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 파울로 코엘료 장편소설 | 장소미 옮김
문학동네(2019)
매직버스 타고 한 뼘 자라는 어른의 성장기
누구나, 가보지 않은 여행길에 대해 로망이 있다. 머리에 꽃을 달고 자유롭게 히피가 되어 보는 꿈을 꿀 수 있다면 바로 <히피>에 그 여정이 있으니 함께 동행해 볼 것을 추천해 본다. 파울로 코엘료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3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담긴 소설. 강렬한 붉은 톤 표지만큼이나 다양하고 감각적인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가장 특별한 건 20대 청년 파울로를 엿볼 수 있기 때문. 할 일이 쌓였을 땐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게 꿈같지 않기에 <히피> 속 순례길을 따라가며 책읽은 이야기를 몇 개의 키워드 중심으로 꺼내본다.
# 사랑이거나 혹은 아니거나
담광장에서 카를라와 파울로가 스친다. 최종 목적지 카트만두를 향해 함께 갈 남자를 찾는 카를라, 그리고 암스테르담을 거쳐 피커디리서커스광장으로 떠날 계획인 파울로. 둘은 서로가 흘금거리는 걸 눈치챈다. 파울로는 왕궁 건물로 시선을 돌리고, 카를라는 시선을 떨구고 책을 본다.
드라마로 치면 드디어 그여자와 그남자가 마주치는 순간. 글인데 꽤 길게 슬로우모드로 그려지는 장면과 두 캐릭터 각자 머릿속에 그리는 상대에 대한 생각이 재미있다. 고요한 침묵을 깨고 아이스 브레이커를 자정하며 다가온 파울로의 세 마디 “미안합니다.”는 통속적이지 않아서, 신선해서 흥미롭다. 다소 어이없이 한방에 쑥 들어온 말이 묘하게 기다림을 이끌어낸다. 그 다음 말을 기다리다 먼저 입을 연 카를로가 뭐가 미안하냐고 받아치자 “그냥요.”라고 대답이 돌아온다. 카를로는 파울로의 말이 흔한 멍청한 말이 아니라서 기쁘고 다행스럽게 여긴다. 내일이 끝나기 전에 여행의 동반자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점술가의 말대로 그녀의 꿈은 이루어질까.
/카를라는 그가 곁으로 와서 앉으며 “미안합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뱉었을 때, 이미 더는 혼자가 아닌 듯한 커다란 행복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와 함께였고 그는 그녀와 함께였으며, 그들은 그 사실을 알았다. 설령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다 하더라도. 말로 형용되지 않은 보이지 않는 감정이 이미 자리잡았고, 그들은 그저 그 감정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낼 때를 기다렸다. / (92페이지 중에서)
함께 거리를 거닐다 패치를 파는 상점으로 들어선 둘. 카를라가 파울로 옷에 붙은 패치를 뜯어내려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다. 그녀의 일방적인 행동에 파울로가 정색하기 때문이다. 1년 전 파울로는 마추피추행 첫 순례길에서 돌아오던 때, 인생에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감금되어 고문을 당하고 수많은 날 동안 어떤 이유도 모른 채 갇혀 온갖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던 파울로와는 달리 너무나도 말짱한 구여친의 모습은 대조적이다 못해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상황에 통제당하지 않고, 오히려 정신력으로 그 상황을 통제하고 공황에 빠지지도 않고 감정을 조절해 온 인물. 너무도 멍청하고 우습고 나약하다며 자책하는 파울로를 앞에 두고 구여친은 그에게 결별을 고한다. 당시 그는 구 여친에게 단 한 번의 의견도 피력한 적이 없이 그녀의 말에 순응했다. 그랬던 1년 전의 모습은 이제 파울로에게 없다.
/ 그럴 필요 없어. 넌 내 의견을 묻고, 내가 이걸 계속 붙이고 있을지 떼어낼지 결정하게 해야 했어. 난 조국을 사랑하는 동시에 혐오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내 문제야. 네가 이 곳에서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해서, 내가 그런 너에게 의지한다고 해서, 나에게 해야 할 일을 명령하거나 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장 여기서 헤어지자. 저렴한 식당은 내가 알아서 찾을 수 있으니까./
(103페이지 중에서)
1년 전의 일로 파울로는 여행을 통해 한뼘 성장했으리라. 위험 천만의 상황에서 극적으로 구해지고 세상 밖으로 나와 이제야 겨우 한숨을 돌리고 다음 여행지로 떠날 생각을 하는 파울로에게 시크하게 결별을 선언하는 여자. 그녀 앞에서 그는 얼마나 허망했을까. 그러는 한편 자신이 겪은 일을 처음부터 되짚어보며 과거 자신의 모습을 없애고 싶어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경험으로 시작된 내면의 성장은 카를로를 만나기 이전부터 조금씩 시작되었고.
