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 + log 65

쓰기의 쓸모

언제부터일까. 다이어리를 쓰지 않았다. 끄적이는 메모용 얇은 노트는 있지만 일정을 전체적으로 확인하고 기록하고 관리하는 개념의 다이어리는 잊은지 오래된 것 같다. 일상에, 시간에, 상황에 쫓겨 폰을 켜고 메모장에 기록하고, 일정 기능을 활용하는 일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빠르고 편리하니까. 그런 습관때문인지 언젠가부터 펜을 들고 종이 위에 적을 때, 손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얕은 손떨림은 물론 글씨가 제대로(바르고 예쁘게) 써지지가 않는 것이다. 땀이 나고 맥박이 빨라지며 두근거리는 전조 증상이 나타나면서 원래의 익숙한 필체는 없어지고, 낯설고 이상한 흘림체를 마주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를테면 소아과 접수대에서도 고작 아이 이름 세 글자를 쓰는데도 손은 머뭇거리고, 동화수업 말미에 글쓰..

mono + log 2019.09.04

100년 전 그 날의 선언을 옮겨 적으며

봄이 채 오기도 전 어느 날, 지인의 독립선언문 필사 노트를 보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적이 있다. 이제껏 선언문을 끝까지 정독한 적이 있었던가. 자문하다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역사책에 담긴 사진으로만, 잊어서는 안 될 역사라고 머릿속으로 기억할 뿐. 글을 읽어볼 생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하지만 그 순간 느낀 부끄러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난 바쁘면서도 평온한 일상 속으로 아무렇지 않게 다시 걸어 들어갔으니 말이다. 2019년 3월 1일, 큰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태극기를 꺼내 흔들어대며 부산스럽게 아침을 열었다. 국경일에 태극기 달기를 제 일처럼 챙기는 아이인데 이번엔 유난히 더 즐거운 눈치랄까. 물어보니 태권도장에서 마련한 태극기 이벤트에 인증샷을 올리면 칭찬 보..

mono + log 2019.03.21

어린 어른, 어른 피터팬을 기억하며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을 읽고... 비읍이에게 린드그렌 선생님이 있다면, 나에겐 초등학교 시절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준 선생님이 있다. 6학년 8반 어린이를 이끈 영원한 어른 피터팬, 우리 선생님의 이야기다. 6학년이 되던 해 우리는, 5학년 때 반 친구들과 함께 새 학기를 맞이했다. 개교 이래 반 편성없이 같은 반을 유지하고 새 학년을 시작한 경우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5학년 정규과정이 끝나고 봄방학을 앞두고서 그 사실을 처음으로 전해 듣고 반 전체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한 사람이라도 헤어지지 않아서 좋았고, 곧 청소년이 될 어린이로서의 마지막 한 해가 더 애틋하게 느껴졌다. 6학년이 시작되는 3월 첫날. 봄은 아직 마음을 덜 열었지만, 단합력이 좋았던 우리는 어떤 선생님이 들..

mono + log 2019.03.07

꾸역꾸역

꾸역꾸역 버릇처럼 넘기고 있다 아무일 없던 듯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짙은 고뇌도 옅어질터인데 완만하게 넘어가는 시차를 견디지 못하고 덕지덕지 걱정을 붙이고 마는 어리석음. 열이 나는 아이를 지켜봐야 하는 나의 시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아이의 성장 속도는 빠르고 나의 성숙 속도는 굼뜬다. 오히려 뒤로 걷는 기분. 큰 아이는 입학 후 처음으로 부모의 품을 떠나 눈썰매장에 갔다. 땀이 차면 감기들까 싶어 스키복 안에 내복과 얇은 티 하나만 입혀 보낸 게 마음에 걸려 아침 내내 속이 타들어갔다. 해야할 게 많은 한 주였는데 역시나 하지 못한 리스트가 많다. 꾹꾹 어거지로 눌러 담은 욕망이 펑! 정상 체온을 회복한 아이에게 무자비한 악마의 샤우팅. 내가 나를 봐도 참 안..

mono + log 2019.01.19

#새해일상

#새해일상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새해를 맞은지 16일째. 이 곳도 잠시 쉬었다. 쓰기보다는 무작정 읽기 심취했던 며칠.아직 글이 정리되지 않은 책들... ... ⠀⠀⠀⠀⠀⠀⠀⠀⠀⠀⠀⠀⠀⠀⠀⠀⠀ #생일떡 두 번의 떡을 쪘다. 아니 사실은 주문! ^^ 둘째 생일 기념 수수팥떡 을 동네 지인들과 나누고, 진짜 생파엔 고전적으로 친구들에게 백설기를 돌렸다. ​ 종이컵 속에 알알의 수수팥떡! 냅킨으로 포장 ^^ 새해 좋은 기운 가득하길 바라며, ​ 미리 주문해 둔 게 없어서 집에 있던 한지와 도일리페이퍼로 가내수공업 ^^ ⠀⠀⠀⠀⠀⠀⠀⠀⠀⠀⠀⠀⠀⠀⠀⠀⠀ #봄 방학없는 겨울방학 큰 아이는 1학년을 마치고 첫 겨울방학이 시작됐다. 봄방학이 없어 무려 한달 반 😅😥😂🙄따뜻한 나라 가서 한 달 살기를 했어야 했다...

