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고 나서 아이가 아플 때마다 찾는 동네 병원이 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아니고, 친정이 있는 불광동에 자리한 이소아과다. 가까운 곳도 아니고 차로 이삼십분 정도 걸리는 곳으로 가는 건 아직까지 우리 동네에 마음 붙인 병원이 없다는 것도 이유겠지만, 그 보다는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 약손에 대해 우리 엄마때부터 내려온...아주 오래된 인연과 깊은 믿음의 끈 때문이리라.
사연은 이렇다.
난 아이를 낳고 세 달 동안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며 엄마 도움을 받았다. 그러던 중, 아이가 생후 한달 만에 여름 감기에 걸렸던 적이 있다. 날씨가 너무 더운 것 같아서 완전 한여름용 바디수트를 입혀본 게 화근이었다. 속이 비칠 정도로 야들야들하고 얇은 면사여서 시원할 거라는 생각과 코끼리 무늬가 너무 귀엽고 예뻐서 여동생과 함께 장난삼아 입혀보자 해서 한낮동안 잠시 입혀놨던 게 다인데 그날 밤 기침이 시작된 것이다. 신생아는 면역성을 갖고 태어나서 보통 6개월까지는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다 하던데 책에서 나온 얘기랑은 전혀 맞지 않는 상황이었다. 다음날 아침엔 콜록 기침이 더 심해졌고, 마음이 급해진 나와 우리 엄마는 동네 병원 몇 군데 중 한 곳을 찾아갔다.
아침에 진료를 받고 집에 와서 아이와 쉬고 있는데, 미용실에 가셨던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시며 부리나케 집 안으로 들어오셨다. (정말 무슨 큰 일이 생긴 줄 알았다) 엄마는 얼른 외출할 채비를 하라며 서두르셨고 난 영문도 모른 채 가방을 급히 챙기기 시작했다. 엄마가 들어오시며 신발을 거의 내던지시듯이 다급하게 벗고 뛰어 들어오시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상황이 참으로 긴박했다.
외출 준비를 다 하고 조금 진정이 된 후에 들어본 엄마의 이야기. 엄마가 미용사에게 손주 감기 걸린 이야기를 하던 중에 미용사 말이 불광동 먹자골목 근처에 아주 괜찮은 소아과가 있다면서, 초등생인 자기 아이도 아플 때마다 가는데 건물 외관이나 내부가 좀 옛날 스타일이긴 하지만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아주 잘 본다고. 그 분이 소아과명을 대는 순간, 엄마가 거기 나도 아는데라고, 거기 아직도 불광동에 있는 거냐고 위치가 정확히 어디냐고 물으셨단다. 그리고는 아차! 옛 기억이 떠올라 급하게 집으로 돌아오셨다는 거다.
지금으로부터 약 24~5년여 전. 우리 가족은 구파발에 살았다. 당시 내 여동생이 수두인지 홍역인지 심하게 앓아서 학교도 결석하고 집에 있었는데, 엄마가 불광역에 위치한 소아과가 잘본다는 걸 알게 되어 찾아가셨다 한다. 점잖고 정말 잘 생긴, 요즘말로 훈남 의사 선생님이 주사 한방을 놔 주면서 "이거 맞으면 딱지가 곧 생길거야. 그리고 집에 가면서 갈치 하나 사서 구워줘. 애가 입맛이 없을테니 짭짤한게 그래도 먹힐거야" 하셨단다.
순간 엄마의 뇌리를 스쳐간 옛 기억이 바로 이 장면이었던 거다. 파노라마처럼 사사삭 훑고 지나간 과거의 기억을 재생 플레이에서 잠시 멈춤으로 두시고, 그래서 딸과 손주가 있는 당신 집으로 급하게 뛰어오셨던 거고.
...
마침내 나는 외출 가방을 들고, 엄마는 손주를 품에 안고 이소아과 병원에 들어섰다.
