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J-Logue 302

일기를 쓴다는 것

어린 시절 누구나 그렇듯, 일기쓰기 과제가 꼭 있었다. 사실 말이 일기쓰기이지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의 글로 표현된 사유 자체를 지위와 권력을 가진 이에게 제출하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행위는 아니리라. 하지만 굳이 이렇게 심각하게 해석하지 않아도 일기는 글쓰기라는 작은 생활의 습관을 만들어주는 연습이자 하나의 도구일게다. 개인 취향의 정도차이는 분명 있겠으나 남 앞에서 말로 표현하기를 실로 두려워했던 나로서는 꽤 효과적으로 먹혔던 장치인 것 만은 확실했다. "일기가 좋았어요" 라기 보다는 "쓰는 일이 그리 나쁘진 않았어요" 이 정도의 늬앙스. 그러나 일기쓰기 방학 과제는 "나쁘진 않지만 밀린 일기는 쥐약이었어요"라고 말하겠다. 방학 시작과 함께 첫 며칠은 학교에서 해방되어 맘껏 놀아도 되는 ..

mono + log 2013.11.01

가을 아이

트렌치 코트 입고 낙엽놀이에 심취한 가을 아이 오늘도 얼집에서 친구들과 거닐고 왔단다 하품하고 잠들기 직전 갑자기 천정을 응시하며 조용조용 들릴듯 말듯 읖조린다 가을은 가을은 노란색 나무잎을 보제요 가을은 가을은 빨간색 나무잎을 보제요 아니아니 가을은 파란색 ... 오늘 아침 뿡뿡이에서 나온 동요, 한번 듣고 어찌 기억했을까 낙엽 밟고 뿌리고 갖고 놀기만 하는줄 알았는데 색색의 나뭇잎을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다. 언어발달 포텐 불꽃 터지는 요즘, 기억력도 참으로 신통방통 아이가 부른 동요 찾아보고 외워야지 낼 아침 등원하며 불러줘야겠다 동요 「가을」 가을은 가을은 노란색 은행잎을 보세요 그래그래 가을은 노란색 아주 예쁜 노란색 아니아니 가을은 빨간색 단풍잎을 보세요 그래그래 가을은 빨간색 아주 예쁜 빨간색..

mono + log 2013.11.01

습작의 역습

습작의 역습, 과연 가능할 것인가 짧고 굵게 휘몰아친 광속의 시간 미친 듯 불러오기에 흔쾌히 답해 준 망상을 포함한 그 모든 기억에 감사할 뿐이고 낱낱의 글자들은 내 손을 떠났는데 뒤늦게 서툰 오점들이 보여 부끄러울 뿐이고 그래도 멈추면 안되는거지? 멈춰서면 다시 원점이다 움직이다 마이너스 될 지언정 출발한 이상 쉼표는 찍되 멈추진 말자구 이제 11월이다. 20131101 1:16 am

mono + log 2013.11.01

Oren Lavie - Her Morning Elegance

싱어송라이터, 극작가, 연극/뮤비 연출 감독에 이르기까지 전방위 멀티플레이어. 이스라엘 태생의 오렌 라비(Oren Lavie)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이 사람의 영역인가 무한궤도를 종횡하는 천재의 날개짓 아티스트란 이런 사람. 아트란 이런 것. 더 말이 필요 없다. Oren Lavie 「 The Opposite Side Of The Sea 」 에 수록된 Her Morning Elegance Sun been down for days A pretty flower in a vase A slipper by the fireplace A cello lying in its case Soon she’s down the stairs Her morning elegance she wears The sound of wat..

music + log 2013.10.31

flower + ing 08. 그대만이

flower 08. - waterfall 맑고 청아한 카라의 품위에 그만 넋을 잃어버렸다 다섯 송이 살포시 잡아보는데도 너무 고혹적이어서 압도당하는 느낌... 카라만의 우아한 선의 흐름을 받쳐주는 줄기가 생명이라 꽃가위로 잘라낼 때 어찌나 맘이 아리던지. 오늘도 waterfall design. 카라의 품격과 아스파라거스의 투명함이 공존한다 "only you" _ 그대만이 꽃이 오래토록 머물렀으면 좋겠다 *오늘 만난 꽃들* 카라 왁스플라워 베리열매 리시얀사스 아스파라거스 줄아이비 20131028 p.s 카라의 꽃말 다섯 송이는, 아무리봐도 당신만한 여자는 없습니다 카라 꽃다발은, 당신은 나의 행운입니다

photo + log 2013.10.30

버리고 비우는 것에 대하여 _ 법정 스님

버리고 비우는 것은 소극적인 삶의 선택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으면 진정 새 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과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준다. - 법정 스님 말씀 중에서... ... 마음 저 멀리 아득히 종이 울린다. 아스라히 잡힐 듯 말듯 사라지지 않고 조금씩 가까워진다 20131028

dia + log 2013.10.26

헛헛한 날에...

