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J-Logue 302

탐구하는 재미, 식물의 모든 것 _ Lab Girl

​ 랩걸 Lab Girl 호프 자런 글 | 김희정 역 | 알마출판사(2018) ⠀⠀⠀ * 나는 엄청나게 많은 이파리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직업이다.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질문을 한다. 제일 먼저 나는 색을 본다. 정확히 어떤 종류의 초록색인가? 위쪽이 아래쪽과 다른 색인가? 가운데가 가장자리와 다른 색인가? 가장자리는 어떤 상태인가? 부드러운가? 뾰족뾰족한가?잎에 수분은 얼마나 차 있나? 시들어서 축 쳐져 있는가? 주름져 있나? 싱싱한가? 잎과 줄기 사이의 각도는? 잎은 얼마나 큰가? 내 손바닥보다 더 큰가? 내 손톱보다 더 작은가? 먹을 수 있는 잎인가? 독소가 들어 있을까? 햇빛은 얼마나 받고 있나? 잎에 비가 얼마나 자주 내리는지? 병들었나? 건강한가? 중요한가? 하찮은 잎인가? 살아 있나? 왜? ⠀⠀..

book. paper + log 2019.05.10

엄마 까투리

​ 엄마 까투리 권정생 글 | 김세현 그림 | 낮은산(2008) ⠀⠀⠀ * 꿩 병아리들은 그래도 뿔뿔이 흩어져 모이를 주워 먹다가는 밤이면 앙상한 엄마 까투리 곁으로 모여들어 잠이 들었습니다. 엄마 냄새가 남아 있는 그곳에 함께 모여 보듬고 잠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엄마 까투리는 온몸이 바스라져 주저앉을 때까지 새끼들을 지켜 주고 있었습니다. * ⠀⠀⠀ 이번주 어버이날 아침, 리딩맘 시간에 들고간 책. 늦게 등교한 아이들이 자리에 앉는 사이, 어수선한 분위기가 점점 차분해지고 엄마 까투리와 꿩 병아리의 이야기에 차츰 빠져드는 몰입감이 극에 다다랐다. "(산불때문에) 고기가 되는 거에요? "안돼..." "어떻게..." 여러 반응 속에 한 아이의 마지막 말 한마디가 내 맘속에 깊이 가라앉았다. "병아..

book. paper + log 2019.05.10

고양의봄. 벚꽃 동산에서.

​​​​​베란다 너머 동산은 언제 꽃이 필까 매일을 내다보았다. 나무 위쪽만 꽃망울이 터져 연분홍 핑크뮬리처럼 보이다가 며칠 새 활짝 피었다. 동네 사람들 모두 모여들어 벚꽃 피크닉이 한창이던 어제 토요일. ​ 돗자리를 펴고 쉬고 있는데, 바로 옆에 벚꽃이 예쁘게 핀 나무를 찾아 온 아빠와 딸이 보였다. 나무에 걸려있는 이름표를 확인하는 걸 보니 나무의 가족이었다. 부러운 눈빛으로 나무의 주인이신가보다 했더니, 11년에 태어난 딸아이를 위해 이듬해 봄 기념식수 행사에 참여해 나무를 심었다고. 아빠의 허리께에 닿을 만큼 훌쩍 자란 아이는 벚꽃이 핀 나무 아래서 손으로 브이를 그리며 미소를 지었다. 아빠는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어린 묘목이 예쁘게 자란 걸 딸에게 설명하기 바빴다. 사진을 다 찍은 아이는 벌..

photo + log 2019.04.14

<꼬마 건축가 이기 펙> & <앵무새 열마리>

⠀⠀⠀​ 간밤 내내 꿈을 꿨다.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러 가는 날인데 지각하는 꿈. 타임 슬립 아니고서는 아무리 한달음에 달려가도 이미 늦어버린 시간. 2학년 올라간 아이들이 리딩맘 시간에 접하지 않은 책을 고르려고 애쓰려다 그만 너무 고뇌한 탓인가보다. 지루하지 않고, 좀 더 재미나고, 아이들에게 좀 더 도움이 될만한 책을 고르는 일은 즐거우면서도 어렵다. ⠀⠀⠀ * 오늘 읽어 준 두 권의 책은 그리고 ⠀⠀⠀ 가끔 생각한다. 내 어릴적 경험치만으로 세상을 바라 보고 아이들을 대하는 건 아닌지. 에도 과거의 경험으로 아이들이 누리고 펼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싹둑 잘라버린 선생님이 나온다. 그 누구의 모습일 수 있는, 평범하고 재미없는 어른의 전형으로 말이다. 책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선생님을 비판하고 이..

book. paper + log 2019.04.11

비 온 뒤 노랑

​ 비 온 뒤 노랑! 은근 기다렸는데, 프리지아 없는 봄은 서운하니까, 내 돈 주고 꽃 사기. 올해 첫 꽃. 지하철 역앞 꽃가게에서 한 단 사서 돌아섰는데, 다시 총총총 돌아가서는 "한 단 더 주세요. "하고 한 마디 더 덧붙인다. "예쁜걸로요~" "왜, 누구 선물하고 싶은 사람 생각났어?" 단번에 마음을 읽어내린 주인 아주머니가 물으신다. ⠀⠀⠀ 얼마전 리뉴얼 마친 동네카페에 슬쩍 건네고 집으로 오는 길. 꽃샘추위 방심하다 콧물 그렁그렁, 목은 따끔따끔한데도 기분은 날씨처럼 비 온 뒤 맑음! ⠀⠀⠀

photo + log 2019.03.23

이 땅의 참주인, 참어른입니까 - <제암리를 아십니까>를 읽고.

