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18

[엄마는 해녀입니다] 오늘 하루도 딱 나의 숨만큼만...

[엄마는 해녀입니다] ​ 글 고희영 | 그림 에바 알머슨 | 번역 안현모 난다(2017) ​ "우리들은 그렇단다. 내내 숨을 참았다가 물 밖으로 나와 숨을 몰아 내쉬지. 돌고래처럼 말이야. 호오이~ 호오이~ 그럼 이런 소리가 난단다. 그걸 숨비소리라고 한단다." 호오이~ 호오이~ 숨비소리 호오이~ 호오이~ 엄마가 살아 있다는 소리 _ [엄마는 해녀입니다] 중에서... * '엄마는 해녀입니다. 전복, 물고기, 미역, 문어, 조개처럼 바다의 보물을 캐는 사람입니다.' 이 책을 읽어준 1학년 반 친구의 글이다. 책 어느 구절에도 '보물'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데 책의 느낌을 이렇게 표현해서 더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표지 속 엄마를 만나고, 책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지..

book. paper + log 2018.12.04

[숨] (노인경) 세상과 마주한 아이의 첫 숨을 기억하며

「곰씨의 의자」, 「고슴도치 엑스」,「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책청소부 소소」,「기차와 물고기」,「나는 봉지」 ... 노인경 작가의 그림책은 내가 좋아서 먼저 보기 시작했다가 아이도 서서히 물들어 좋아하게 되었다. 글이 없이 순수하게 그림만 담긴 그림책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리뷰를 신청한 건, 기존 작품에서 접한 작가 특유의 감성과 이야기를 담은 그림에 이미 충분히 매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운 좋게도 덜컥 리뷰어로 선정되고, 책을 기다린 끝에 받은 배송 중이라는 문자는 왜 그리 또 설레던지. 그렇게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치는 가운데 「숨」책을 처음 만났다. ​ 숨방울이 뽀글뽀글거린다. 평온하게 눈을 감고 온 세상 앞에 호흡하는 아이. 파스텔 분홍빛 표지에 선명히 새겨진 파란색 ‘숨’ 글자가 ..

book. paper + log 2018.11.09

플라스틱 지구 아래, 플라스틱 섬. 내일이면 늦으리...

[플라스틱 섬] 이명애 지음 | 상출판사(2014) ​ ​바다 저편을 바라보는 새 한 마리가 있다. 쓸쓸하다. 외롭다. 주위를 둘러싼 바다의 풍경이 고요한 가운데 황망하기 그지없다. 무엇을 저리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걸까. 책 표지를 넘기자 은은한 에메랄드빛 바닷물과 회색, 검은색.. 무채색의 섬이 그려진 면지가 이야기의 서막을 여는 듯, 조용하고 고독한 바다가 보인다. ••• ​먹색으로 촘촘히 표현된 수많은 집과 빽빽히 들어찬 건물, 빌딩들. 인간이 사는 대륙의 삶이 단적으로 느껴진다. 폐타이어, 패트병, 겉으론 알 수 없는 거대한 자루들이 트럭에 실려 오고, 짐을 운송하는 사람들, 차의 표정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맡겨진 일을 하는 것이라는 듯, 냉정하고 무덤덤하게 물건을 옮긴다. 그..

book. paper + log 2018.10.23

매일 매일 밥. 춤을 추는 그대에게...

밥. 춤 정인하 글 그림 | 고래뱃속 ​ 한 달에 두 번, 그림책 모임에 나간다. 의견을 내서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춰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을 골라 간다. 너무나 뜨거웠던 여름방학을 보내고 지난 달 첫 주의 주제는 '음식(먹을 것)' . 신간을 그 때 그 때 캡쳐해두고, 아이들이 좋아한 책과 그 외 더 보고 싶은 책들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 가장 먼저 꺼내든 책이 [밥.춤]이다. 표지 그림에 꽂혀서 제일 먼저 보고 싶었다. (이번에도 역시 책 표지 그림에 홀랑 반함. 소장각!) • •• 표지를 장식한 두 사람이 춤을 춘다. 한 사람은 빵모자와 앞치마를 두르고, 다른 한 사람은 허리춤에 전대를 차고서 두 팔과 다리를 쭉 뻗은 채 높이 도약! 면지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옷걸이, 신..

