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17

그림책 - 겨울을 견뎌낸 나무

겨울을 견뎌낸 나무 the tree that survived the winter 글 메리페이 (1989) Mary Fahy 그림 에밀안토누치 Emil Antonucci 옮김 오현미 펴낸곳 비아토르 (2019) “내 이름은 믿음이야.” 무수한 별들이 밤의 어둠 사이로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며 선포했습니다. 뉴스와 적당히 거리두고 있는 요 며칠. 모두가 감내하고 인내하고 있는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지금이 정점인지 끝은 있는 건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막막한 어둠의 장막이 드리우고 있는 현실. 그래도 하루하루 희망이라는 걸 꿈꿔본다. 좀 더 나아지겠지,..

book. paper + log 2020.12.28

아이처럼, 지난 날의 그때처럼

작자만 큰 세상, 그림책 유년시절, 나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는 상가 뒤편에 자리한 너른 주차장 공터가 전부였다. 삼삼오오 모이면 고무줄넘기를 하고 뛰어놀고, 붉은 벽돌을 갈고 갈아서 소꿉놀이에 고춧가루 양념으로 쓰고, 어느 날엔 누군가 교회에서 연극이란 걸 배워 와 한 사람씩 역할을 맡아 아무 말 대잔치에 버금가는 상황극을 벌이다가 어둑어둑 해가 지면 엄마의 부름에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빨간 대야 한가득 담긴 미지근한 물에 손을 담가 비누로 빡빡 씻은 물을 보면 그날 하루 얼마나 땀을 빼고 영혼을 다 바쳐 놀았는지 알 수 있었다. 심심한 게 뭔지 몰랐던 시절의 일이다. 콘크리트 맨땅의 거친 흙바닥 한쪽 구석에는 봄에 씨앗을 뿌린 자리에 봉숭아꽃, 붓꽃이 자라나 여름엔 앙증맞은 손톱에 ..

book. paper + log 2020.11.02

[세상의 많고 많은 초록들] all about green things

[세상의 많고 많은 초록들] 로라 바카로 시거 글 그림 | 김은영 옮김 다산기획(2014) 숲 속엔 울창한 초록 바닷속 깊푸른 초록 라임은 싱그런 초록 녹두는 누릇한 초록 정글은 거뭇한 초록 이구아나 얼룩덜룩 초록 고사리 달빛 어린 초록 풀 먹는 얼룩말 초록 무늬 갖고파 꽃잎 위 느릿느릿 초록 애벌레 빛바랜 초록 반딧불이 반짝 초록 나무 그늘 초록 그늘 세상 많고 많은 초록들 가을 오면 그만 멈춰! 흰 눈에 덮인 초록 우리 곁에 언제나 초록은 영원해

book. paper + log 2020.03.12

어른이들을 위한 인생 그림책 [두 갈래 길]

작가의 서문부터 푹 빠져드는 책들이 있다. 마치 영화 속 인트로 한 장면처럼, 독자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한쪽 어깨에 손을 올리고 토닥토닥이면서 함께 걸어가 보지 않겠냐고, 같이 가자고 이끌어 주는 다정한 손짓에 토 달지 않고 자연스레 동행하게 되는 책. 혹은 작가가 애정 해마지않는 특별한 누군가에게 남기는 헌사를 만날 때면 ‘specially thanks to’에 등장하는 그 사람이 부러웠다가 이내 작품을 선물로 남기는 작가라는 글 쓰는 사람 자체가 부러워지기도 한다. 에디스 네스빗의 서문이 그러했다. TO JOHN BLAND My Lamb, you are so very small, You have not learned to read at all; Yet never a printed book withst..

book. paper + log 2019.12.10

[세상끝에 있는 너에게] 가고 말거야!

​ ​나의 새에게, 햇살이 따뜻한 남쪽 섬에는 잘 도착했니? 벌써 네가 보고 싶구나. 너와 함께 보낸 지난여름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하지만 넌 겨울이 오기 전에 서둘러 떠나 버렸지. 왜 우리는 해마다 헤어져야 할까? ​이번 주가 지나면 겨울이 닥칠 거야. 모두들 굴이나 둥지, 땅굴에 밤과 도토리를 착착 쌓아 놓고 있어. 겨울잠을 자려면 나도 슬슬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럴 마음이 통 생기지를 않네. 난 너한테 날마다 편지를 쓰기로 했어. 그러면 꼭 네가 곁에 있는 것 같으니까. 바람이 내 편지를 날라다 줄 거야. 잘 지내, 나의 새야. 너의 곰이 **********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고티에 다비드. 마리 꼬드리 쓰고 그림. 이경혜 옮김. 키다리 출판사(2018) ********** to. so..

book. paper + log 2019.12.02

[선인장 호텔]

