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paper + log 97

치명적인 뉴욕병을 기억하기 위한, 사소한 기록

⭐️YES24 _ 2018 서울국제도서전 신간 10 리뷰대회⭐️📚최우수리뷰 선정📚 (2018.10.12) ​ 책 표지를 넘기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까지 저자의 발길이 닿았던 곳곳을 들여다보며 한 때 너무나도 동경했던 뉴욕, 그래서 서른에 도망치듯 찾아갔던 그 곳을 기억할 수 있어서 그 시간들이 좋았다. 경험치가 없었다면 마냥 동경하고 말았을 장면 장면을 내가 기억하는 경험을 대입해 볼 수 있어서 아마도 몰입이 더 되었던 것 같다. 남편과 아이들을 꿈나라 기차로 태워 보내고, 뒤따라 감기약을 먹고서 그 다음 기차에 올라탔어야 마땅한 가을밤이었건만. 환절기 감기로 휘청대는 몸을 붙잡고서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던 건, 책을 통해 아주 오랜 동안 묵혀놓고 잊어버렸던 뉴욕병(좋게..

book. paper + log 2018.10.01

임금님의 이사

임금님의 이사 보탄 야스요시 글 • 그림 | 문학과지성사 ​ 미니멀리즘을 좋아한다. 하지만 잘 버리지 못하는 나로서는 절대 범접 불가한 신의 영역이다. 손댈 수 없으니,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니, 꿈꿀 수 있으니 아름다운 게 아닐까. 한달 전쯤, 친정 오랜동안 묵혀있던 내 짐을 완벽히 처리할 기회가 있었다. 버릴 짐을 솎아내도 버리지 못하는 짐이 더 많았다. 책장 가득 채운 책도 다 정리하지 못해 결국은 우리 집으로 그대로 싸 안고 왔다. 20년도 더 지난 내 어릴 적 피아노와 함께...... 특히나 손때 묻은 것들, 이야기와 시간이 고스란히 깃든 물건이라면 더 그렇다. 어릴적 성적표와 생활기록부,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와 엽서, 쪽지는 물론 유년시절의 일기부터 대학시절 다이어리, 사회생활 하는 동안 기록..

book. paper + log 2018.09.18

고양이 손을 빌려드립니다

고양이 손을 빌려드립니다 김채환 글 | 조원희 그림 | 웅진주니어 '나도 아내가 있으면 좋겠다.' 지구별에 정착한 어린왕자가 하나에서 둘로 늘고 내가 품고 있는 거대한 우주에서의 하루살이가 버겁고 답답할 때마다 속으로 늘 말했다. 온전히 내 삶의 고단함을 우리 엄마에게 맡기기는 싫고, '이모님'이라는 고용된 관계도 어쩐지 불편하다. 그러니 '아내'가 딱이다. 나 대신 역할을 대신해 줄 '우렁각시' 말이다. 우주를 꾸려가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다. 결혼하기 전엔 미처 몰랐다. 아니 둘이 살 때만 해도 몰랐다. 어느새 나 또한 삼시 세끼를 걱정하는 애미가 되고 보니 그제야 울 엄마가 생각났다. 도대체 어떻게 애 셋을 키워낸 걸까. ..

book. paper + log 2018.09.15

모두를 위한 케이크

모두를 위한 케이크 (2018, 미디어창비) 다비드 칼리 글 | 마리아 덱 그림 | 정화진 옮김 여러 책을 빌려다가 오랜 고심끝에 드. 디. 어. 2학기 첫 리딩맘 첫 책을 골랐다. 결정장애인 엄마를 도와 최종 선택은 99.9% 아이의 기여 덕분이다. 재미있고 빵빵 터지는 책이 뭔지 리딩맘 선배들께 조언을 구해볼까 하다가 이번 1학년 친구들은 처음 만나는 자리이니 책을 통해 매주마다 만나며 차근히 친해지면 되지 않을까 욕심을 좀 내려놓았다. 그림이 예쁘고 매력적이고 색감이 좋은 책 거기에 생각할 만한 주제도 있는 책인 것 같아 마음이 살짝 기울었는데 다행히 아이랑 통했다! ​모두를 위한 케이크 ​ 오믈렛이 먹고싶어진 생쥐. 달걀이 없어 이웃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보기로 한다. ​짠! 모두 여덟 조각이면..

book. paper + log 2018.09.11

When YOU Were small _ 네가 아주 어렸을 때

When YOU Were small SARA O'LEARY with illustrations by JULIE MORSTAD 네가 아주 어렸을 때 (2007, 사파리) 사라 오리어리. 글 l 줄리 모스태드. 그림 l 김선희 옮김 ​​ 치카치카 양치하고, 이불을 펴고, 잘 시간이라고 말하면 후다닥 달려와 제 잠자리에 얌전히 누워 바로 잠드는 아이가 과연 있을까? 피로도가 최고지수에 이르러 비몽사몽인 채로 곯아 떨어진 날이 아니고서는 어린 아이가 있는 집에서 잠자는 시간에는 저마다의 의식을 치룰 터. 예쁜 그림 동화책 한 권으로 시작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야기 블랙홀로 들어가기도 하고, 자장가 음악을 틀어놓고 엄마도 잠자는 척 시늉을 하다가 엄마가 먼저 꿈나라로 가기도 하며, 맘 조리며 기껏 다 재..

