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 + log 65

지혜롭고 슬기로운 물생활이 필요해

출근과 등교로 분주했던 아침이 한 템포 느리게 숨을 고르고, 코로나 여파로 어린이집에 못 가고 가정보육 중인 둘째와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항 쪽에서 물이 흐르는 듯한 여린 소리가 들렸다. 평소처럼 여과기에서 나는 소리겠지 싶어 가벼이 넘기곤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러고 몇 분이 지났을까. 종합장에 색칠을 하다 말고 둘째가 “엄마! 여기 좀 봐! 여기! 어항! 물!” 하고 외쳤다. 아이가 부르는 쪽으로 가 보니 어항 오른쪽 귀퉁이에서 물이 모서리 선을 타고 졸졸졸 흘러내리고 있는 게 아닌가. 물은 바닥으로 떨어져 이미 흥건해졌고, 고인 물이 똘똘 뭉쳐 거실 바닥을 지나 패브릭 소파 쪽으로 흐르고 있던 중이었다. 몇 초만 더 지났더라면 패브릭 소파는 신나게 물을 빨아들이고 있었으리라. 상상..

mono + log 2020.12.21

가을엔 호호 불어 티타임을...

- 작은 찻잔은 언제나 나보다 크니까요. 코로나 블루 탓에 모두가 정신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와중에도 요즘 체감하는 단 하나의 기쁨을 찾자면, 바로 하늘을 보는 일이다. 계절의 흐름 앞에 바람의 결도, 하늘빛도, 구름의 얼굴도 매 순간마다 달라진 가을이니까. 절로 감탄하는 순간을 담으려고 손엔 늘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찰나의 신비로움이 작은 프레임 안에 온전히 들어올 리 없지만 자연이 내어주는 그 품을 하늘 빛깔과 구름무늬로 아주 잠시라도 기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하면서도 찬 공기에 몸이 부르르 떨리곤 한다. 얼음 들어간 시원한 커피와는 이미 안녕을 고했고, 아직까지 여름옷을 입고는 있지만 이따금씩 카디건을 꺼내 어깨에 걸치는 일이 자연스러워진 요 며칠의 풍경. 아..

mono + log 2020.09.22

한 사람의 손글씨가 주는 모든 것

단 하나, 단 한 번의 진심이 여기에... 새벽 두 시가 훌쩍 넘은 시간. 책장을 훑어보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책 한 권. 표지를 넘기자마자 ‘툭!’ 하고 바닥으로 무언가 떨어진다. 선명하고 강렬한 빨간색 편지 봉투다. 손에 집어 들고 편지봉투를 만져보니 봉투 크기보다 작은 크기로 접힌 종이의 질감과 두께감이 느껴진다. 그냥 비어진 봉투가 아닌 것. 누가 보낸 편지였을까. 새벽, 두 시의 감성인지 몰라도 혹시라도 열지 말아야 하는 판도라의 상자면 어쩌지 망설이던 사이에 주저하는 마음보다 먼저 손이 움직이고 있음을 본다. * 고민 한 톨 없이 본능적인 감각이 직진한다. 편지 봉투를 열고, 반듯하게 접혀있는 편지 종이를 펼친다. 감정 가는 대로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는 손글씨 보내는 이의 이름도 없는 편지. ..

mono + log 2020.09.08

기억의 지도 속 너에게 간다

올드 타운 걸, 뉴타운에서 옛. 집. 찾.기 기억 속 지도를 펼쳐야 찾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 나의 유년시절 전부를 품은 그 동네, 지금은 새로운 동네가 지어져 사라지고 없는 곳. 새 동네는 말 그대로 ‘새롭게’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이름을 바꾸면 새 이름을 계속 불러줘야 차츰 익숙해져 운도 새롭게 트인다고 하던데 난 그 새로운 이름이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건 지하철 역명뿐, 어릴 적 한 동네 살던 지인을 만나러 어쩌다 한 번씩 갈 때마다 마주하는 풍경에서 이질감을 느낀다. 옛정을 추억하려던 기억 세포들마저 차가운 도시가 뿜어대는 아우라에 기가 팍 죽어버리는 기분이랄까. 빽빽이 들어찬 아파트 숲과 번쩍이는 외관의 쇼핑몰 앞에서 30년도 훌쩍 지나버린 시절 일기를 복기하..

mono + log 2020.08.28

어느덧 10년

어제는 엄마께서 거의 10년을 근무한 직장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하윤이 태어나고 1년을 봐주신 뒤 준비해서 들어간 직장이다. 평생 자영업만 하시다 전혀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올해로 열 살이 된 하윤 나이만큼 경력을 일구어 내셨다. 당시 나는 아이 돌을 치르고 나서 일을 계속하고 싶어 엄마 눈치를 살피곤 했는데 엄마의 선긋기는 확실했다.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 할머니가 키우면 모지리 된다.” 조부모 양육에 대한 비하 발언도 아니고, 엄마께서 자신없다 말하던 것도 아니었다. 부모로서의 책임을 에둘러 말씀하신 것이다. 선을 넘으려던 나는 머쓱해짐과 동시에 엄마의 의지가 확고함을 알고 인정했다. 엄마에게도 소셜 라이프가 필요하다는 것을. 몸이 병들고 기억마저 흐릿해진 어른을 돌보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엄..

mono + log 2020.07.01

안녕, 6월...

