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드.디.어!!!!
나와 인연이 없던,
비오는 날의 불절했던,
부르르 떨며 두고 보자 했던,
그 마을버스 기사 아저씨를 만났다.
아이를 먼저 태우고 내가 올라서고 단말기에 카드를 대고 나니
요구르트를 든 손이 내게 불쑥 들어온다.
"아이 줘요" 하며 무심하게 건넨다.
(순간 정지) "네?! 아, 네...." 하고는 받아버리고 말았다.
버스가 바로 출발하기도 했거니와
아이도 앉혀야하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하니
망설이고 주저하고 뭐 그럴 시간이 없었다.
무릎에 아이를 앉히고 나니
그제사 이 상황이 좀 당황스럽다.
"기사 아저씨가 하윤이 먹으라고 주셨네?" 하고
내 황당 당황 무안한 낯빛 무마하려 애썼다.
화가 났던 그 분께 얼떨결에 받아버린 요구르트 하나.
일종의 뇌물인가.
아니면 지난번 미안했다는 사과인가.
그도 아니면 그냥 아무 상관없는 순수한 작은 호의인가.
보통, 호의라면 감사하다 고맙다 표했을텐데
이거는 받고도 어정쩡 찜찜한 기분.
아이와 지하철을 기다리다 또 생각한다.
이걸 먹어야 해? 아이에게 줘야해?
빨대가 없어 분명 요구르트 껍데기를 벗겨 주면
먹다 흘려 옷에 묻을 게 뻔하다. 의자에 흘리면 더 곤란하고.
안먹고 그냥 버려? 아님 누구를 줄까?
이 따위 요구르트 하나로 생각이 복잡해지니 머리가 지끈.
그냥 껍데기를 벗긴다.
꿀꺽- 꿀꺽-
그냥 내 입에 털어넣고 생각 끝.
p.s 하나.
결국 내가 먹어버렸다는 생각에 짧은 순간 자책감이 드는건.
이거 왠지 고수의 전략에 말린 기분.
복수까진 아니어도 절치부심했던 이로서 무방비 상태로
당한 하수가 된 기분은 뭘까.
p.s. 둘.
오늘은 웬일로 선글라스를 낀 기사 아저씨.
분명 나와 아이를 기억하는 게 확실하다.
그럼, 사과의 표현이었을까?
앞으로 요구르트만 먹으면 이 에피소드가 생각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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