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9

[아름다움 수집 일기]

예약주문을 걸어두고, 혹시나 이사 후에 도착하면 어쩌나 걱정반 설렘반으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책. 이화정 작가님의 는 이사를 일주일 앞두고 내 손에 들어왔다. 소예책방지기님의 곱고 예쁜 감성이 묻어난 포장을 열고 나니 작업일지 예고편에서 본 버드나무 초록잎들이 내 두 손 안에서 나풀거리고 있었다. 부드럽게 유영하는 가지의 선, 이파리들의 저마다 다른 움직임의 결... 윌리엄모리스의 패턴과 이 는 만날 운명이었던 걸까.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 한참을 매만지며 들여다보았다. 대충 아무컵이나 집어들어 믹스 커피를 마시던 지난 날의 내가 보여 눈물이 차올랐다가, 첫 개시를 언제 어떻게 잘 할까 망설이며 주저하는 노트에 관한 구절도 내 얘기인가 공감했다가, 내 최애 메뉴 쌀국수 먹는 상상을 했다가, 코로나 시국 이후..

book. paper + log 2021.07.02

넷플릭스 _ 버진리버(Virgin River)로 비행하시겠습니까?

Netflix Original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본 적 있을 것이다. 그 누구도 나를 모르는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꿈. 머나먼 나라로의 여행이라면 비행기 티켓을 끊는 순간, 새롭고 찬란한 여정이 시작된다. 무지갯빛을 품은 비눗방울처럼 잔뜩 부풀어 오르는 설렘을 안고 말이다. 출발하기도 전에 예약된 찐 행복의 그림들, 이젠 기약도 할 수 없을 만큼 멀어져 간다. 어디가 정점이고 끝인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팬데믹 한복판에서 우린 각자의 갈망에 단추를 걸어 잠그고, 허용되는 만큼의 거리와 간격을 두고, 절제되고 단출한 아주 최소한의 삶 속으로 수렴하고 있는 나날들... 비눗방울은 곧 터지게 될 슬픈 운명임을 예감한 것일까.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과 불안에 잠식당한 암흑의 밤을 통과하기까지 ..

scene + log 2021.01.01

한 사람의 손글씨가 주는 모든 것

단 하나, 단 한 번의 진심이 여기에... 새벽 두 시가 훌쩍 넘은 시간. 책장을 훑어보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책 한 권. 표지를 넘기자마자 ‘툭!’ 하고 바닥으로 무언가 떨어진다. 선명하고 강렬한 빨간색 편지 봉투다. 손에 집어 들고 편지봉투를 만져보니 봉투 크기보다 작은 크기로 접힌 종이의 질감과 두께감이 느껴진다. 그냥 비어진 봉투가 아닌 것. 누가 보낸 편지였을까. 새벽, 두 시의 감성인지 몰라도 혹시라도 열지 말아야 하는 판도라의 상자면 어쩌지 망설이던 사이에 주저하는 마음보다 먼저 손이 움직이고 있음을 본다. * 고민 한 톨 없이 본능적인 감각이 직진한다. 편지 봉투를 열고, 반듯하게 접혀있는 편지 종이를 펼친다. 감정 가는 대로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는 손글씨 보내는 이의 이름도 없는 편지. ..

mono + log 2020.09.08

아무 조건 없이 내가 되는 시간

“소소하고 사사로운 시간과 기억을 수집합니다” 틈틈이 쓰고 싶은 글을 기록해두는 블로그를 소개하는 짤막한 글이다. 검색의 파도를 통과한 누군가 잠시 머물다가도, 때론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는 곳. 대개는 소리 없이 고요함을 유지하는 차분한 공간이기도 하다. 일상을 잠식한 코로나로 인해 두 아이를 끼고 있는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내가 사랑하는 하루의 ‘틈’마저 실종된 몇 달을 보냈다. 끼적거리다가도 이내 곧 미완성인 채로 체념하고 포기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매일 빈 종잇장을 마주하고 구름 속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은 몹시 고달픈 일이다_ 트루먼 카포티 이따금씩 들이치는 단상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었을 뿐. 정제된 글 한편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조바심과 함께 부작용도 ..