두 아이가 등교, 등원을 마친 오늘 아침. 정확히 네 달만에 맞는 나홀로 타임은 어딘가 어색하기만 하고. 점심 지나면 1호님 복귀하니 여유도 잠시다. 커피를 내려 얼음 가득 넣은 잔에 담아 들고 거실 책상 앞에 철퍼덕 앉고는 며칠 고민하던 꽃 예약 주문을 마쳤다. 거의 10년을 일한 직장에서 아름다운 이별을 앞둔 엄마께 드릴 선물이다. 퇴근 시간 즈음엔 장맛비가 쏟아질 것 같고 편히 집에서 받으시는게 좋을 듯 하여 내일 아침으로 하루 늦추고, 꽃집 사장님께 메시지 픽도 함께 부탁드렸다. 너무도 오랜만에 애들 책 아닌 내 책(!)을 꺼내들어 책장을 넘기는데 낱낱의 글자들이 공중부양하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머리속에 딴 생각들만 자꾸 차올라 결국 책장을 덮고 말았다. 노트를 펼쳐보니 필사도 3개월 전을 끝으..

mono + log 2020.06.30

어느새 초록초록

마상공원 작은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느새 이리 볕이 따뜻한 봄이 온걸까. 햇살이 좋은 아이들이 벌써 집이냐며 남편이 운전해 타고 온 차에서 내리며 적잖이 아쉬워한다. 공원 한 바퀴 돌까? 말 한마디에 금세 총총 달리는 두 녀석. 초록이 새싹들도 고개를 많이 내밀었다. 집앞 벚꽃도 수줍게 꽃망울을 터뜨렸다. 며칠 전만해도 꽃샘으로 세찬 바람이 불었는데 꿋꿋하게 시간을 견뎌냈다. 다행히도 단지 내 공원은 주말에 비해 북적이지 않는다. 아이들 마스크를 살짝 턱 밑으로 내려준다. 지금 이 시간만이라도 햇살 듬뿍, 시원한 공기 마음껏 먹으라고. 노오란 산수유꽃도 반짝반짝 빛난다. 바이러스가 장악한 침묵의 봄. 콧바람 잠시, 햇살 한 줌짜리 산책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날. 이제 곧 있으면 4..

mono + log 2020.03.23

미국 뉴욕 독립서점, 스트랜드 “잠시 문을 닫습니다”

뉴욕의 독립서점 스트랜드 피드를 볼 때면 생각나는 친구에게 최신 글을 공유했다. 3/16일을 기점으로 문을 닫는다는 소식.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권고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서다. 내용상 언어만 달라졌을 뿐. 2~3주 우리가 겪었던 상황과 다르지 않다. 인스타로 소식을 받고 있는 책방 주인님들이 남긴 글의 맥락과도 비슷하다. 동료, 고객, 공동체의 안위를 살피고 걱정하는 마음과 함께 이후의 상황에 대해 업데이트를 약속하는 글이다. 조회수도 호응하는 댓글도 상당하다. 최소 8주 권고지만, 첫 2주가 한 달, 두 달 되고 이러다 내년에 보겠다는 댓글에 스트랜드 서점은 이렇게 답했다. 경제 대공황, 전쟁, 911테러, 수차례 경제 위기에도 스트랜드 서점은 살아남았다고. 꼭 돌아올테니 걱정 ..

mono + log 2020.03.17

11월, 요즘 나

1. 매일 매일 브런치 brunch.co.kr/@hyejung 매거진 2개 매일 한 꼭지씩 연재중. [단 한 번, 네버랜드] : 아이들의 반짝이는 말말말. 담고 싶은 이야기 원고로 만들어둔 글을 다듬어 한 개씩 공개 [그림책 한 조각] : all about my favorite picture book 깜냥도 안되면서, 그냥, 내가 좋아서 쓰는 그림책 일기 그림도 그리고, 글도 끄적이고. 써 둔 초고를 바탕으로 덧붙이기도, 빼기도 하는 내마음대로 그림책 + 시절일기 컨셉. 2. 매주 하루 리딩맘 3. 요즘 잠자기 전 아이들에게 낭독 중. : 한 챕터씩 읽어주니 한 주, 두 주가 지나가자 글책 분량 반을 넘어가는 게 신기. 조금씩 켜켜이 쌓인 시간이 무섭긴 무섭다. 4. 2주에 한번 그림책 모임 5. 매주 ..

mono + log 2019.11.15

사라져가는 것들을 붙잡는 시간

* ⠀ 며칠 전 다섯 살 꼬망을 붙잡고 말했다. “내년에도 다섯 살 하자, 응?” 아이, “아 왜~ 싫어... 여섯 살 할거야!” 그러더니 다음 날 “엄마! 나 열 살 할래 응?!” 형아보다 한 번만이라도 형아가 되고 싶은 아우의 간절한 바람이 담긴 말이다. ⠀ 샴푸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홉 살 큰 아이와 다르게 둘째한테선 아직 머리에서, 손에서, 발에서 아기 냄새가 난다. 깊이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자꾸 큼큼- 거리는 밤. 지나 온 시간만큼, 아니 그 보다 더 빨리 자라나는 아이의 밤과 낮. 힘들다고 여겨졌던 때를 돌이켜보다 문득 아릿해져 온다. * ⠀ ​ 나, 사랑하는 마음, 지키지 못한 다짐과 약속, 안전한 선택 속에 방황하는 꿈, 총명함, 다신 돌아오지 않는 시간, 애쓰는 마음, ..

mono + log 2019.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