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 글쓰기를 다짐했건만
봄에서 여름,
그리고 여름과 가을 사이 애매한 경계 지점 앞에서
지난 90여일간의 여정이 실종됐다.
나의 일상은 여전히 반복되어 흐르고
매일 매일 조금씩 다른 하루하루를 직면했지만
정확히 이 공간에서만큼은 비어져있었다.
실종 신고도 하지 않았고
애써 변명도 하지 않았으며
다른 누군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지나가는 하루들이 켜켜이 쌓일 동안
내 안의 나는 솔직히 조금 불안해져갔다.
이래도 되는 걸까.
안되는 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늘 그래왔자나.
뼛속 깊이 내 몸의 일부와 하나가 된
뿌리 깊은 자기 합리화의 프레임 앞에서
일상은 그렇게 고요히 그리고 빠르게도 흘러갔다.
차가운 바다는 어여쁜 영혼들을 소리없이 데려가고 말았고
베란다에 피어난 오렌지 자스민 꽃을 보며 더 간절히 기도를 하게 될 무렵
늘상 엄마라는 이름으로 고군분투하는 어설픈 내게
뜻하지 않게 커다란 선물이 찾아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 두 개의 심장이 뛰고 있었던 것이다.
빈이가 네 살 하윤으로 크는 사이
두 번째 아기천사 딸기는 그렇게 소리없이 엄마라고 부르고 있었나보다.
그 사이 봄이 지나고, 뜨거웠던 여름도 지나고 어느덧 가을의 문턱.
폭풍 입덧기를 지나 안정기에 들어온 지금에 이르니
이제서야 지나온 길이 다시금 보인다.
기록하지 못했던 2014. 지난 90일간의 여정들과
경험하자 서서히 희미해진 2011. 첫 아이와 조우했던 순간 그 이후 좌충우돌 육아의 시간들...
눈에 띄게 배가 볼록해지고 몸은 무거워지고 있고
큰 아이와 투닥거리면서 재잘거리는 시간이 늘고 있고
딸기님의 예고없는 태동으로 아기천사의 존재감을 느끼는 사이
이곳에 기록된 빈 페이지는 비어진 대로
흘러간 시간 또한 지나간 대로 그 자리에 두련다.
후...
무거움 내려놓으니 비어지고 가볍다.
마치 고백성사 한 것 처럼...
아차.
실제의 고백성사는 아직 행해지지 않았다.
이번주엔 꼭 그 곳에 발길을 옮겨 기도하리라.
20140826
-비어진 곳에 남겨진 독백 한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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