/어쩌면 과거의 망령들을 완전히 몰아내는 방법은 그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되짚어보는 것이리라/
(52페이지 중에서)
/일 년 반 전의 공포를 되짚어본 후 그는 많이 차분해졌다. 모든 일을 두려움 없이 맞서고, 그저 인생에 일어날 수 있는 사실로 단순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듯.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날 일을 선택할 수 없지만 그것에 대처하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71페이지 중에서)
1년 전과는 달리,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목표가 무엇이고, 감정이 무엇인지 전보다 더 정확히 자기 자신을 설득하고 리드할 수 있게 되었다. 냉정하게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자기 자신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진정 자기가 원하는 바에 흔들림없이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이 여행임을, 그것이 우리 인생의 끝나지 않은 여정이라는 걸 반증하듯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청년 파울로가 내적으로 영글어가는 과정을 회상하며 지금의 독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파울로는 암스테르담이 왜 그토록 자신의 마음에 들었는지 깨달았다. 이곳에서 그는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누구든 사귀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곳에 도착자마자 함께 어디든 누비고 다니고 싶은 누군가를 만난 것이다. 그가 사랑에 빠지는 중이라고 말하는 건 과장일 터였다. 하지만 카를라는 그가 좋아하는 성향의 여자였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허나 그는 과연 네팔에 가고 싶은가? 그것도 원하든 원치 않든, 부모님에게 교육받은 대로 지켜주고 보호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게 될 여자와 함께? 돈도 모자랐다. 그는 조만간 자신이 이 매력적인 도시를 떠나야 하고, 다음 목적지는 - 영국 세관을 통과한다면 -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피커딜리서커스임을 알고 있었다./
(121페이지 중에서)
/"사랑이 없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으니까. 사랑 없이 산다는 건,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도 꿈꾸지 않고 잠자거나, 때로는 아예 잠들지 못하는 것과 같아. 이중으로 잠긴 캄캄한 방안에서, 열쇠가 있다는 걸 알지만 문을 열고 나가고 싶은 마음 없이 그저 태양이 비치기만을 기다리며 매일을 보내는 것과 같아."/
(313페이지 중에서)
/사랑은 이 땅에서의 우리 사명과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을 깨닫게 해 준다. 가슴에 사랑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선과 보호의 그림자가 뒤따르고, 그들은 힘든 순간에도 평온을 되찾을 것이다. 또한 빛을 담는 그릇이자 비옥함의 보고이자 길을 밝히는 등불인 사랑하는 존재 외에는 그 어떤 조건이나 보상도 바라지 않고 모든 것을 내줄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러면 세상은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관대하리라. 악은 선으로 바뀌고, 거짓은 진실로, 폭력은 평화로 변화하리라. 사랑은 부드러운 힘으로 압제자를 제압하고, 애정에 목말라하는 이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며, 언제든 빛과 신성한 비가 스며들도록 문을 열어둔다.
또한 사랑 때문에 시간은 천천히 흐르기도 때로는 빠르게 흐르기도 한다. 시간은 결코 전처럼 참을 수 없을 만큼 단조롭고 무기력하게 흐르지 않는다. 그녀 안에도 변화의 바람이 천천히 일었다. 진정한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분명 무언가 변하고 있었다./
(320-321페이지 중에서)
# 누군가에게 가닿는 영감의 끈,
책과 글 그리고 새로운 채널들
무엇이 됐던 간에 각자에게 영감으로 남는 무언가가 있다. 누군가 무심코 툭 던진 말 한마디 혹은 소리 없는 침묵,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가사,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귀, 내 가수 혹은 내 배우의 진정어린 말, 어느 날 정신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문장, 드라마 속 대사, 어른의 거울이라는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영혼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말, 무뚝뚝함만이 뚝뚝 흘러내릴 것 같은 어느 인물의 남모를 사연......
