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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어른, 어른 피터팬을 기억하며

greensian 2019. 3. 7. 23:23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을 읽고...

비읍이에게 린드그렌 선생님이 있다면, 나에겐 초등학교 시절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준 선생님이 있다. 6학년 8반 어린이를 이끈 영원한 어른 피터팬, 우리 선생님의 이야기다.

6학년이 되던 해 우리는, 5학년 때 반 친구들과 함께 새 학기를 맞이했다. 개교 이래 반 편성없이 같은 반을 유지하고 새 학년을 시작한 경우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5학년 정규과정이 끝나고 봄방학을 앞두고서 그 사실을 처음으로 전해 듣고 반 전체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한 사람이라도 헤어지지 않아서 좋았고, 곧 청소년이 될 어린이로서의 마지막 한 해가 더 애틋하게 느껴졌다. 6학년이 시작되는 3월 첫날. 봄은 아직 마음을 덜 열었지만, 단합력이 좋았던 우리는 어떤 선생님이 들어오실지 모두 한 마음으로 설렜다. 남자 아이들은 복도와 교실을 들락거리며 분위기를 살피고, 책상 위로 두구 두구 둥둥 난타리듬이 짙게 퍼졌다.
두둥- 그때, 저 멀리 까맣고 네모진 가방을 들고 교실 문을 향해 누군가 걸어온다. 안경을 쓴 얼굴,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고, 적당히 가볍고 밝은 걸음걸이로 유쾌하게. 아이들의 시선에 화답하며 교실 문턱을 넘어선다. 책상쪽으로 다가가 까만색 가방을 내려놓고 가운데 교탁으로 다시 두어 걸음 움직이신다. 칠판 위에 하얗고 선명하게, 시원시원하게 새겨지는 세 글자의 이름. 젊은 남자 선생님이다. 지금까지 여자 선생님만 만났던 나로서는 마냥 낯설고 신기했다. 일단 남자아이들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좋아했다. 남자 대 남자로 자기들을 잘 이해해 줄 것 같은 큰 울타리가 생겼다는 믿음에설까. 왠지 담임선생님과 합이 좋을 것 같다는 예감이. 저마다 마음속에 들어찬 말풍선이 총천연색 빛깔을 띠고 퐁퐁 떠올랐다.

선생님과 함께한 그해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1년의 시간은 지루할 틈이 없이 매일이 새로운 나날들이었다. 음악 시간은 풍금 소리보다 선생님의 기타 반주와 어울린 우리들의 낭랑한 목소리로 차고 넘쳤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라는 노랫말이 예쁜 노래 '연가'와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 로 시작하는 김민기 노래 '작은 연못' 을 가르쳐 준 분도 선생님이었다. 쉬는 시간 틈틈이 진지한 자세로 기체조를 하시며 체력관리(?)를 하던 선생님 모습도 생생하다. 어느 날엔 우리도 다 같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국민체조보다 다 진중하고 공기의 흐름을 나직하게 느끼며, 기를 끌어올리는 체조를 선생님의 지휘 아래 단체로 배운 적도 있다. 두 팔을 뻗어 공을 잡듯 양손가락을 오므리고 흔들면 정말로 손 안에 공이 들어찬 느낌이 감도는데, 공의 질감이 아닌 공기가 가득 찬 투명한 구를 잡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 4교시마다 우린 도시락 파티를 열었다. 이 역시 선생님의 제안이었다. 먹을 거라면 뭐든 상관없었다. 김밥, 과자, 샌드위치, 과일, 빵 등 무엇이든 각자 먹을 음식을 조금씩 싸오면 됐다. 3교시를 마치고 종이 울리면 교실은 요란하게 분주해진다. 책상 대열을 왼쪽 창가와 뒷벽, 오른쪽 벽 삼면을 기준으로 ㄷ자 형태로 만들어 뷔페 테이블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실 안은 이미 떠드는 소리로 와글와글, 책상이 끌리는 소리마저 유쾌하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일렬로 줄을 서서 각자 접시에 먹을 만큼 음식을 담고 옮겨진 책걸상 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먹었다. 마요네즈에 버무린 우리 엄마표 과일 샐러드와 치킨 튀김은 제일 인기가 많았다. 적당한 오락거리와 장기자랑을 곁들이다 보면 어느새 끝을 알리는 종소리만이 아쉽게 울려댔다.

운동장에서 피구를 했던 어느 날, 나는 나름 요리조리 잘 피하던 중에 선생님이 던진 공에 맞아 아웃되고 말았다. 생각보다 어찌나 아프고 창피하던지, 실은 부끄러움보다 선생님이 나를 향해 공격했다는 점이 분하고 정말 뼈를 때리는 아픔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너무도 소심한 나머지 아픈 걸 아프다고 표현하지도 못하고 볼만 빨개진 채 나와야 했다. 그날 처음으로 선생님이 미워졌는데 뒤끝 있던 나는 일기장에 그 사건을 생생하게 복기시켰다. 아웃당해서 속상하고 정말 아팠고 선생님이 너무하다 싶었다고. 그 말에 선생님은 답글을 달아주셨다.
‘그랬구나. 많이 아팠니? 일부러는 아니었는데 미안하구나.’
선생님의 미안한 감정이 전해졌다. 오해했던 내가 괜히 더 머쓱해졌던 그날. 난 먼저 사과하는 어른의 어른스러움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하루는 여름 방학 중에 한 친구가 우리집으로 전화를 걸어 물었다.
"편지 받았어? 선생님이 편지를 보냈대. 누구누구는 받았다던데?!"
며칠 뒤 정말로 말로만 듣던 편지가 도착했다.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보내는 손글씨는 아니지만, 정성스레 타이프를 쳐서 반 친구들에게 보내는 한 장짜리 편지였다.(물론 복사본일거다) 지금껏 때마다 선생님께 카드나 편지를 보내기만 했지 답장은 받은 기억이 없는데 먼저 편지를 보내주시다니 정말 감동의 깜짝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하긴 평소에도 일기장에 댓글을 남겨주시는 세심함을 보여주셨으니 선생님으로선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내 생애 선생님께 처음으로 받은 편지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잔소리보다는 우리와 눈을 맞추는 친구가 되어 보자고 먼저 손을 내민 어른. 샘솟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교실이라는 공간에 숨을 불어넣어 함께 하는 즐거움을 알려준 어른 피터팬. 젊고 어린 선생님이라서 가능했던 걸까. 중학교 입학을 앞둔, 학교에선 제일 큰 어린이가 만난 어린 어른은 학교라는 공간도, 함께 숨을 쉬며 살아가는 사람도 즐거움의 몫을 나누면 정말 즐거워질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쩌면 중학교 문턱을 넘는 순간부터 그 이후의 앞날은 예고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추억의 유년기는 아름다울 때 안녕을 고하는 거라고. 그럼에도 내 인생 최고의 선생님은 그 한분이란 건 변함없다. 언제고 꺼내보아도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들이 반짝거린다. 기억의 곁에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게 감사한 날들.

2019.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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