​ 2학기 리딩맘 두 번째 시간, 선인장호텔 브렌다 기버슨 글 | 메건 로이드 그림 | 이명희 옮김 마루벌 (1995) ⠀ 볼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그림들. 새롭게 읽히는 문장. 세밀하고 세심한 터치와 부드럽고 따스한 색감, 시간의 흐름을 차분히 침착하게 쓰다듬어주는 글의 호흡이 너무 좋다. 읽을수록, 읽을 때마다 감동... 상상도 안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키가 자라나는 선인장을 볼 때마다 아이들 눈도 휘둥그레. 탄성을 내지르고 집중하는 눈빛이 참 예뻤다. ​ *책 속에서 * 오십 년이 지났습니다. 선인장은 엄마 키 두 배만큼 자라 늙은 팔로버드 나무 옆에 곧고 늠름하게 섰지요. 그리고 태어난 뒤 처음으로 하얗고 노란 꽃을 꼭대기에 피웠답니다. 그때부터 선인장은 해마다 봄이면 꽃을 피웠습니다. 그것도 ..

book. paper + log 2019.10.02

[짝꿍] [위를 봐요]

​​ 지난달 스승의 날, 학교 리딩맘 시간에 [고맙습니다 선생님] 책을 들고 갔다가 진땀을 뺀 적이 있다. 그간 몇몇 속닥거리는 친구들은 있었지만, 그날따라 더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교실. 목소리를 더 크게 내 봤지만 글밥도 꽤 많아 읽는 나도 집중이 어렵고, 듣고 싶어하던 아이들도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샘 목소리가 안 들린다며 짜증을 냈다. 완독하고 끝이 났지만 귓등 아래로 땀에 흠뻑 젖은 채 쭈그리가 되어 교실을 나섰다. ⠀⠀⠀ 분명 좋은(!!) 책이었지만, 그날 나의 픽은 실패였다. 😰😭😪😪 그러고 나서 책 선정이 너무 어려워졌다. 책읽어주기 1년반만에 닥친 위기! 아예 그냥 재미, 유머 위주의 책만 가져갈까 고민되고, 아이들이 그 시간을 싫어하면 어쩌나 두려워 졌다. 그리고 책을 고르며 자주 멈칫..

book. paper + log 2019.06.05

어린이 밥 먹는 인문학 : 유준재 작가만남

어린이를 위한, 밥 먹는 인문학. @호수공원작은도서관 도서관에서 밥먹고 싶다던 아들. 오늘이 그날이다. 고기 야채 다져 볶아 실한 유부초밥 도시락 싸들고 호수공원 내 작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파란파도] [균형] 그림책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이야기. 오늘은 엄마없이 동네 형아랑 자릴 잡았다. 파란색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더니 질문도 하고, 도시락도 먹고 도란도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파란말을 찍은 종이 위에 그림도 그리고 사인도 받고. ​​ * / 사람들은 하늘을 보며, 들판을 보며, 강물을 보며 파란파도라는 이름을 떠올렸어. 강물이 얼어 버릴 만큼 추운 겨울이면 두런두런 파란파도 이야기를 나눴어. 하늘보다 더 푸르던 파란 털과 힘차게 땅을 구르던 굳센 다리와 얼음을 깨고 강물을 가르던 모습까지. 평..

book. paper + log 2019.01.22

[곰씨의 의자] 따로, 또 같이 걸어볼까요.

​ 혼자 사색하기를 좋아하고 조용조용 가만가만 자기만의 시간을 충분히 즐길 줄 아는 곰. 그런 곰에게 처음부터 마음이 갔다. 차를 끓이고 책을 준비하고 자신의 의자에 앉아서 누리는 면면의 모든 과정이 일상의 습관으로 자리한 의식처럼 여겨진다. '이 시간만은 철저히 내가 주인이 되는 시간이야..' 그렇다고 처음부터 남에게 선을 긋는 차가운 인상은 아니다.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와 어깨가 축 쳐진 토끼에게 휴식을 먼저 권하고 탐험담을 늘어놓는 토끼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곰씨다. 탐험가 토끼에게 여자친구가 생겨 둘이 결혼할 때도 마음에서 우러나도록 축복을 다 해주는 곰씨. 그런 곰씨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토끼부부의 아기 토끼들이 줄줄이 태어나 곰씨의 자유시간을 점점 빼앗기 때문. 이제 혼..

book. paper + log 2018.12.16

[엄마는 해녀입니다] 오늘 하루도 딱 나의 숨만큼만...

[엄마는 해녀입니다] ​ 글 고희영 | 그림 에바 알머슨 | 번역 안현모 난다(2017) ​ "우리들은 그렇단다. 내내 숨을 참았다가 물 밖으로 나와 숨을 몰아 내쉬지. 돌고래처럼 말이야. 호오이~ 호오이~ 그럼 이런 소리가 난단다. 그걸 숨비소리라고 한단다." 호오이~ 호오이~ 숨비소리 호오이~ 호오이~ 엄마가 살아 있다는 소리 _ [엄마는 해녀입니다] 중에서... * '엄마는 해녀입니다. 전복, 물고기, 미역, 문어, 조개처럼 바다의 보물을 캐는 사람입니다.' 이 책을 읽어준 1학년 반 친구의 글이다. 책 어느 구절에도 '보물'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데 책의 느낌을 이렇게 표현해서 더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표지 속 엄마를 만나고, 책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지..

book. paper + log 2018.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