mono + log 2019.01.16

텅 빈 하루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는데, 정작 내가 해야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결국 한 글자도 못 읽고, 한 글자도 쓰지 못한 날. 아내도 엄마도 아닌 온전히 '내'가 되어 해야할 일을 하지 못했단 의미다. 어제밤 [경애의 마음]을 읽다가 그대로 거실에서 잠이 들고 말았고 일어나니 아침 7시 반. # 아내이고 엄마 서둘러 남편 아침 요깃거리로 토스트를 싸서 보내고, 두 아이 아침 먹이고 등교, 등원을 마치고 나니 너저분한 옷가지와 장난감이 뒤엉켜 널부러진 거실이 헛헛하다 못해 공허하다. 하염없이 게으름을 뚝뚝 흘린 채 태연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게 너무도 얄밉다. 그래서, 어쩌라고 어?! 누군가 대신 치워주지도, 치워줄 수도 없는...치워봤자 몇 시간 후면 궁극의..

mono + log 2018.12.19

키친타월의 위로

​ 일상의 느림표를 지향했던 내게 돌아온 부메랑이었을까. 점점 빨라지는 세상의 시계와 속도를 거스르는 시간을 보내온 것 같아 서러움이 철철 넘친다. 잰걸음으로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꾹꾹 눌렀던 눈물샘이 터져 눈물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방울방울 터져버린 눈물도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이미 알았다는 듯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건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왜 나만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 건지 그 언젠가 꽉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너무 한 번에 손에서 놓아버린 지난 날을 후회한다. 그건 내려놓음이 아니라 회피에 불과했음을 이제야 인정한다. 성숙하지 못했던 자아가 단단해지기까지 꼭 필요했던 단련의 시간으로부터 도망쳤던 그 때. ​ 아이처럼 두 손..

mono + log 2018.08.08

윤과 꼬망의 3단 샌드위치

"엄마, 어서 이리 와. 어서... 내려와..." 바닥에 요를 깔고 자는 둘째 꼬망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는 말이다. 형아랑 침대에 있지 말고 바닥으로 내려와 나더러 제 옆에 누우라고 하는 소리다. 나는 다시 자는 척을 해 보다가 칭얼거려서 아름드리 두 팔을 벌려 보았다. 꼬망은 금세 뒤척이더니 한 손에 토끼 인형을 무심히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제 베개를 들고서 엉금엉금 침대 위로 올라온다. 달팽이처럼 슬그머니 내 배 위로 기어 온다. 이미 형아 차지인 내 옆구리를 지나 남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와 제 자리를 만들고는 베개를 놓고 눕는다. 형아 윤도 내 품을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에 질 세라 내 배 위에 찰싹 붙는다. 눈치 빠른 꼬망도 형을 따라 엄마의 배를 차지하려 안간힘을 쓴다. 결..

mono + log 2018.07.10

겨울나기 준비

​ 어제, 나 홀로 이케아. 춥다. 어느새 겨울. 늦가을은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정말 코 앞에 눈 앞에 겨울이 왔다. 뚝 떨어진 기온에 집 안에도 찬기가 느껴진다. 이사 오고 난방도 최대한 신경 써서 딱 필요한 시간만 돌리기 시작했는데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안방에 커튼을 단 이후로 좀 더 아늑해지고 따뜻해져서 거실에도 커튼을 달고 싶은데 이전 집에서 썼던 초록 패턴 커튼 말고 다른 분위기를 내 보고 싶어 이케아로 향했다. 흰 색은 때가 타기에 꺼리는 게 보통인데, 넓은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흰 색으로 가련다. 더러워지면 빨면 그만. 그만큼 청소도 더 신경 쓰게 되고 괜찮을 거라고 나름 합리화를 하고. 회색도 괜찮았는데, 어두워지는 느낌은 싫어서 일단 시도해보자고 고른 ..

mono + log 2017.11.21

쉬운 핑계

언제부터일까. 메모가 멈추었다. 머리속에서 꿈틀꿈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온갖 생각의 언어들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냥 바빠 힘들어 괜찮아 그래도 생각중이야 꼭 그래야 할 필욘 없어 라고 갖가지 수려한 합리화의 말들을 늘어놓고 순간 순간 사진 찍어 꾹꾹 저장하기 바빴고 그 순간에도 미쳐 날뛰며 퍼덕이는 나의 말들을 아주 쉽게 음소거 시켜버렸다. 멈춤은 왜 이리 쉬운지 한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어지는 시간들 내가 나에게 말 걸고 조용할 날이 없는 시끄러운 작은 소리들. 아.. 그간 그 소리들에 ㅇ ㅣ끌려 정신없이 내달리다 보니 벌써 해의 반이 지나갔다.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 거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거니? 어떤 것을 하고 싶은 거니? 어떤 것을 꿈꾸고 있니? 그래, 꿈. 그... 꿈... 아직 유..

mono + log 2016.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