장경선 작가의 역사 동화 <제암리를 아십니까>. 작가의 물음에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어 표지 그림으로 시선을 돌렸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소년과 소녀. 한복차림을 한 귀밑머리의 소녀 곁에 있는 닭 한마리. 뒷 표지에는 지난 역사를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이름없는 풀뿌리 같은 백성들이 외친 만세 소리를 잘 들어보라는 추천사가 발췌되어 있다. 사건에 대해 잘 몰랐기에 부끄러웠고,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더더욱 작가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단숨에 읽어나갔다. 이 장편 동화는 일제의 제암리 학살 사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다룬 이야기다. 1919년 당시 전국적으로 확산된 3.1독립운동의 흐름속에서 제암리 발안 -지금의 화성 지역 - 장터에서 수원군 최대 규모의 연합 만세항쟁운동이일어났다. 일제는 3.1독립운동..

book. paper + log 2019.03.21

100년 전 그 날의 선언을 옮겨 적으며

봄이 채 오기도 전 어느 날, 지인의 독립선언문 필사 노트를 보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적이 있다. 이제껏 선언문을 끝까지 정독한 적이 있었던가. 자문하다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역사책에 담긴 사진으로만, 잊어서는 안 될 역사라고 머릿속으로 기억할 뿐. 글을 읽어볼 생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하지만 그 순간 느낀 부끄러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난 바쁘면서도 평온한 일상 속으로 아무렇지 않게 다시 걸어 들어갔으니 말이다. 2019년 3월 1일, 큰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태극기를 꺼내 흔들어대며 부산스럽게 아침을 열었다. 국경일에 태극기 달기를 제 일처럼 챙기는 아이인데 이번엔 유난히 더 즐거운 눈치랄까. 물어보니 태권도장에서 마련한 태극기 이벤트에 인증샷을 올리면 칭찬 보..

mono + log 2019.03.21

[제암리를 아십니까] 장경선 역사동화

​ / "다음에 어른이 되면 너희 나라가 지은 죄를 낱낱이 세상에 알려. 이건 사사까 아들 나카무라가 아니라, 나에게 쑥을 캐 주던 동무에게 부탁하는 거야." / 장경선 장편 역사동화 p. 186 중에서. * 3.1독립운동 그리고 제암리 학살사건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만세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3월 31일 제암리 발안(지금의 화성) 장터에서 시민들이 참여한 만세항쟁이 일어나고 수원군 최대 규모의 연합시위로 확대된다. 일본군의 진압 과정에서 시위대 한 명이 목숨을 잃자, 시위대는 일본 순사를 처단하고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불태우며 저항에 나선다. 헌병과 경찰은 시위 주동자를 체포하는데 혈안이 되어 마을의 가옥에 불을 지르고 고문을 가하며 무자비한 진압작전..

book. paper + log 2019.03.14

[우연의 신] _ 손보미

​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빨강 표지에 이끌려 잠시 데려온 책. 끊어읽기하려다 가속도가 붙어 한 숨에 한달음에 보았다. 삶은 무수히 많은 우연과 우연의 점들이 닿아 머무르다가 또 지나가는 장면들의 집합.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던 인물의 일상에 균열을 낸 단 한 방울의 우연, 아니 방울방울 이어지는 뜻밖의 일들로 삶은 또 다르게 굴러간다. 거듭되는 우연 속에서도 우연한 선택을 통해 접하는 우연한 만남과 우연히 느끼는 감정들은 이상하리만치 낯설지만 다르게 전개되고 또 흘러간다. 루틴함에 갇힌 일상에서는 볼 수 없던 다름의 모습으로. 그래서 결말은? 글쎄. 아무도 모른다. 끝을 모르고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처럼.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헷갈리는 정교한 구조의 소설이다. 삶도 그러하지 않은가. 치밀한 ..

book. paper + log 2019.03.12

[아빠가 되었습니다만,] _ 요시타케 신스케

​​​ 세 남자가 잠든 밤. 기어코 이불 밖으로 기어나와 낮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중 하나를 꺼내들었다. 요시타케 신스케 [아빠가 되었습니다만,] 엄마 껌딱지 두 아들을 키우며 독박육아 참 서럽다고 했던 날이 언제던가. 한땐 치열하게 불만의 끝을 달리며 뾰족뾰족 일상의 연속이었는데. 작가의 일러스트 에세이 보며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보면 이젠 좀 여유가 생긴 걸까. 천재그림책작가답게 위트와 센스, 유머는 말할 것도 없고. 그래도 참 열심히 육아에 참여한 열혈아빠 인정. 나 힘들다 버겁다 짜증만 냈지 사실 아빠가 외로운 건 잘 몰랐다. 아니, 알았더라도 거기까지 보듬어주기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웠던 일... * 책 속에서 * 05 어른의 세계 어른이 되고, 또 아빠가 되고 나서 가장 놀라는 건, 주..

book. paper + log 2019.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