book. paper + log 2018.10.05

고양이 손을 빌려드립니다

고양이 손을 빌려드립니다 김채환 글 | 조원희 그림 | 웅진주니어 '나도 아내가 있으면 좋겠다.' 지구별에 정착한 어린왕자가 하나에서 둘로 늘고 내가 품고 있는 거대한 우주에서의 하루살이가 버겁고 답답할 때마다 속으로 늘 말했다. 온전히 내 삶의 고단함을 우리 엄마에게 맡기기는 싫고, '이모님'이라는 고용된 관계도 어쩐지 불편하다. 그러니 '아내'가 딱이다. 나 대신 역할을 대신해 줄 '우렁각시' 말이다. 우주를 꾸려가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다. 결혼하기 전엔 미처 몰랐다. 아니 둘이 살 때만 해도 몰랐다. 어느새 나 또한 삼시 세끼를 걱정하는 애미가 되고 보니 그제야 울 엄마가 생각났다. 도대체 어떻게 애 셋을 키워낸 걸까. ..

book. paper + log 2018.09.15

바람이 불었어

바람이 불었어 팻 허친즈 그림·글 | 시공주니어 ​ 2학기 첫 리딩맘(책 읽어주는 엄마) 활동을 마치고 학교에서 나오는 길, 시원하게 바람이 분다. 덥지도 차갑지도 습하지도 않게 딱 좋게 선선하게... 아이 친구들이 많이 있는 반에 처음으로 책을 읽어주자니 적잖이 긴장하고 이마며 겨드랑이며 땀이 송송 맺혀있던 찰나, 때 마침 부는 바람은 내게 이른 아침 수고했다며 말을 건네는 듯하다. 아침 일과를 위해 새벽 6시 반부터 분주하게 움직인 시간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하늘빛은 흐리지만 회색 바람이 주는 청량함은 이번 달 들어 처음이지 아마. 여름 내내 쉬지 않고 돌아가던 선풍기와 폭염을 잠재우던 냉기 백프로 초강력 에어컨 바람에는 없는 무늬와 결을 지닌 자연 그대로의 바람이 분다. 계절과 계절 사이의 흐름을 ..

book. paper + log 2018.09.07

피튜니아, 여행을 떠나다

암거위 피튜니아 이야기 l 피튜니아, 여행을 떠나다 PETUNIA TAKES A TRIP (Knopf, 1953) ​ Roger Duvoisin 로저 뒤바젱 그림∙글 l 서애경 옮김 나의 서툰 그림은 블로그 제목처럼 늘 느리고 더디다. 스케치할 땐 선 하나에 주저하고, 채색할 때의 머뭇거림은 느림의 속도를 한없이 늘어지게 붙든다. 그런 탓에 완성하고도 미완의 느낌이 강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취미 삼아 그리는 거라서 큰 욕심은 없지만 멋진 그림책을 만났을 땐 대리만족과 동시에 즐거운 쾌감이 느껴져 갖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책 모임에서 ‘휴가’라는 주제가 주어졌을 때 표지 그림에 반해서 고른 책 [피튜니아, 여행을 떠나다]. 피튜니아가 저 위로 날아오르는 순간을 포착한 책 표지와 시원시원한 색감의..

book. paper + log 2018.08.27

민들레는 민들레, 나는 나.

재미나거나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책은 아닙니다. 한 페이지에 한 줄 정도 짧은 글이 민들레 꽃 그림을 배경으로 카피처럼 이어지는데요. 전개되는 스토리도, 반전도, 결말도 특별할 것 없는 그냥 민들레 꽃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글과 그림을 천천히, 느릿느릿 음미하고 되도록 소리를 내어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자신이 플레이 기능이 탑재된 기계라고 여기고, 최대한 느린 모드로요. 나지막이 나의 목소리로 책을 직면하는 꽤 괜찮은 시간이 되기도 하지요. 며칠 전 서점에서 겪은 일입니다. 세상의 속도도 빠르고, 신간은 쏟아지고, 누군가는 계속 성장하고 변화하는데 그냥 저만 제 자리에 멈추어 있구나 싶더라고요. 뒤쳐짐의 느낌은 그저 사소한 감정이 아니라 무자비하게 피어오르는 진한 무채색을 잔뜩 머금은 ..

book. paper + log 2018.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