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 + log 65

그래, 알아

그녀의 곁에 남편은 있었지만 엄마는 없었다. 어스름한 새벽녘, 진통이 시작되어 병원으로 가는 중이라고 소식을 전했건만. 딸이 사는 도시로 한 걸음에 내달려올 수 없는 먼 고향에 사는 엄마는 그저 마음으로 수천번 수만번 뜨거운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엄마 없이 둘째 아이를 낳던, 조금은 서러웠던 날. 첫 축하 전화는 이제 막 말이 트이기 시작한 29개월 아이였다. 새벽 잠 곤히 달게 자고 있던 큰 아이의 천사같은 얼굴은 바라보고 나왔으려나 진통 간격이 조금씩 좁혀져 오는 그 순간에 물끄러미 아이를 바라보다 볼 한번 매만져보고, 보송보송 솜털이 부드러운 말간 볼에 잘자렴-, 뽀뽀 인사라도 한번 하고 나왔으려나 아니면 급한대로 이모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서둘러 집을 나왔으려나 그리 오래되지 않은 비디오 테잎을 ..

mono + log 2013.11.14

열 아홉살의 디데이

바로 어제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나오는 길목, 고등학교 입구에 걸린 현수막 하나가 눈에 띈다. 수능 고사장 안내 문구가 쓰여져있다. 파란 신호등이 켜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주책인건지 고개를 숙였다. 목을 감싼 머플러 사이사이로 바람이 들어차서인지, 아님 전날 너무 늦게 잠이 들어 눈이 시려서인지,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노래 때문인지. 전날 포스팅하느라 유재하 음악이 트랙리스트를 채우고 있던 터라 때마침 나의 폰에서는 '가리워진 길'이 흐르고 있었다. 내 눈을 쏟아지지 않는 찰랑찰랑 눈물잔으로 만들어버린 운명같은 타이밍은 바로 그 때였다. '그대여 힘이 되 주오/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그대여 길을 터 주오..

mono + log 2013.11.06

내 맘이 시끄럽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그냥 바라보면... 이라는 건 없다. 적어도 언어로 소통하는 인간의 세계에선. 물론, 미운 정 고운 정 다 쌓을만큼 오랜 세월을 겪어 두터워진 시간의 층 만큼 굳이 입술을 보지 않아도 마음으로 눈빛으로 이해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매사가 그럴 수는 없는 법. 그게 리얼리티다. 또한 다 말한다 해서 다 이해되는 것도 아닌 걸. 뱉어진 말을 바라보는 시선, 각도, 마음의 상태, 상황, 의도에 따라 오해가 빚어지기도 하고 층층이 쌓인 꼬여진 오해만큼 풀기 어려운 것도 없다. 그게 리얼한 우리 라이프이기도 하다. 오늘 난, 어떤 커뮤니케이션의 실수를 범했던 것일까. 아니 굳이 실수라고 따옴표 달지 말자. 그저 한번 돌아보자는 것. 토도 달지 말고 해석도 말고 분석도 말고. 행해진 그대로..

mono + log 2013.11.04

11월 1일 이었다.

2013.11.1(금) 날씨 맑음 11월 첫날. 신문이건 방송이건 달력 두 장 밖에 남지 않았다고 떠드는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사실이지만 표현 참 식상하고 진부하다. 뭐 더 새로운 표현은 없었던 걸까. 아이와 함께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다. 아이는 병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의 울음보 터지는 소리를 듣고 불안함을 예견하고 접수 전부터 나가자 애원했다. 난 아이의 겁먹은 울음보다 끝을 모르는 대기행렬에 더 머리가 아팠다. 독감주사에 때를 놓쳤던 일본뇌염 주사까지 2개 한꺼번에 맞고 서럽다 통곡하는 아이에게 의사가 준 비타민 하나를 쥐어주고 꼬옥 안아주었다. 엄마의 품보다 더 큰 위로가 있을까. 아니, 녀석에겐 생각보다 비타민의 위안이 꽤 큰 것 같다. 동생 절친의 아버지가 하늘로 가셨다. 폐암말기 진단을 받..