입으로 전해지는 말은 공기 속으로 흩어질지언정 그날의 온도, 상황, 질감을 기억하게 하고 활자로 전해지는 글은 좀 더 정갈하게 다듬어진 자태로 오랫동안 기억에 저장되고 스며들어 꽤나 진득한 공감력을 부풀게 하며, 글 속에서 팩트는 팩트대로, 정보는 정보대로, 감정은 감정대로 나름의 의미와 쓸모 있음으로 그 기능이 있으리라.
<히피>의 히피족들에게 영감을 주는 특별한 매개체에 자연스레 마음이 간다. 당시의 버전으로 원본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히피문화의 정점에 서서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보이지 않는 편지>는 히피족들의 바이블 격. 청년 파울로 또한 유럽 대륙에 처음으로 발도장을 찍은 도시 로마에서 히피들의 집결지는 스페인 광장이란 걸 <보이지 않는 편지>를 통해 알게 된다.
현재 5백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는 지금 이 시대 최고의 작가 파울로. 로마에 도착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 셋. 그는 인생을 바꿀 최신 베스트셀러를 샀다. <하루 5달러로 유럽 여행하기>를 손에 든 그는 그 책으로 인해 암스테르담에 도착해 헤매지 않고, 상황이나 사람에 현혹되지 않고 애초의 계획이자 그가 주시하는 세상의 중심, 피커딜리서커스로 떠나기로 한 마음을 굳건히 다지게 되었다고. 그리고 카를라에겐 대안 신문 <아크>지가 있었다. 그녀는 매직버스를 타고 여행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영감을 받아 그 사람처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사람들은 신문이나 텔레비전, 라디오 등 처음 생겨났을 때의 중요성을 결코 회복하지 못할, 이미 오래전에 한물가버린 매체들에서 정보를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
(17페이지 중에서)
새로운 채널과 매체는 그야말로 영감이 샘솟는 독창적인 놀이터와도 같다. 지상파 뉴스의 명성은 퇴색한지 오래고, 프로그램 본방 사수도 사실상 의미가 없다. SNS 채널 또한 해가 갈수록 트렌디하게 변하는 추세인데다 인터넷으로 해외 TV물은 물론 영화도 터치 한번으로 볼 수 있는 시대이며 현실을 초월한 이미지 전쟁으로 보여도 그야말로 보기 좋은 이미지들의 각축전인 인스타그램은 일상을 공유하는 놀이터이자 기업의 핫한 마케팅 채널로 쓸모있음이 무한한 듯 보인다. 상상력이 넘치는 수많은 크리에이터의 무대가 된 유튜브는 더 많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고. 서로의 영감이 점을 잇듯 연결되어 또 다른 커다란 영감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본다. 새로운 채널 속에서 영감을 찾아 헤매는 영혼들 역시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또 다르게 창조적인 히피의 모습이 아닐지 그려본다.
# 매직버스에 올라탄 사람, 프랑스인 자크의 이야기
단돈 70달러로 천국의 골짜기, 카트만두까지 가는 네팔행 매직버스에 몸을 실은 사람들이 있다. 아일랜드 커플 라이언과 미르트. 라이언은 네팔에서의 첫 여행이 평행현실을 경험할 만큼 좋아서 두 번째로 여행을 여자친구와 동행한다. 탄탄대로 의사의 길을 걸을 수 있던 영국인 마이클은 남아프리카로 떠나 의료봉사를 하며 성직자를 꿈꾸게 되고 우연히 매직버스 운전기사 모집 광고를 보다 아시아의 좁은 길을 달리게 된다.
프랑스인 부녀도 등장하는데 아버지 자크의 이야기가 꽤나 묵직하게 다가왔다. 자크는 화장품 회사의 중역으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던 중 파리의 68년 5월 혁명 속 혼란스러운 사회를 직면하고, 저항운동에 가담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간 혁명 앞에서 학생 자신들은 승리했다고 믿는 딸아이를 보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식당에서 굴을 먹다 과민성 쇼크로 죽음을 체험했던 일을 통해 모든 일에 손을 떼고 딸과 여행을 떠나온 것이다.
/“바로 그게 내가 부탁하고 싶은 거야. 수년 동안 내가 널 가르쳤으니 , 이젠 네가 날 가르쳐주렴. 너와 세계 여행을 하고 싶구나.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보고 아침과 밤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싶어. 휴학을 하고 나와 함께 가면 어떻겠니. 남자친구 녀석한테는 조금 이해해달라고.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부탁하고 아빠와 함께 떠나자.