book. paper + log 2020.08.10

몸에도 단비가 필요하다

* 장마 꿉꿉하고 습한 장마가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있다. 근래 들어 이렇게까지 ‘장마다운’ 해를 보낸 적이 있었던가. 6월 중순 무렵도 아니고 보통 때라면 쨍쨍하게 타오르는 태양을 피해서 휴가를 고민할 7월 말인데. 하기야, ‘보통 때라면’ 혹은 ‘평소대로라면’ 이라는 말은 포스트 코로나를 통과중인 지금 아무 의미없는 말이 되어버렸지만...... 비가 오고 습한 날이면 뼈마디가 쑤신다던 어른들의 말씀이 내 얘기가 될 줄이야. 요 며칠 뒷목과 어깨, 양손 팔이며 손 끝 마디 마디가 뻐근해 틈 날때마다 요가를 모방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달래던 중이었다. 종아리 아래는 딴딴하게 뭉쳐서 천근만근... 습한 날씨에 장판 바닥에 발을 디딜 때면 쩍 쩍 달라붙는 소리에 나무로 된 마루였으면 좀 나았으려나 잠시 생..

book. paper + log 2020.07.30

글쓰기 에세이 _ 홍승은 _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작가, 어크로스(2020) 솔직하고 다정하게 글쓰기를 건네는 책, 제목만으로도 끌렸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출판사 어크로스의 사전서평단 공지를 스크랩해 두고서 한동안 고민을 했던 것 같다. 흩어진 스케치 조각으로만 존재했던 글감을 지난 해 좋은 기회를 통해 멘토와 멘티의 도움을 받아 여러 챕터의 글을 완성한 경험이 있다. 그 뒤로 나의 ‘쓰기’는 잠시 멈춤 상태로 정체되고 말았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기도 했지만, 다시 들여다볼수록 부족함이 보이고, 그 다음 단계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도 했다. 다시 쓰는 일을 어떻게 할지, 어떻게 하면 글을 좀 더 잘 쓸 수 있을지 내적인 갈등이 내면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던 참이었다. 사전서평단 모집 마감..

book. paper + log 2020.01.31

[놓치고 싶지 않아] _ essay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으로 점철된 밤을 보내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돌이켜보면 아직 철들지 못한 자아에 비친 자화상에 불과했음을. 삶을 보는 관점의 축을 과거에서 현재로,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지점으로 옮겨 놓으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끙끙대는 마음을 버리니 불안을 불안으로 간신히 버티는 게 아니라, 지금 현재 내 앞에 놓인 시간을 더 소중히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seize the day. 오늘을 붙잡으라는 뜻이자 ‘카르페디엠’과도 같은 말. 책을 다 읽고 난 뒤 이 말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 무한 애정을 쏟으며, 눈 앞에 있는 아이들과 미술 활동을 통해 진심 소통하고자 하는 저자의 모습과 닮아서다. 이 책은 입시미술에서 아동미술로 길을 바꾸..

book. paper + log 2019.12.21

다정한 구원 _ 임경선 산문집

​ 다정한 구원 _ 임경선 _ 창비 꼬박 열흘동안 가방안에 꼭 넣고 다니던 이 책을 오늘에서야 펼쳤다. 당장 코앞에 떨어진 미션(솔직히 게을렀음 인정)과 마땅한 때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이번주를 정점으로 몰아치는 터에 조용히 숨 고를 짬이 날 때, 찬찬히 들여다 보고 싶었다. 그만큼 미루고, 아껴 두었던 마음. 누군가는 좋아하는 걸 앞에 두고 당장 취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되도록 흡족한 감정을 되도록 오래 천천히 느끼려고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게 마음이 편하다. 그러다보니 추진력은 약한 대신 뒷심을 쏟는 편에 가깝다. ​ 동네 서점 특별 에디션 표지가 좋아서, 책 제목이 좋아서 꽁꽁 싸매고 다닌 것도 있다. 천천히 읽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딱 맞았다. 문장엔 천천히..

book. paper + log 2019.06.28

민들레는 민들레, 나는 나.

재미나거나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책은 아닙니다. 한 페이지에 한 줄 정도 짧은 글이 민들레 꽃 그림을 배경으로 카피처럼 이어지는데요. 전개되는 스토리도, 반전도, 결말도 특별할 것 없는 그냥 민들레 꽃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글과 그림을 천천히, 느릿느릿 음미하고 되도록 소리를 내어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자신이 플레이 기능이 탑재된 기계라고 여기고, 최대한 느린 모드로요. 나지막이 나의 목소리로 책을 직면하는 꽤 괜찮은 시간이 되기도 하지요. 며칠 전 서점에서 겪은 일입니다. 세상의 속도도 빠르고, 신간은 쏟아지고, 누군가는 계속 성장하고 변화하는데 그냥 저만 제 자리에 멈추어 있구나 싶더라고요. 뒤쳐짐의 느낌은 그저 사소한 감정이 아니라 무자비하게 피어오르는 진한 무채색을 잔뜩 머금은 ..

book. paper + log 2018.08.20