mono + log 2013.11.02

일기를 쓴다는 것

어린 시절 누구나 그렇듯, 일기쓰기 과제가 꼭 있었다. 사실 말이 일기쓰기이지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의 글로 표현된 사유 자체를 지위와 권력을 가진 이에게 제출하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행위는 아니리라. 하지만 굳이 이렇게 심각하게 해석하지 않아도 일기는 글쓰기라는 작은 생활의 습관을 만들어주는 연습이자 하나의 도구일게다. 개인 취향의 정도차이는 분명 있겠으나 남 앞에서 말로 표현하기를 실로 두려워했던 나로서는 꽤 효과적으로 먹혔던 장치인 것 만은 확실했다. "일기가 좋았어요" 라기 보다는 "쓰는 일이 그리 나쁘진 않았어요" 이 정도의 늬앙스. 그러나 일기쓰기 방학 과제는 "나쁘진 않지만 밀린 일기는 쥐약이었어요"라고 말하겠다. 방학 시작과 함께 첫 며칠은 학교에서 해방되어 맘껏 놀아도 되는 ..

mono + log 2013.11.01

가을 아이

트렌치 코트 입고 낙엽놀이에 심취한 가을 아이 오늘도 얼집에서 친구들과 거닐고 왔단다 하품하고 잠들기 직전 갑자기 천정을 응시하며 조용조용 들릴듯 말듯 읖조린다 가을은 가을은 노란색 나무잎을 보제요 가을은 가을은 빨간색 나무잎을 보제요 아니아니 가을은 파란색 ... 오늘 아침 뿡뿡이에서 나온 동요, 한번 듣고 어찌 기억했을까 낙엽 밟고 뿌리고 갖고 놀기만 하는줄 알았는데 색색의 나뭇잎을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다. 언어발달 포텐 불꽃 터지는 요즘, 기억력도 참으로 신통방통 아이가 부른 동요 찾아보고 외워야지 낼 아침 등원하며 불러줘야겠다 동요 「가을」 가을은 가을은 노란색 은행잎을 보세요 그래그래 가을은 노란색 아주 예쁜 노란색 아니아니 가을은 빨간색 단풍잎을 보세요 그래그래 가을은 빨간색 아주 예쁜 빨간색..

mono + log 2013.11.01

습작의 역습

습작의 역습, 과연 가능할 것인가 짧고 굵게 휘몰아친 광속의 시간 미친 듯 불러오기에 흔쾌히 답해 준 망상을 포함한 그 모든 기억에 감사할 뿐이고 낱낱의 글자들은 내 손을 떠났는데 뒤늦게 서툰 오점들이 보여 부끄러울 뿐이고 그래도 멈추면 안되는거지? 멈춰서면 다시 원점이다 움직이다 마이너스 될 지언정 출발한 이상 쉼표는 찍되 멈추진 말자구 이제 11월이다. 20131101 1:16 am

mono + log 2013.11.01

헛헛한 날에...

어느 블로그에서 본 글. sns상에서 기쁨은 질투가 되고 슬픔은 약점이 된다고. 요거 곱씹을수록 은근 오묘하게 공감된다. 어젠 아끼는 선후배를 만났다. 중2병보다 심각한 요즘 나의 정신적 방황에 대한 카운셀링이 이어졌다. 글래스 와인 세잔을 주문하려던 세 여인은 나의 발제(?)로 와인 한 병을 모두 소진했다. 집에올 무렵 내 가방엔 부시맨 브레드가 2개 씩이나 담겨져있다. 언니는 내게 잔가지를 쳐내고 더 큰 것을 보라 하고. 지금 내가 접하는 여러 통로의 경험치들이 그 큰 일을 하는데 다양한 소스가 될 것이라고. 또 생각나는 대로 부딪혀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동생은, 탐구하고 가르치는게 잘 어울린다며 내 고민을 보며 본인을 되돌아본다고. 난 도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걸까. 내가 잘하는 건 뭘까. 또 하고 ..

mono + log 2013.10.26

흔적

얼마전 알라딘을 찾았다. 두 번째 방문. 숨겨놓은 보물단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지나치면 왠지 서운한 느낌이랄까 일주일에 한번은 꼭 들르게 되는 코스가 되었다. 누군가의 손을 단 한번이라도 거친 몇 권의 책을 참 알뜰히도 담아왔다. 딱 하루 지난 내 생일에 대한 지극히도 약소한 아주 아주 작은 선물. 「완벽한 날들」메리 올리버 「글쓰며 사는 삶」나탈리 골드버그 「그림책 쓰기」 이상희 「동물농장」조지 오웰 지난번 가져온 아이 책이나 이번에 모셔온 내 책이나 (이제 내 책이 되었으니 내 책이 맞다^^) 모두 새 책이나 다름없다. 물론 서점의 새 책 코너 선반에 올려진 블링블링 따끈따끈 매끈매끈 신상과는 조금 다른 구석이 있긴 하지만- 1. 책이 잘 펴진다. 새 책은 표지를 넘길 때부터 종이에서 느껴지는 ..

mono + log 2013.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