참으로 지겨웠다. 그런 의미에서 울 엄마, 어머님(들)의 내공은 내 것이 아니구나 포기하기도 했다. 아주 최근에서야 감동과 행복의 순간이 조금씩 늘고 있음을 받아들이며 일상의 감정 그래프가 어느 순간 다채로워지기 시작한 것 같다. 이 감정선 유지하려면, 이제는... 한번 쯤 날아줘야 할 때. 떠나줘야 할 타이밍이다. 

 

 -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어 술술 풀려나가곤 한다.  몇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꿈을 꾸다 보면,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즉 우리에게 중요한 감정이나 관념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집은 아니다. 가구들은 자기들이 안 변한다는 이유로 우리도 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가정 환경은 우리를 일상 생활 속의 나라는 인간, 본질적으로는 내가 아닐수도 있는 인간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 '슬픔이 주는 기쁨' 중에서

 

#2. Who am I? 

요즘, 가장 치열히 느끼고 직면하고 있는 주제. 난 누구인가 진정한 나는?
철학시간에 나올 것만 같은 이 거대한 주제에 계속 말을 걸고 있다. 나에게.
OO에게 누구인 사람이 아닌, 그냥 나. 진정한 나는 누구일까.
진정 내가 하고 싶은 걸 말하라는 그 앞에서 늘. 여전히. 지금도 망설이고 여러 생각에 휘둘린다.
좋아하지 않을까봐서. 싫어할까봐. 거절할까봐. 미워할까봐...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상대는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다. 그건 상대의 자유. 그러나 난 그 자유에 이중적인 잣대를 적용한다. 그 모든 자유를 포용하기엔 내 속은 너무 좁다.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다는 거 잘 알지만 실제의 나는 솔직히 상대가 싫어하는 게 싫다. 동의해주고 지지해주고 받아줘야 내가 좋고 기쁘고 행복한 것이다. 그럼 내가 너무 이기적인걸까? 이 단계로 오면 또 이기적인건 싫어진다. 책임의 비난이 나에게 돌아올 것 같은, 실제 일어나지도 않는 상상을 하며. 덧붙여 이기적인건 나쁘고 이타적이고 배려하는건 좋고 훌륭하고 식의 재단을 시작한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걸 상대가 싫어하기 때문에 주저한다. 하고 싶은 걸 접는 상황이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그 꼬리가 첨 내 생각의 시작을, 근원을 방해한다. 결국 현실에선 숨도 쉬지 못하고 그냥 비누방울처럼 터지고 사라지고 마는 잡념들...
나는 누구인가. 나의 눈을 통해 내 자신을 보는 정말 진정한 나는 누구...

- 상대를 향한 강렬한 욕망은 유혹에 필수적인 무관심에 방해가 된다. 또 상대에게서 느끼는 매력은 나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니,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완벽함에 자기 자신을 견주어 보기 때문이다...

이런식으로 열등감을 느끼게 되면, 바로 나 자신이라고 말하기 힘든 어떤 다른 인물로 위장할 필요가 생긴다. 나보다 우월한 존재의 요구를 탐색하여 거기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는 유혹자의 자아를 전면에 내세우게 되는 것이다...

나는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상상하고 그 눈을 통해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그녀에게 누구인가?"였다. 이 질문의 재귀적 운동속에서 나의 자아는 일종의 배신과 비진정성에 점차 물들 수 밖에 없었다.  
 ... '진정성' 중에서

 


 

<동물원에 가기>
 - 저자 : 알랭 드 보통 / 번역 : 정영목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철학이라고 부르는 즐거운 정신 활동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끈다. _뉴욕타임스

세밀하고, 재치 있고, 지적이며, 독창적인 드 보통의 텍스트는 전예 예상치 못한 기쁨을 선사한다. _인디펜던트

<동물원에 가기> 이 책은 펭귄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문인들 70명의 작품 선집들 가운데 한 권으로 선정했다. 이 특별판에는 카뮈, 보르헤스, 버지니아 울프, 카프카 등 유명 작가들이 모두 포함되었다고. 알랭 드 보통은 70번째라는 상징적인 자리를 차지하며 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책에 실린 짧은 산문들은, 대체로 전에 쓴 여러 책에서 가져온 것. 귄 특별판의 기획 의도에 맞춘 것으로, 작가의 대표작들 중에서 중요 부분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선별하고 결합시켜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구성해내는 작업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