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chi-coco story

story 01. 치치코코 안녕?!

greensian 2013. 11. 7. 23:52

 

STORY 01. 치치코코 안녕?!

 

우리집 베란다에서는

초록 배나무 밭과 푸른 나무 숲 너머 저 멀리

작은 터널을 뚫고 나와 빠르게 지나가는

치치코코 기차가 보입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숲 한 가운데를 지날 때

치치코코는 잠시 숨었다가

다시 쏘옥 하고 얼굴을 내민답니다.

 

내가 우리집에서 치치코코를 처음 본 건 아빠랑 함께 있을 때였습니다.

그 즈음엔 내가 장난감 기차놀이에 푹 빠져있을 무렵이었지요.

어느 날 나는 베란다에서 물뿌리개로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어요.

아빠가 갑자기 나를 보고 번쩍 안아 올려서 “하윤아 저기 봐바!” 하셨지요

우와-!

정말 저 멀리서 기-다란 치치코코가 지나가는 거예요.

치치코코 안녕! 하고 나는 손을 흔들었어요.

장난감 기차보다 훠-얼씬 긴 것이

두 번이나 까꿍 하고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엄마는 그게 기차가 아니고 지하철이라고 하셨지만

기차든 지하철이든 중요하지 않아요. (상관없어요.)

치치코코는 언제든 내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친구가 되었으니까요.

 

엄마가 그러는데

이번 토요일에 진짜 치치코코를 탈 수 있대요.

할머니, 작은 아빠, 작은 엄마, 쌍둥이 동생들을 만나러

기차를 타고 간대요.

우와-!

아빠 차, 하부지(할아버지) 차는 많이 타봤어도

여행길에 기차를 타는 건 처음이예요.

진짜 치치코코를 보면 어떤 기분일까요?

벌써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인사 연습을 더 해야겠어요.

만나면 아주 반갑고 즐겁게 말할 거예요.

치치코코 안녕?!

 

 

 


 

올해 3월 말,

신혼기를 보냈던 동네 고양시로 다시 이사를 왔다.

 

2년전 떠날 때만 해도 하윤은 엄마 뱃속에서 6개월째 꼬물거렸는데

만 두 돌을 앞두고 녀석의 홈 그라운드로 돌아온 것이다.

베란다 창 너머 산책로며 배나무 밭과

낮은 산등성이를 타고 푸릇한 나무를 볼 수 있는

천상의 뷰(?)를 자랑하는 탑층의 집을 우리 세 식구의 스윗홈으로 결정.

 

신혼 때 머무른 같은 아파트인데 그 때는 바쁜 회사 생활을 하느라 화분을 들여도 돌볼 틈이 없어 메말라갔다. 베란다 뷰 너머로 지나가는 지하철이 보여도 그다지 큰 감흥은 없었는데 두 돌을 앞둔 아이와 함께 있다 보니 화분에도 마음이 가고 커피 한잔 하며 뷰를 바라보는 여유도 갖게 되었다.

 

나 좋으라고 화분을 하나 둘 씩 들이고 욕심을 내며 작은 베란다를 조금씩 꾸미기 시작했는데, 언젠가는 저보다 녀석이 더 좋아하는 것 같고. 물주는 게 좋아서 직접 물 뿌리개로 워터코인, 애플민트, 안개꽃에게 흠뻑 적셔주는게 녀석의 일상이 되었다. 단, 하루에도 수 번이고 물이 허락되는 초록이들은 이 세 가지 종류의 화분들 뿐. 그 외 초록이들이나 꽃 나무들은 나의 특별관리.

 

어느날 아침 화분에 물주는 특별한 미션을 수행중에 지나가는 지하철을 보고 반기는 녀석을 보며 영감을 받고 쓴 글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주말에 실제 기차를 타 본 이후에는 기차 사랑이 더 커졌더랬다. 늘 기차 놀이하며 하루를 보냈던 5-6월. 그런 녀석을 보며 엄마 아빠는 기차 놀이가 지겹지는 않냐며 다른 놀이를 권해보지만 녀석의 기차를 향한 무한 사랑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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