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302

어느새 초록초록

마상공원 작은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느새 이리 볕이 따뜻한 봄이 온걸까. 햇살이 좋은 아이들이 벌써 집이냐며 남편이 운전해 타고 온 차에서 내리며 적잖이 아쉬워한다. 공원 한 바퀴 돌까? 말 한마디에 금세 총총 달리는 두 녀석. 초록이 새싹들도 고개를 많이 내밀었다. 집앞 벚꽃도 수줍게 꽃망울을 터뜨렸다. 며칠 전만해도 꽃샘으로 세찬 바람이 불었는데 꿋꿋하게 시간을 견뎌냈다. 다행히도 단지 내 공원은 주말에 비해 북적이지 않는다. 아이들 마스크를 살짝 턱 밑으로 내려준다. 지금 이 시간만이라도 햇살 듬뿍, 시원한 공기 마음껏 먹으라고. 노오란 산수유꽃도 반짝반짝 빛난다. 바이러스가 장악한 침묵의 봄. 콧바람 잠시, 햇살 한 줌짜리 산책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날. 이제 곧 있으면 4..

mono + log 2020.03.23

미국 뉴욕 독립서점, 스트랜드 “잠시 문을 닫습니다”

뉴욕의 독립서점 스트랜드 피드를 볼 때면 생각나는 친구에게 최신 글을 공유했다. 3/16일을 기점으로 문을 닫는다는 소식.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권고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서다. 내용상 언어만 달라졌을 뿐. 2~3주 우리가 겪었던 상황과 다르지 않다. 인스타로 소식을 받고 있는 책방 주인님들이 남긴 글의 맥락과도 비슷하다. 동료, 고객, 공동체의 안위를 살피고 걱정하는 마음과 함께 이후의 상황에 대해 업데이트를 약속하는 글이다. 조회수도 호응하는 댓글도 상당하다. 최소 8주 권고지만, 첫 2주가 한 달, 두 달 되고 이러다 내년에 보겠다는 댓글에 스트랜드 서점은 이렇게 답했다. 경제 대공황, 전쟁, 911테러, 수차례 경제 위기에도 스트랜드 서점은 살아남았다고. 꼭 돌아올테니 걱정 ..

mono + log 2020.03.17

[어젯밤] 제임스 설터, 강렬하고 내밀한 10개의 단편

[어젯밤 Last Night] 제임스 설터 박상미 옮김, 마음산책(2010) * 책 속에서 , 아내가 좋아할 물건을 찾아내기는 쉬웠다. 우린 취향이 같았다. 처음부터 그랬다. 취향이 다른 사람과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난 항상 취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건 아마도 옷을 입는 방식이나 또는, 같은 이유로, 벗는 방식으로 전해지는데, 취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학습되고 어느 순간에 도달하면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얘기를 가끔 했다. 무엇을 바꿀 수 있고 또 바꿀 수 없는가에 대해서. 사람들은 언제나 뭔가, 말하자면 어떤 경험이나 책이나 어떤 인물이 그들을 완전히 바꾸어놨다고들 하지만, 그들이 그전이 어땠는지 알고 있다면 사실 별로 바뀐 게 없다..

book. paper + log 2020.03.14

[세상의 많고 많은 초록들] all about green things

[세상의 많고 많은 초록들] 로라 바카로 시거 글 그림 | 김은영 옮김 다산기획(2014) 숲 속엔 울창한 초록 바닷속 깊푸른 초록 라임은 싱그런 초록 녹두는 누릇한 초록 정글은 거뭇한 초록 이구아나 얼룩덜룩 초록 고사리 달빛 어린 초록 풀 먹는 얼룩말 초록 무늬 갖고파 꽃잎 위 느릿느릿 초록 애벌레 빛바랜 초록 반딧불이 반짝 초록 나무 그늘 초록 그늘 세상 많고 많은 초록들 가을 오면 그만 멈춰! 흰 눈에 덮인 초록 우리 곁에 언제나 초록은 영원해

book. paper + log 2020.03.12

[다시, 그림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Conversations with David Hockney [다시, 그림이다] 마틴 게이퍼드 지음 주은정 옮김 | 디자인하우스(2012)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자발적 집콕 생활도 제법 적응할 만큼 적응하고 나니 이제사 갈무리하기만 급급했던 지나간 시간을 천천히 되돌아보고 정리해 둘 여백이 생기는 것 같다. 지난 주엔 장난감과 책이 어지러진 방을 정리했고, 이번 주 들어서는 쌓아 두었던 책을 틈틈이 보는 여유가 조금씩 생겼다. 아이들 학교와 어린이집은 방학 및 휴원 연장이 되고, 남편은 재택근무에 돌입하는 와중에 네 식구의 삼시 세끼 타임은 어김없이 찾아오지만. 오늘은 맘 먹고 지난 여름, 뜨거웠던 8월로 잠깐 돌아가려 한다. 작년 여름, 데이비드 호크니 전..