book. paper + log 2018.09.11

바람이 불었어

바람이 불었어 팻 허친즈 그림·글 | 시공주니어 ​ 2학기 첫 리딩맘(책 읽어주는 엄마) 활동을 마치고 학교에서 나오는 길, 시원하게 바람이 분다. 덥지도 차갑지도 습하지도 않게 딱 좋게 선선하게... 아이 친구들이 많이 있는 반에 처음으로 책을 읽어주자니 적잖이 긴장하고 이마며 겨드랑이며 땀이 송송 맺혀있던 찰나, 때 마침 부는 바람은 내게 이른 아침 수고했다며 말을 건네는 듯하다. 아침 일과를 위해 새벽 6시 반부터 분주하게 움직인 시간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하늘빛은 흐리지만 회색 바람이 주는 청량함은 이번 달 들어 처음이지 아마. 여름 내내 쉬지 않고 돌아가던 선풍기와 폭염을 잠재우던 냉기 백프로 초강력 에어컨 바람에는 없는 무늬와 결을 지닌 자연 그대로의 바람이 분다. 계절과 계절 사이의 흐름을 ..

book. paper + log 2018.09.07

버텨내어 좋은 일 투성이

버텨내어 좋은 일 투성이 글 그림 _ 설레다 l 엔트리 ​ ​따끈한 신착도서가 있어 잠시 데려온 책. 솔직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간 서문에 그만 심쿵! 마음이 어지럽고 몸도 휘청하는 동안 수다로도 풀리지 않는 응어리들을 어디서부터 매만져야할지 몰라 그저 답답하기만 했는데 진솔하게 써 내려간 서문의 글귀가 주는 섬세한 토닥임에 마음의 빗장이 절로 내려갔다. ​​ 뱉어내지 않고 쏟아내지 않으면 이렇게 병이 나는구나... 그래서 그랬던 거였다. 열중하다가도 빈 틈이 생기는 게 싫다고 마음에 들지 않다고 단번에 손에서 놓아버렸더니 틈새는 점점 벌어지고 이내 곧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 나버린 지난 날들의 비어진 페이지들. 그 조차도 싫어서 나를 또 밉게 작게 만들어 버린 결과. 결국엔 내가 감당할 몫..

book. paper + log 2018.09.03

하늘에서 본 지구 이야기

얀이 들려주는 하늘에서 본 지구 이야기 얀 아르튀스-베르트랑 Yann-Arthus-Bertrand ㅣ 황금물결(2010) 사악한 폭염으로 들끓었던 여름의 끝자락에 태풍이 지나가고 난 자리가 어쩐지 뒤숭숭하다. 예고 없는 물폭탄으로 전국 곳곳이 바짝 긴장모드. 불볕더위가 꺾이고 구름 총총 온통 파랑이던 하늘이 그립다. 가을 채비를 하던 하늘빛과 바람은 언제고 예고없이 나타나도 좋을 선물이었는데... 한 주 동안 비구름 몰고 와 잔뜩 성을 낼 하늘을 볼 자신이 없다. 구름과 구름사이 저 어딘가 틈을 비집고 가끔 햇살 한 줄기라도 반짝 빛나주길. 수증기 만나 무지개 콜라보를 깜짝 선보여도 참 좋겠다. 어깨가 무거운 회색 구름아, 너무 급하게는 말고 천천히 짐을 풀어 놓으려무나. 쉬어가는 빗소리 바람소리에 우리..

book. paper + log 2018.08.29

피튜니아, 여행을 떠나다

암거위 피튜니아 이야기 l 피튜니아, 여행을 떠나다 PETUNIA TAKES A TRIP (Knopf, 1953) ​ Roger Duvoisin 로저 뒤바젱 그림∙글 l 서애경 옮김 나의 서툰 그림은 블로그 제목처럼 늘 느리고 더디다. 스케치할 땐 선 하나에 주저하고, 채색할 때의 머뭇거림은 느림의 속도를 한없이 늘어지게 붙든다. 그런 탓에 완성하고도 미완의 느낌이 강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취미 삼아 그리는 거라서 큰 욕심은 없지만 멋진 그림책을 만났을 땐 대리만족과 동시에 즐거운 쾌감이 느껴져 갖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책 모임에서 ‘휴가’라는 주제가 주어졌을 때 표지 그림에 반해서 고른 책 [피튜니아, 여행을 떠나다]. 피튜니아가 저 위로 날아오르는 순간을 포착한 책 표지와 시원시원한 색감의..

book. paper + log 2018.08.27

민들레는 민들레, 나는 나.

재미나거나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책은 아닙니다. 한 페이지에 한 줄 정도 짧은 글이 민들레 꽃 그림을 배경으로 카피처럼 이어지는데요. 전개되는 스토리도, 반전도, 결말도 특별할 것 없는 그냥 민들레 꽃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글과 그림을 천천히, 느릿느릿 음미하고 되도록 소리를 내어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자신이 플레이 기능이 탑재된 기계라고 여기고, 최대한 느린 모드로요. 나지막이 나의 목소리로 책을 직면하는 꽤 괜찮은 시간이 되기도 하지요. 며칠 전 서점에서 겪은 일입니다. 세상의 속도도 빠르고, 신간은 쏟아지고, 누군가는 계속 성장하고 변화하는데 그냥 저만 제 자리에 멈추어 있구나 싶더라고요. 뒤쳐짐의 느낌은 그저 사소한 감정이 아니라 무자비하게 피어오르는 진한 무채색을 잔뜩 머금은 ..

book. paper + log 2018.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