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날들 4

아무 조건 없이 내가 되는 시간

“소소하고 사사로운 시간과 기억을 수집합니다” 틈틈이 쓰고 싶은 글을 기록해두는 블로그를 소개하는 짤막한 글이다. 검색의 파도를 통과한 누군가 잠시 머물다가도, 때론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는 곳. 대개는 소리 없이 고요함을 유지하는 차분한 공간이기도 하다. 일상을 잠식한 코로나로 인해 두 아이를 끼고 있는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내가 사랑하는 하루의 ‘틈’마저 실종된 몇 달을 보냈다. 끼적거리다가도 이내 곧 미완성인 채로 체념하고 포기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매일 빈 종잇장을 마주하고 구름 속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은 몹시 고달픈 일이다_ 트루먼 카포티 이따금씩 들이치는 단상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었을 뿐. 정제된 글 한편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조바심과 함께 부작용도 ..

book. paper + log 2020.08.10

아침 산책 _ 메리 올리버

감사를 뜻하는 말들은 많다. 그저 속삭일 수 밖에 없는 말들. 아니면 노래할 수 밖에 없는 말들. 딱새는 울음으로 감사를 전한다. 뱀은 뱅글뱅글 돌고 비버는 연못 위에서 꼬리를 친다. 솔숲의 사슴은 발을 구른다. 황금방울새는 눈부시게 빛나며 날아오른다. 사람은, 가끔, 말러의 곡을 흥얼거린다. 아니면 떡갈나무 고목을 끌어안는다. 아니면 예쁜 연필과 노트를 꺼내 감동의 말들, 키스의 말들을 적는다. 메리 올리버 , 마음산책(2013), 128p. * 아침! 코끝 찡해지는 찬 바람이 신선하고 상쾌해 마지않던 잠깐의 아침 산책 후에. 겨울이다.

book. paper + log 2019.12.02

[완벽한 날들_메리 올리버] 내 온쉼표의 요일들

[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 마음산책 ​ ‘엄마’가 된 순간부터 늘 롤러코스터를 탔다. 온 감정이 뒤죽박죽 뒤섞인 채. 둘이 이룬 ‘가족’이라는 커다란 우주를 품고, 새로운 행성에 정착한 어린왕자가 하나에서 둘로 늘어가면서. 서로 다른 자아들이 만나 각기 다른 정도의 성장통을 겪는 인고의 시간이 시작되었으니까.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왕자는 점점 살이 차오르고 경이롭게 성장하지만, 그 누구의 역할이 아닌 온전한 나의 모습은 점점 닳고 달아서 한없이 쪼그라드는 기분이 엄습하는 날을 마주하곤 했다. ‘엄마’라면 마땅히 아름답게 품어야 할 거대한 우주에서의 하루하루가 버거울 때마다 쉬어갈 곳이 필요했다. 기댈 곳 없는 독박육아의 쉬는 시간은 아이가 낮잠에 들어야 비로소 시작되니 그 무엇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book. paper + log 2018.11.16

상상할 수 있니? _ 메리 올리버

예를 들어, 나무들이 무얼 하는지 번개 폭풍이 휘몰아칠 때나 여름밤 물기를 머금은 어둠 속에서나 겨울의 흰 그물 아래서만이 아니라 지금, 그리고 지금, 그리고 지금-언제든 우리가 보고 있지 않을 때. 물론 넌 상상할 수 없지 나무들은 그저 거기 서서 우리가 보고 있을 때 보이는 모습으로 있다는 걸 물론 넌 상상할 수 없지 나무들은, 조금만 여행하기를 소망하며, 뿌리부터 온몸으로, 춤추지 않는다는 걸, 갑갑해하며 더 나은 경치, 더 많은 햇살, 아니면 더 많은 그늘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물론 넌 상상할 수 없지 나무들은 그저 거기 서서 매 순간을, 새들이나 비어 있음을, 천천히 소리 없이 늘어가는 검은 나이테를, 마음에 바람이 불지 않는 한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음을 사랑한다는 걸, 물론 넌 상상할 수 없..

dia + log 2013.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