book. paper + log 2020.03.11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 마르셀 프루스트 이건수 옮김, 민음사(2019) 달달 은은한 바닐라맛과 핑크빛 달콤한 딸기맛 두 개의 층이 존재하는 츄파츕스 막대사탕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사랑스러운(로맨틱, 러블리의 모든 것) 표지 컬러에 반해 집어 고른 책. 시간, 빛깔, 몽상... 이 고유한 언어의 끌림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모든 걸 가능케 하는 프루스트. - 책 속에서, 부드러운 달은 사물들을 보여 준다기보다 환기시켰는데, 사물들의 실루엣 위로 어둠을 없애지 못할 정도로 창백한 빛, 사물들 형태에 대한 망각같이 두터워진 빛을 퍼뜨리고 있었다. (...) 사랑은 꺼져 버렸고, 망각의 문턱에서 나는 두렵다. 그러나 모든 지나가 버린 행복들과 치유된 고통들은 진정되고, 조금은 희미해지고, 아주 가까이 있으면서..

book. paper + log 2020.03.10

[티티새] 눈부신 여름날, 바다, 그리고

[티티새] 요시모토 바나나, 김난주 옮김, 민음사(2003) 츠구미는 정말이지, 밉살스러운 여자 애였다. (p.7, 도깨비 우편함 중에서) 아니다, 밤 때문이다. 그렇게 공기가 맑은 밤이면, 사람은 자기 속내를 얘기하고 만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열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멀리서 빛나는 별에게 말을 걸듯. 내 머릿속 ‘여름밤’ 폴더에는 이런 밤에 대한 파일이 몇 개나 저장돼 있다. 어렸을 적, 셋이서 하염없이 걸었던 밤과 비슷한 자리에, 오늘 밤 역시 저장될 것이다. (p.84 , 밤 중에서) “마리아, 먼저 간다!” 라고 외치고는 철썩이는 파도 속으로 달려갔다. 팔꿈치에서 손 모양까지, 나와 너무 닮은 모습을 보고는 갑자기 가슴이 뭉클했다. 역시 저 사람은 틀림없는 나의 아버지라고, 선 크림을 바르..

book. paper + log 2020.03.09

글쓰기 에세이 _ 홍승은 _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작가, 어크로스(2020) 솔직하고 다정하게 글쓰기를 건네는 책, 제목만으로도 끌렸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출판사 어크로스의 사전서평단 공지를 스크랩해 두고서 한동안 고민을 했던 것 같다. 흩어진 스케치 조각으로만 존재했던 글감을 지난 해 좋은 기회를 통해 멘토와 멘티의 도움을 받아 여러 챕터의 글을 완성한 경험이 있다. 그 뒤로 나의 ‘쓰기’는 잠시 멈춤 상태로 정체되고 말았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기도 했지만, 다시 들여다볼수록 부족함이 보이고, 그 다음 단계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도 했다. 다시 쓰는 일을 어떻게 할지, 어떻게 하면 글을 좀 더 잘 쓸 수 있을지 내적인 갈등이 내면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던 참이었다. 사전서평단 모집 마감..

book. paper + log 2020.01.31

morning festa _ 나팔꽃의 시간

morning festa _ 캔버스에 아크릴 나팔꽃의 하루는 길고도 짧습니다. 흙 속에서 새싹을 움트고 솜털 맺힌 작고 여리한 꽃망울에 이르기까지 수개월을 준비하지요. 그런 끝에 새벽녘 처음으로 꽃잎을 열고 피 우고 닫는데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뿐입니다. 우연히 나팔꽃을 만난 후로 작고 사소하지만, 마냥 사소하지만은 않은 꽃의 생명력을 느낍니다. 시시각각 생의 리듬과 숙명이 공존하는 자연의 시간에 잠시 머물러봅니다. ⠀ /group exhibition/ 시간의 한 조각을 찾아서 ...쉼, 전시회 중에서, _2020.1.21 ~ 2.2 _아람누리도서관 갤러리 빛뜰(B1)

scene + log 2020.01.22

[전시] 쉼 ... 시간의 한 조각을 찾아서

도시의 소음을 뚫고 소리 없이 고요하게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 그 무언가가 당신에겐 있나요? 마음에 머무는 각자의 작은 쉼터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리던 작가 4인이 모여 첫 번째 展을 통해 서로의 ‘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걸음을 늦추고 눈길이 닿는 곳에 잠시 멈추어 마음속으로 들어온 그 무언가와 내밀한 대화를 나누던 시간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자연 속 고즈넉한 풍경에 이끌려 정지된 순간을,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을 따라 가다 인물을,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게 삶을 사는 꽃을, 그리고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간식을 사 먹으며 느낀 소확행을 표현했습니다. 작가 4인의 ‘쉼,’이 감상자 분들의 시간에 의미 있게 가닿기를 바랍니다. _ 2020.1.21~ 2.2 _고양시립아람누리도서관 갤러리 ..

scene + log 2020.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