미지의 강물에 몸과 영혼을 담그고, 이제껏 마셔보지 못한 음료를 마시고,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산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일 년에 단 일 분만이라도 엊저녁에 경험했던 사랑을 다시 느끼고 싶어. 네가 날 네 세상으로 이끌어주면 좋겠구나. 짐이 되지는 않으마,. 혹여 내가 혼자 가는 게 좋겠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얘기하렴. 그렇게 하마. 그리고 내가 다시 네 곁에 돌아가도 좋을 때가 되면 그렇게 할게. 우리는 또 한 걸음 함께 걸을 수 잇겠지. 거듭 부탁하마, 네가 날 이끌어주렴.“
(292페이지 중에서)
계획한 대로의 삶 안에서 큰 문제없이 계획을 착실히 실행해 오면서 부와 성공, 명예를 이뤄온 자크는 이제 더 이상 계획표 안에 갇혀 적당하게 만족하는 삶에 안주하지 않으려한다. 중년을 넘어선 어른이 자신의 남은 인생을 위해 새로운 플랜 비를 가동하는 모습은 진중한 무게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죽음을 경험한 이상 그의 삶은 과거로 돌아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엔 전율이 흘렀다. 지금의 자신은 과거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다며 모든 걸 내려놓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기득권이 누릴 수 있는 그 모든 것에 집착하며 현상유지하며 늙어가는 고독한 삶이 아니라 딸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고, 세상을 돌아보고 자기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려는 삶을 택한 그에게 묵묵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 밑줄 문장들..
/라이언은 설명을 이어갔다. “평행현실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니까. 우리가 지금 이 버스 안에 있는 건 우리가 선택했기 때문이지. 우리는 이제 수천 킬로미터를 가야 하는데, 이게 어떤 여행이 될지는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렸어. 이제까지는 불가능해 보이던 꿈을 추구해나가느냐, 아니면 불편한 좌석과 거슬리는 승객들한테만 얽매이느냐. 지금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는 모든 게 여행하는 내내 우리의 현실이 될 거야.”
“내가 처음 네팔에 갔을 때는 아일랜드와 어떤 협약을 맺은 기분이었고, 그 협약은 깨지지 않았어. 계속해서 이런 목소리가 들렸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누려. 이내 집으로 돌아가게 될 테니까. 그리고 사진 찍는 걸 잊지 마. 친구들에게 네가 얼마나 씩씩하고 용감했는지 알려주고, 그들도 용기가 있었다면 동참하고 싶어했을 너의 경험들을 보여줘.’/
(171페이지 중에서)
/음악소리를 조절하는 건 운전기사의 몫이었다. 이런 일을 겪은 게 처음이 아니라고 해도 그 역시 아직 그날 저녁 벌어진 사건을 떨쳐내는 중이엇다. 소리를 키울수록 더 흥겹게 춤을 추었고, 기분도 나아졌다. 순간 그는 혹시 경찰이 다시 와서 그들을 또 쫓아내지느 않을까 덜컥 겁이 났지만 마음의 여유를 찾으려 노력했다. 스스로가 권력자, 그러므로 세상의 주인이라고 믿으며 그의 인생의 하루를 망치려 하는 자들 때문에 그는 겁먹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 그저 단 하루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하루는 그에게 더없이 소중했다. 병석에 누운 그의 어머니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하루, 그 단 하루, 그것은 세상의 어떤 왕국보다 더 소중한 것이었다. /
(212페이지 중에서)
/그래서 그는 미래로 주의를 돌렸다. 폭스바겐을 가장 좋은 조건으로 처분할 궁리를 했고, 창문을 통해 아침저녁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시시각각 다채로워지는 바다와 태양의 색깔을 관조했다. 저 아래쪽에서는 백인 남자들이 탐험가 모자를 쓰고 파이프를 입에 문 채 바닷가를 거닐었고, 그들의 부인들은 런던 왕궁에서처럼 옷을 차려입고 있었다. 바다를 따라 난 산책로에 흑인이라곤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고, 백인들뿐이었다. 그 사실은 그를 상상할 수 있는 정도 이상으로 깊은 슬픔에 빠지게 했다. 이 나라에서 인종차별은 합법이었고 지금으로서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기도밖에 없었다./
(216페이지 중에서)
http://m.blog.yes24.com/greenssia/post/11008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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