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은 장마비가 잠잠해지고 다시 맑게 개인 날이면
할머니의 빈자리가 느껴질 것 같다.
서울은 온통 그레이톤 축축한 기운이 가득한 길고 긴 장마였고
할머니가 영면하신 그곳 고창은 뜨거운 뙤약볕에 땅도 하늘도 이글이글 달아올랐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따듯하고 고요했던 이별의 장면...
그 날 끄적인 일기를 다시 꺼내본다.
...
"할머니 별세하셨다."
새벽에 엄마가 보내신 문자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간밤 잠을 설치다 동이 트고서야
깜빡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접한 소식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바로 전날, 엄마와 동생이 할머니 뵈러 시골에 내려 간다해서 나도 오빠와 하윤을 데리고 동행을 했다. 아빠와 고모가 일찍이 내려가 계셨고 곡기를 끊으신지 꽤 많은 날들이 지나 다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던 터였다. 시골집은 푹푹찌는 여름의 무더위 속 한가운데 있었다. 할머니는 좀 가쁘셨지만 숨을 쉬고 마치 주무시듯 눈을 감고 계셨고, 거친 살결과는 달리 맨질맨질하고 평평한 손바닥은 따뜻했다.
주말이 고비겠다 생각했는데... 우리 가족을 보신 걸 마지막으로 우리가 서울에돌아오고 나서 두시간 반 만에 떠나셨다. 가시기 전에 뵙고 와서 마음이 좀 편해서 그랬는지 장례식장에서는 이상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때문이었나. 오랜만에 친지를 만나고 얘기하며 허전함을 달래서겠지.
발인하고 영정사진이 시골집 안과 마당을 휘휘 돌아 장지로 향할 즈음 되서야 할머니를 보내야하는 슬픔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더우니 하윤과 차 안에 있으라고 어른들이 말리는 걸 뒤로 하고, 난 힙싯을 채우고 하윤을 앉혀 가족들과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 서울은 폭우라던데 이곳 고창은 뭉게구름 사이로 태양빛이 뜨겁게 내리쬐었다. 간간히 구름이 커져 빗방울이 투투툭 내리다가도 다시 맑아짐을 여럿 반복하는 날씨. 그래도 큰 비는 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전날밤 고열에 시달렸던 하윤이 땡볕에 힘들어하는 것 같아 나는 하관하는 것까지만 보고 아래로 내려왔다.
무엇보다 집안의 막내인 아빠가 느끼실 할머니의 빈자리가 더 적적하신 듯 하다.
숨어서 몰래 우셨는지 계속 눈시울이 붉게 젖어있었다. 그와중에 하윤이 합지- 합지- 하고 할아버지를 부를땐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윤을 안아주시곤 했다.
집으로 오기 전 마지막에 아빠 눈이 넘 불거져서 손을 잡아드렸더니 안보이는데 가서 앉아 흐느끼시는 거 보고 나도 주저앉아 같이 울었다. 나중엔 아빠가 머쓱해지셨는지 등을 떠밀며 얼른 가라고 하셔서 살짝 안아드리고는 급히 차에 올라탔다. 잠든 하윤을 안고 있는데 한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향년 102세로 떠나신 울 할머니..
가시고 난 뒤에야 그 사랑과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고 있다. 계실땐 잘 몰랐고, 손녀로서 그냥 받기만 했는데... 할머니의 부재로 가족간의 더 큰 사랑과 행복을 다시금 보고있음에 깊이 감사한다.
이제 평온한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20130713@장지에서 내려다 본 풍경
- 산세가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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