어느 블로그에서 본 글. sns상에서 기쁨은 질투가 되고 슬픔은 약점이 된다고. 요거 곱씹을수록 은근 오묘하게 공감된다. 어젠 아끼는 선후배를 만났다. 중2병보다 심각한 요즘 나의 정신적 방황에 대한 카운셀링이 이어졌다. 글래스 와인 세잔을 주문하려던 세 여인은 나의 발제(?)로 와인 한 병을 모두 소진했다. 집에올 무렵 내 가방엔 부시맨 브레드가 2개 씩이나 담겨져있다. 언니는 내게 잔가지를 쳐내고 더 큰 것을 보라 하고. 지금 내가 접하는 여러 통로의 경험치들이 그 큰 일을 하는데 다양한 소스가 될 것이라고. 또 생각나는 대로 부딪혀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동생은, 탐구하고 가르치는게 잘 어울린다며 내 고민을 보며 본인을 되돌아본다고. 난 도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걸까. 내가 잘하는 건 뭘까. 또 하고 ..

mono + log 2013.10.26

prologue of chichi-coco story...

"다들 어이 가찌?" 아침 먹고 어린이집 가는 길 - 놀터 가서 노올꺼야 어린이집 근처 놀이터 갈까 물으니 - 안니야, 여기 놀터에서 노올꺼야 발길을 옮긴 아이, 집 앞 놀이터로 다다다다 뛰어가더니 처음으로 한 말. - 어어~? 다들 어이 가찌? 또래 친구는 없었고 미끄럼틀엔 또르르 이슬이 맺혀있어 타지는 못했지만 빙그르르 돌아가는 기구를 처음 돌려보고는 재미를 붙이고 뒤늦게 도착한 친구를 태우고 내가 내가 할게 하며 꽤 잘 돌려주기도 하고 실컷 뛰놀다 조금 지루해 질 무렵 떨어진 낙엽 밟고 만지작대다 출동!을 외치고 아이 전용 세발 자전거를 타고 어린이집으로 다시 향했다. 어제 아침의 이야기다. 가을 접어들며 언어 폭발기가 무엇인지 제대로 경험하는 나날들. 기차는 치치코코 지하철도 치치코코 치치코코야 ..

chichi-coco story 2013.10.25

상상할 수 있니? _ 메리 올리버

예를 들어, 나무들이 무얼 하는지 번개 폭풍이 휘몰아칠 때나 여름밤 물기를 머금은 어둠 속에서나 겨울의 흰 그물 아래서만이 아니라 지금, 그리고 지금, 그리고 지금-언제든 우리가 보고 있지 않을 때. 물론 넌 상상할 수 없지 나무들은 그저 거기 서서 우리가 보고 있을 때 보이는 모습으로 있다는 걸 물론 넌 상상할 수 없지 나무들은, 조금만 여행하기를 소망하며, 뿌리부터 온몸으로, 춤추지 않는다는 걸, 갑갑해하며 더 나은 경치, 더 많은 햇살, 아니면 더 많은 그늘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물론 넌 상상할 수 없지 나무들은 그저 거기 서서 매 순간을, 새들이나 비어 있음을, 천천히 소리 없이 늘어가는 검은 나이테를, 마음에 바람이 불지 않는 한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음을 사랑한다는 걸, 물론 넌 상상할 수 없..

dia + log 2013.10.24

flower + ing 07. 늦은 고백

flower 07. - round bouquet 송글송글 고운 연보라빛 스토크 라는 꽃을 처음 보았다. 이내 곧 한눈에 반함. 눈부신 꽃들이 많아서인지 돋보이고 싶은 욕망에 꽃 줄기가 손에 착착 감기지 않는다. 사선으로 차곡차곡 얹어가며 한 움큼 잡혀질 무렵까지 느린 거북이 걸음 남들 뚝딱 해내고 포장까지 마칠 시간도 내겐 그저 유유히 슬로우 모션 꽃을 만지며 말 많고 시끄러운 작은 목소리 다스리기 참 쉽지 않다. 집에 와서 결국 해체하고 저녁 늦게 다시 작업. 과욕 비교 따위 내려놓고 그저 내 속도로 정주행만이 답인 것을... 어쨌거나 두 번째 가을꽃다발 한아름. "늦은 고백" - 걸음이 느린 세 번째 데이트에서 *오늘 만난 꽃들* 다알리아 장미 스토크 천일홍 과꽃 잎안개 홍죽 20131022

photo + log 2013.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