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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랑 플레이

greensian 2014. 3. 26. 00:27

텔레비전도 끄고
음악도 끄고
그 어떤 배경음악이나 장치 없이
아이와 내가 내는 소리만이 가득한 시간이
도대체 얼마만이었던 것일까.

설거지할 때만이라도 좀 편해보려고
ebs 티비를 켜고
티비 끄고 나면 동요를 배경음악으로 깔아두고
세 식구 중 한 명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 시선이 꽂혀있고...

오늘은 이도저도 없이 다 꺼버리고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소풍갈까?"
- 응!!!!

거실바닥에 널부러져있던 수건을 돗자리 삼아 털썩 앉았다.
"하윤인 여기 앉을게" 하더니 내 옆자리에 꼭 붙어 앉는다.
정면에는 마침 놀이를 할 수 있게 만들어진 이미지 보드가 있고
그 안엔 사과나무와 각종 나무들, 푸릇한 풀과 연못이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아이는 곧장 나무로 달려가더니
사과를 따오는 시늉을 하더니 내 입속에, 제 입속에 아그작 아그작 사과를 베어문다.
소풍 가겠다고 옆으로 둘러맨 가방에 몇 개를 더 담고
그 옆 당근이 심어져 있는 밭으로 시선을 돌려 당근을 집어온다.
"자, 엄마도 먹어ㅡ 맛있지?"
 - 응!! 아그작 아그작! 꼭 스벤이 당근 먹는 거 같네?!
별말 아닌데도 꺄르르... <겨울왕국>이 생각났는지 너무도 좋아한다.
연못 안에 헤엄치는 물고기도 한 마리씩 가져와서는 또 냠냠...

그러던 아이, 갑자기 일어서며
"엄마,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나 집에 좀 다녀올게"
(이건 평소 내가 꽤나 자주 하는 말이다.
 가방에 챙겨야 할 한 두가지 물건 깜빡해서 현관문 앞에서 종종 그러곤 하는데
이 문장을 이젠 자기 상황에 적절히 활용하고 응용까지 한다.)

"니로리" (현관문 여는 소리를 흉내낸다)

"엄마, 나 왔어~ 여기 물고기 , 낚시 장난감 가져왔어"

한참을 서로 번갈아가며 물고기 잡기 놀이가 끝나자
아주 작은 장난갑 컵에 커피라며 가져다 준다.

계획하지 않은 채 그냥 즉흥적으로 펼쳐진 아이랑 소풍상상하는 플레이-
아이의 세상은 늘 그렇다.
계획하고 구상하고 미리 준비해 둔 거 없이
늘 무의 공간에서 새로 시작되는 놀이.

꽤 오랜만에 나 또한 머리가 맑아졌던 시간.
내일 아침 아이는 어제의 경험에서 얼마만큼 기억하고 얼마만큼 초기화 시켜
아침 꼭두 새벽부터 방방방 뛰어다닐까.

못하는 말이 없는 네살 아이와의 하루는 이렇게 -


2014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