병원은 아주 고요했다. 간호사 한 분이 있었고 손님이 없어 적막했다. 한 켠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방송과 천정에 달린 선풍기 팬에서 돌아나오는 바람소리가 짝이 되어 적적한 채 비어있는 공기를 채워줄 뿐이었다. 접수처 안으로 양쪽에 큼직하고 폭이 넓은 선반 위에 진료기록서 한장 한장이 켜켜이 쌓여 빼곡히 채워져있다. 또한 내부는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하고 단정한 회색톤의 일색이다. 아주 오래된 회색깔의 긴 대기의자의 행렬이 마치 그 자리에 굳어진 듯 각 잡힌 채 자리하고 있었다. 출입구 앞쪽부터 대기실 저 안까지 한눈에 쓰윽 훑어본 게 다지만 회색 의자들은 어디 하나 눈에 띄게 튿어거나 망가진 데 없이 아주 깨끗하게 잘 관리된 모습이었다. 오른쪽엔 공무직에서 쓰는 기다란 사무용 캐비넷이 가지런히 서 있고, 그 위엔 지금은 볼 수 없는 GOLDSTAR금성 텔레비전과 에어컨이, 그 아래엔 손으로 쭉 올려서 키를 잴 수 있는 수동식 신장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80년대 후반 옛 영광을 다시 재연이라도 하듯, 병원은 정확히 80년대 그 어느날에 멈추어져 있었다. 우리 엄마의 옛 기억 속 그 때, 그 날처럼.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주문대로 나는 순식간에 그 자리에 영원히 멈춰버린 공간으로 시간 이동을 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의사 선생님을 보자마자 반갑고 기쁜 마음에 사연을 짧게 풀어놓으셨고, 의사 선생님 또한 반가운 기색과 함께 약간 쑥쓰러운 듯하면서도 인자한 미소가 끊이지 않으셨다. 의사 선생님은 아기의 가슴과 배에 청진기를 대고 유심히 살펴보시고는, 청진기를 대었던 그 자리를 손가락 끝으로 톡톡 쳐 보시면서 또 세심한 관찰을 하신다. 이렇게 손으로 톡톡 퉁기는 진찰은 내 평생 처음 봤던 건데 나중 찾아보니 타진이라는 신체 내부를 진단하는 방법 중 하나로, 손으로 가볍고 예리하게 두드려서 생기는 소리로 장기의 경계선이나 위치, 모양 등을 알아낸다고 한다. 다른 소아과도 몇 군데 가 보았지만 청진기 외에 이 방법으로 진료를 하는 의사는 이 분 외엔 없었다. 엄마와 나는 아이의 콜록 기침이 좀 심해 보여 폐렴으로까지 가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의사는 그렇지는 않다고 약처방을 해 주셨고 그 뒤 다행히 감기 기운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이후 아이가 돌을 지내고, 두돌을 넘긴 지금까지도 아픈 기운이 보이면 난 여지없이 이 곳 이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을 찾아온다. 항생제는 정말 증상이 심한 상태 아니고서는 잘 처방해 주시지 않고, 견디고 이겨낼 수 있겠다 싶으면 약도 패스 하신다. 한 번은 아이가 발에 땀이 차서 그런지 그 여리고 작은 발가락 몇 군데에 습진처럼 살이 허옇게 벗겨져서, 그 핑계로 친정을 가고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 심한 것도 아니니 약도 필요없고 발 깨끗히 씻겨서 바짝 뽀송뽀송하게 잘 말려주면 금방 낫는다고. 이 날은 진료비도 받지 않으셨다. 그 후 아이에게 운동화를 신길 때 양말은 되도록 장시간 신기지 않고, 차 안이나 내부에 있을 땐 양말을 아예 벗겨놓기를 반복했더니 약을 바르지 않고도 깨끗하게 맨들맨들한 피부로 돌아왔다.
습하고 꿉꿉했던 장마를 지나 무더위 시작할 최근까지 시즌별로 감기에 한 두차례 걸려 거듭해 병원을 찾았다. 얼마 전부터는 그 한 분의 간호사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 이름을 대면, 진찰실에서 계시던 의사 선생님이 나와 접수처로 발걸음을 옮겨서 진료기록서를 직접 찾아 다시 진찰실로 이동하시고는 아이 이름을 부르신다. 아이가 자주 아파서는 안되겠지만 나는 이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의사 생활을 아주 오래토록 하셨으면 좋겠다. 소아과는 대형 종합병원 아니고서야 각종 검사를 수시로 하지 않기에 의료 장비보다는 의사의 세심한 진찰과 예리한 판단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그만큼 의사의 연륜과 깊은 내공에 무게를 둔다는 뜻이다. 이곳엔 최신 의료기계나 화려하거나 혹은 세련미 넘치는 인테리어 같은 거 없다. 손자 손녀를 살피듯 아이와 엄마의 눈높이에서 보살펴 주는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 한 분만이 계실 뿐이다.
우리 어릴 때 흔히 듣던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말, 태생적으로 손발이 찬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한가보다. 아무래도 내 손은 한참 멀었다. 배 아픈 아이에게 나보다는 아빠의 큼직하고 두툼한 손 마사지가 더 탁월한 듯 하다. 이 또한 수 많은 시간이 켜켜이 쌓여야 하는건가 싶다.
2013. 7월 여름장마 가운데 어느 날.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
그리고 이소아과에 왔다.
시골 뙤약볕 아래, 빨간 고무 대야에
차가운 지하수 한가득 채워 물놀이를 하고 난 직후였다.
할머니가 떠나신 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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