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 log 25

잔나비 _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봄에 받아놓았던 책 소개 잡지를 오늘에서야 종이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읽었다. 이따금씩 연필로 밑줄을 그어 가면서... 아, 그래 이 맛이었구나. 연필 끝이 종이 위에 맞닿아 내는 회색 소리를 듣는 맛. 언어 한자 한자 담고 싶어 줄이라도 그어보며 글맛을 기억하려는 최소한의 움직임이 주는 즐거움. 한동안 도서관에서 잠시 빌려온 책을 보느라 밑줄 그어가며 읽는 맛을 새까맣게 잊었나 보다. 아무렇게나 책에 끼적일 수 있는 자유는 온전히 내가 소유한 책으로만 누릴 수 있음을 다시 상기시키며... 친정에 묵혀둔 책장과 그 안을 빼곡히 채운 책들도 집으로 가져와서 한 짐인데, 갖고 싶은 책이 자꾸만 늘어만 간다. 잡지에 새로 소개된 책 중에 만나고 싶은 책이 있는가 하면, 내 소유의 책들 중에 아직 끝을 보지 ..

music + log 2018.09.04

박효신 _ 야생화

"요즘 음악 뭐 들어?"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묻는다면, 태양의 후예 주옥같은 두 주인공의 얼굴 너머로 거미의 you're my everything도 들리고 요새 가장 핫했던 프로듀스101의 pick me 도 찾아들었고 음원 사이트 POP 상위 리스트도 들었지만 내 폰은 2주째 오로지 이 한곡과 애정 중이다. 박효신의 야생화.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작은 아이가 낮잠 자는 동안 허락된 쉬는 시간, 쪽잠처럼 감질맛나게 내게 주어지는 순간 순간마다 이 곡을 들으면 지평선 너머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회색 지대 위로 순간이동을 한다. 거기엔 작고 가늘고 여리디 여린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흐느적 거리는 꽃이 있다.내 감정의 기복따위에는 상관없이 그저 조용히 제게 주어진 삶의 무게..

music + log 2016.03.28

Let It Go from Disney's Frozen

울집 네 살 꼬마 하윤도 홀릭 중인 OST의 백미 "Let It Go" 들은 대로 노래를 부르고 디테일하게 연기까지 하는 녀석 따라서 어느새 나도 남편도 한 마음 한 목소리로 열창 중이다. 최근엔 라디오 방송에서 너무 많이 플레이 되어서 금지곡이 되었다고도 하고 애니메이션 천만 관객을 넘어서며 그 열풍은 계속되고 있다. 가창력에 있어서 난다 긴다 하는 가수들 사이에서는 필수적으로 소화해야 할 MUST SING ITEM이 되었고, 유튜브엔 전 세계적으로 커버곡들이 업데이트되고 있다. 은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 주제가상의 영광을 안으며 애니메이션 최다부문 2관왕을 기록했다. 제71회 골든글로브, 제41회 애니상에 이어 이번 아카데미까지 휩쓸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나와 하윤은 극장..

music + log 2014.02.25

말하는대로 _ 유재석 & 이적

감동은 있었지만 내게 감흥은 별로 크지 않았던 노래인데 요 며칠동안 계속 되뇌이고 있다. 아마 처음 이 노래를 접했을 땐 여느 '자기계발서적'을 볼 때 들었던 느낌처럼 나와는 상관없는 누군가의 성공스토리 라고 단정지었기에 나의 이야기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단순히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서 혹은 이래야 좋은 생각이니까 혹은 역시 긍정의 힘이라니까 ... 같은 남의 말을 빌려 말하지 않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내 삶에서 내 입으로 내 말로 자연스럽게 말하는대로 이끌어가는 나, 나의 삶이 될 수 있기를. 행동하는 존재로 서 있을 수 있기를. 말하는대로 노래: 유재석 이적 작사 작곡: 이적 나 스무살 적에 하루를 견디고 불안한 잠자리에 누울 때면 내일 뭐하지 내일 뭐하지 걱정을 했지 두 눈을 감아도 통 잠..

music + log 2014.01.10

Lisa Ono_White Christmas

아이와 함께 맞는 세 번째 크리스마스를 2주 앞두고... 스윗홈 캐럴모드는 이미 한 달 전부터 가동하고 있었지만 12월, 그것도 점점 그 날이 가까워질수록 설렘 충만 백퍼 그 이상... 결혼 후 첫 해엔 공연일 하며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연말엔 무작정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떠나 새해를 맞았다. 내 평생, 다시는 이런 지름신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 첫 해엔 눈이 퐁퐁 내리는 이브날 응급실을 달려가야했다. 두 번째 해엔 세 식구 고속터미널로 밤나들이 갔다가 함박눈이 쏟아지는 터에 강남역 한복판에서 꼼짝없이 한 시간여를 차안에서 있어야 했다. 올해는 또 어떤 에피소드가 기다리고 있을까. 찻길 위험해지고 빙판길 걸음 두렵지만 난 여전히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한다. 추운 날씨는 끔찍히도 싫지만 온 ..

