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 + log 7

집 나간 두루말이 휴지

식탁 위에서 두루말이 휴지를 떨어뜨린 꼬망. 휴지가 떼굴떼굴 굴러가자마자 후루루 흰 날개를 펼친다. 꼬망은 손가락을 뻗어 휴지 끝을 잡아보려 하지만 빗장 풀린 휴지의 흰 날개는 끝도 없이 주룩 주룩 키만 커진다. 하염없이 키가 커지는 휴지를 보며 꼬망이 하는 말, "엄마! 휴지가 자꾸 집을 나가려고 해." #어느 날, 네 살 꼬망의 어록.

dia + log 2018.07.10

마음의 하트와 정비소

​ 그림_ 녀석의 마음 속엔 누가 살고 있을까. - 엄마와 별, 지구본, 토성, 달, 별똥별, 기사와 성 By Hayoon "마음의 하트가 깨져버리는거야. " 저녁을 먹던 아이가 난데없이 툭 내뱉는다. 밥을 오물거리며 무슨 공상에 빠졌던 것일까. 그 말이 튀어나오게 된 연유도 궁금하고 귀를 통해 선명히 들려오는 음절의 단위들이 꼬물꼬물거리며 무언가 말을 건네는 것 같아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졌다. - 마음의 하트가 왜 깨져? "응~ 화가 나면, 버럭이가 막 움직이거든. 그 마음의 하트가 깨진 걸 고치려면 마음의 하트 정비소에 가야해 그래야 고칠 수가 있어." (아이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본 뒤로 여러 감정 캐릭터를 자주 떠올리고 실제 상황에 여럿 대입시켜보곤 했다. 고백하자면, 집에서 '버럭이..

dia + log 2016.04.15

하늘 _ 장옥관

하늘 풀밭 위에 누워서 두 발로 자전거를 탄다 폐달을 밟던 맨발이 태양에 닿는다 - 앗, 뜨거워! 땅에 머리 대고 하늘을 보니 먼 산의 능선이 발목에 와 걸린다 - 그런데, 하늘은 어디서부터 하늘이지? 누워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 우리는 이미 하늘에 담겨 살고 있었구나 「 문학동네 동시집 11 - 내 배꼽을 만져보았다 _ 장옥관 시, 이자용 그림」중에서 -----------------------------------------------------------------------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을까 타인에게도 바로 옆 사람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가장 솔직하겠다던 이 공간에서조차 재고 또 재고 있다. 하늘에 담겨 살고 있었으면서 이미 다 보여주고 살았으면서 하늘은 벌써 다 아는 게..

dia + log 2013.11.04

버리고 비우는 것에 대하여 _ 법정 스님

버리고 비우는 것은 소극적인 삶의 선택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으면 진정 새 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과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준다. - 법정 스님 말씀 중에서... ... 마음 저 멀리 아득히 종이 울린다. 아스라히 잡힐 듯 말듯 사라지지 않고 조금씩 가까워진다 20131028

dia + log 2013.10.26

상상할 수 있니? _ 메리 올리버

예를 들어, 나무들이 무얼 하는지 번개 폭풍이 휘몰아칠 때나 여름밤 물기를 머금은 어둠 속에서나 겨울의 흰 그물 아래서만이 아니라 지금, 그리고 지금, 그리고 지금-언제든 우리가 보고 있지 않을 때. 물론 넌 상상할 수 없지 나무들은 그저 거기 서서 우리가 보고 있을 때 보이는 모습으로 있다는 걸 물론 넌 상상할 수 없지 나무들은, 조금만 여행하기를 소망하며, 뿌리부터 온몸으로, 춤추지 않는다는 걸, 갑갑해하며 더 나은 경치, 더 많은 햇살, 아니면 더 많은 그늘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물론 넌 상상할 수 없지 나무들은 그저 거기 서서 매 순간을, 새들이나 비어 있음을, 천천히 소리 없이 늘어가는 검은 나이테를, 마음에 바람이 불지 않는 한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음을 사랑한다는 걸, 물론 넌 상상할 수 없..

dia + log 2013.10.24

시학 _ 루이스 보르헤스

시간과 물결의 강을 주시하며 시간이 또 다른 강임을 상기하는 것. 우리들도 강처럼 스러지리라는 것과 얼굴들이 물결처럼 스쳐감을 깨닫는 것. 불면은 꿈꾸지 않기를 꿈꾸는 또다른 꿈임을, 우리네 육신이 저어하는 죽음은 꿈이라 칭하는 매일 밤의 죽음임을 체득하는 것. 중생의 나날과 세월의 표상을 모면 혹은 모일에서 통찰해 내는 것. 세월의 전횡을 음악 속삭임 상징으로 바꾸는 것 죽음에서 꿈을 보는 것 낙조에서 서글픈 황금을 보는 것. 가련한 불멸의 시는 그러한 것 시는 회귀하나니, 여명과 일몰처럼 이따금 오후에 한 얼굴이 거울 깊숙이서 우리를 응시하네. 예술은 우리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하네 경이에 지친 율리시즈는 멀리 겸허한 초록의 이타케가 보였을 때 애정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 예술은 경이가 아니라..

dia + log 2013.10.22

톨스토이 세 가지 질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바로 옆에 있는 사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善)을 행하는 것이다. - 톨스토이 에서... #1.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과거 어느 날이었다. 열두시간 진통 끝에 하윤을 낳았던 날. 그 전이라면 처음 임신한걸 알았던 날. 또 그 전이라면 한편의 공연같았던 결혼식. 그보다 전이라면 첫 입사일. 그 전이라면 첨 영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 날.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만남. 대학 입학일. 수능일. 고등학교 배정받은 날. 연합고사 본 날. .... 내가 태어난 날. 수많은 나날 중 내 기억에 남은거라곤 단편적인 조각에 ..

dia + log 2013.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