music + log 2013.12.10

윤종신 _ 우둔남녀 (with 박정현)

서관 413호 제작부 요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던문제의 그 트랙리스트.윤종신과 박정현이 함께 부른 '우둔남녀'1999년 1월 윤종신 7집 후반 (後半)에 수록된 곡. 그 해 우리는 대학에 입학했고대학방송국 수습PD 모집 광고를 보고 문을 두드렸다.요원이란 수습딱지를 붙이고 한 배를 타게 된 우리는 수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을 이 곳에서 보냈다.  누가 시작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누군가가 이 CD를 플레이어 위에 올려 놓았고볼륨을 최대치로 올려놓고 지겨울 만큼 돌리고 돌려 들었다. 오늘 아침.10년만에 이 노래를 듣고 울컥했다는 친구 문자를 받았다.찾아보니 네이버 뮤직에선 월간 윤종신 9월호로 제작된 새 음원만이 나오고99년 버전은 서비스가 안되고 있다.급한대로 유튜브에서 찾아봤다.   윤종신 7집..

music + log 2013.11.27

Pablo Casals _ Bach Cello Suite No. 1 in G Major, BWV 1007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 1번)

올 가을의 끝은 왜 이렇게 헛헛한지 겨울이 너무 성큼 다가온 탓일까 아직 준비가 덜 된 몸은 바로 표시가 난다. 아이 코 끝엔 옅은 이슬이 맺히고 뼛 속 깊이 훅 들어오는 찬 바람이 앙칼지고 매섭다. 초가을의 설렘은 간 데 없고 늦가을의 엔딩은 왠지 쓸쓸하기만 하다. 폭풍의 언덕 위에 부는 바람이 그랬을까. 먹구름 가득 이고서 심술 가득 불어대는 먹먹한 바람은 조금의 여유도 주지도 않고 눈치없이 살갗을 파고든다. 월동 준비랄 것도 할 것 없이 세 계절 동안 옷 장 깊숙한 곳에서 조용히 잠자던 패딩 점퍼를 꺼내고 얼얼한 손 끝을 감싸 안아 줄 가죽 장갑도 꺼내고 가을 내내 멋부렸던 스카프는 안녕, 포근한 캐시미어 머플러를 두른다. 크리스마스가 만 한달 남았으니 이제 캐롤을 좀 들어볼까 하다가 이런 날씨 이..

music + log 2013.11.26

성시경(gt.강승원) _ 태양계

성시경의 '태양계'는 7집 음반「처음」의 수록곡으로 강승원이 작사 작곡 편곡했다. 작곡가 승원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원작자이기도 하고 , 에 이어 현재 이기도 하다. 사실 첫 시작은, 노영심이 강추로 음악감독을 맡게되면서 부터인데 그 마지막 방송에 게스트로 나온 김광석이 강승원이 작곡한 '서른 즈음에'를 듣고 그 노래를 달라해서 주었던 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된 비하인드 스토리. 나즈막한 기타 선율과 자못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되는 가사가 참 사람과 많이 닮아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숨은 실력가들을 무대 위에 올리고 다양한 음악이라는 이야기 안에서 한가지 고유한 색깔을 유지하고 조율하고 그러한 어우러짐을 즐기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생각이 든다. 이 곡 '태양계' 말고도 '처..

music + log 2013.11.11

유재하 _ 가리워진 길 ...11월이 외롭지 않은 이유

스물 다섯이라는 꽃다운 청춘 그 정점에서 불의의 사고로 하늘의 별이 된 유재하. 짧은 그의 생만큼 세월이 참으로 덧없이 흘렀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본다. 흐릿한 기억 너머 나 열 여섯인가 일곱인가에 「유재하를 추모하는 앨범 1987 - 다시 돌아온 그대를 위해」테잎을 사서 처음 듣던 날 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그의 시를 나지막히 읊던 그 노래들... 11월이 외롭거나 쓸쓸하지만은 않은 이유는 아마도 남겨진 그 음악들이 있기 때문이리라. 어렸을 땐 잘 몰랐던 혹은 다르게 느꼈던 곡과 가사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게 다가오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엔 음악만 들여다보다 지금은 그의 음악에 비추어 나를 점점 깊게 들여다 보게 된다. 나의 10대에 처음 듣기 시작해 20대를 보내는 ..

music + log 2013.11.04

Oren Lavie - Her Morning Elegance

싱어송라이터, 극작가, 연극/뮤비 연출 감독에 이르기까지 전방위 멀티플레이어. 이스라엘 태생의 오렌 라비(Oren Lavie)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이 사람의 영역인가 무한궤도를 종횡하는 천재의 날개짓 아티스트란 이런 사람. 아트란 이런 것. 더 말이 필요 없다. Oren Lavie 「 The Opposite Side Of The Sea 」 에 수록된 Her Morning Elegance Sun been down for days A pretty flower in a vase A slipper by the fireplace A cello lying in its case Soon she’s down the stairs Her morning elegance she wears The sound of wat..

music + log 2013.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